새해가 되고 어느새 일주일이 훌쩍 흘러가 버렸다. 남들 다하는 신년 계획도 세우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러면 좀 어때...’ 애써 쿨한 척 그저 늘 하던 대로 내 방구석의 공기만 데우고 있는 중이다. 나의 36.5도 지극히 정상체온으로 말이다(36.5라는 숫자가 이리도 감사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난해를 아주 잘 살아낸 거다(칭찬!!)
이 세상의 혼돈과 나의 이 복잡다단한 마음, 그리고 모든 이의 그 숱한 현실적 고민들은 괘념치 않는다는 듯 자기 일만 열심히 해준 시간 덕에 우리는 어김없이 또 새로운 365일을 선물 받았다. 올해도 우리는 36.5도에 연연하며 살아가겠지만 또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되리라. 이토록 소박한 감사라니...^^
그동안 우리는 모두 참 많이도 바빴었다. 코로나가 이 세상에 찾아오기 전까지는... 미하엘 엔데의 동화소설 [모모]에 나오는 그레이 신사들의 말만 믿고 시간을 시간은행에 차곡차곡 저축하며 바쁘게 살아가던 사람들처럼. 미래의 언젠가는 그 은행에 저축해놓은 시간을 되찾아 풍요로운 삶을 살아야지 하면서 열심히만 살았었다. 그 회색 신사들이 실은 우리의 시간을 훔쳐간 시간도둑들인 줄도 모르고...
아무래도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던 소녀 모모’가 내 곁에 다녀간 듯하다. 올해엔 꼭 뭘 해야겠다는 진지한 다짐을 잠시 접어두고 현재의 감정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새해 결심을 안 해보기는 또 처음이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1596년 1월 1일과 1월 2일 이틀간의 일기 끝에는 ‘덕윤신(德潤身)’이라는 말이 나온단다. ‘덕은 몸을 빛나게 한다’는 이 말은 중국의 고전《대학》에 나오는 문장의 일부다. 난중일기를 번역한 박종평 연구가는 이것이 이순신 장군의 새해를 맞아 ‘덕’을 닦겠다는 새해 결심이라 해석했다.
대학 새내기 때 박사반 선배님들 사이에 꼽사리 꼈던 ‘《대학》강독’ 스터디에서 외웠던 문장을 만나니 참 반가웠다. 원문은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여 마음은 넓어지고 몸에는 살이 오르니(편안해지니),... ) 뭐 이쯤 될 것이다.
그래... 나도 올해엔 다른 욕심은 부리지 말아야지. 작년 한 해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마음 한 켠에 두었던 ‘사람에 대한 서운함, 원망’ 같은 부정적 감정들 버리고 나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할 ‘덕을 닦아봄’이 어떨까 싶다. 마음이 너그러워져 내가 조금 편안해지는 긍정적인 삶으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새해 결심이 어디 있겠나. 꼭 그리 해야겠다.
어찌하다 보니 또 이렇게 얼렁뚱땅 새해 결심이 섰다(ㅎㅎ). 그러니 이제 다시 시작이다. 참 좋은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