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로 풀어보는 재미있는 고사성어 이야기
호구지책(糊口之策)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무엇인고? 설마 그 호구? 내 예상이 맞다는 가정 하에 그 호구는 아마도 이 ‘호구(虎口)’일 게다. 한자가 다르제? 그렇다. 이 ‘호구(虎口)’는 ‘범의 아가리’라는 뜻의 한자어다. 그리고 ‘어리숙해서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하면서 자주 쓰는 말인 거다. 하지만, 오늘의 성어 호구지책(糊口之策)에서의 ‘호구’는 바로 이 ‘호구(糊口)’다.
자 그럼 ‘범의 아가리’의 ‘호구(虎口)’가 아니라면 이 ‘호구(糊口)’는 뭘 말하는 건지, 어떻게 다른지 호구지책의 한자를 찬찬히 살펴봐야 하겠다.
풀칠할 호(糊), 입 구(口), 어조사 지(之), 계책 책(策)
‘호구(糊口)’는 ‘입에 풀칠하다’이다. ‘목구멍에 풀칠하다’로도 쓰는 이 표현들은 ‘근근이 살아가다’의 우리말 관용구다. ‘지(之)’는 ‘~의’일 테요, ‘책(策)’은 ‘방편, 방법’이렷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는 ‘입에 겨우 풀칠하며 살아가는 방책’이라는 뜻이다. 가난한 살림에 하루하루 힘들게 연명하는 형편을 의미한다.
이 성어는 공자(孔子)님의 <춘추(春秋)>를 노(魯)나라 좌구명(左丘明)이 해석한 <좌씨전(左氏傳)>에 나온단다. 노(魯)나라 은공(隱公)이 정(鄭)나라 장공(莊公), 제(齊)나라 희공(僖公)과 연합하여 허(許)나라를 토벌했더라. 그 허(許) 땅을 누가 소유할 것인가를 논하던 중에 정 장공(鄭莊公)이 허(許)나라 대부 백리(百里)에게 한 말 중에 ‘사방에 떠돌며 입에 풀칠하게 하다(使糊其口於四方)’라는 구절이 나온단다. 이 고사로부터 호구지책(糊口之策)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호구지책이란 궁핍한 살림으로 겨우 끼니만이라도 어찌어찌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거다. 지금 이 사자성어를 대하는 나의 자세가 조금은 비장해지는 이유는 뭘까? 우리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일까. 그러기 위해선 모든 이들의 생활 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여야만 한다. 이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역부족인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거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고도의 자동화로 인해 사람이 로봇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더 줄어들 게다. 대규모 실업 사태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재교육과 함께 그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 줄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기본소득이 더더욱 중요해진 요즘이다.
<해빗(Habit)>의 저자 웬디 우드는 행복한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주민이 대다수인 지역이 있고 언제나 불행만을 반복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주민이 대다수인 지역이 있다고 말한다. 어떤 사회 정책은 주민의 생활을 개선했고 반대로 회복할 수 없는 해악을 안긴 사회 정책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어떤 방향의 관점과 태도가 더 많은 사람의 목표를 달성하게 만들었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고 하였다. 재난지원금과 같은 것들이 어떻게 우리 경제와 삶을 변화시키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장기적으로 하나의 경제정책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의 의지와 근면 따위에 너무나 많은 기대를 걸었던 과거 정부와 기관의 태도는 변해야 한다. 기대라는 명목으로 실패와 파산의 원인을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돌리면 정부의 책임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웬디 우드는 국가는 여전히 의지력만이 목표를 이루는 제대로 된 방법이라고 믿고 있는데 그 편이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그의 주장대로 현실에서 대다수의 사람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가혹한 덫과 진창에 허덕이고 있으며 그들은 그 악조건을 스스로 돌파해낼 힘을 갖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살짝 조정하거나 아주 간단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만들어주는 정책과 제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도 ‘살기 좋은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은데, 그 어디에도 우리가 기대를 걸 수 있는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 과연 우리는 지금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국민 모두의 기본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호구지책에 관심은 있는 것인가 묻고 싶어지는 추운 겨울밤~
시국은 어수선하고 경제는 바닥으로 곤두박칠 치고 있는 이 연말, 그래서 이 말이 유행이 된 게 아닐까?
...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