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로 풀어보는 재미있는 고사성어 이야기
방약무인(傍若無人)이라는 성어를 떠올리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안하무인(眼下無人)이다. 어쩌면 이 단어가 우리에겐 더 익숙할 수도 있겠다. 우리 일상에서 주변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안하무인’이라는 말로 은근 디스(?)하지 않던가.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문자 그대로 ‘눈 아랫사람이 없다’로 해석된다면, 방약무인(傍若無人)은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여긴다’는 뜻이다. 즉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함을 이른다. 한자를 봐도 아주 심플하니 어려운 글자가 한 개도 없다.
곁 방(傍), 같을 약(若), 없을 무(無), 사람 인(人)
이 성어는 구조상 둘둘 나누기도 애매하지만, 편의상 하던 대로 해보면 ‘방약(傍若)’은 ‘곁이 ~같다’ 일 테다. ‘무인(無人)’은 ‘사람이 없다’고. 그러니 ‘곁이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뜻이 되고,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되시겠다.
이 성어는 <사기(史記)>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나오는 말이다. 음… 제목이 ‘자객열전’인 걸 보니 그럼 자객이 나오겠고만. 그렇다. 중국 전국시대 위(衛) 나라 사람 형가(荊軻)가 고사의 주인공인데, 그는 연(燕) 나라의 유명한 협객(俠客)이자 진시황(秦始皇) 암살을 시도했던 자객이었다. 그의 비수가 진시황의 심장을 향했지만, 아주 잘 피한 진시황의 보검에 찔리고… 결국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지만 말이다. <사기(史記)>의 작가 사마천이 이 암살 장면을 묘사한 부분도 그 디테일이 정말 압권이다.
형가(荊軻)는 자신이 태어난 위(衛) 나라에서 등용되지 못하자 결국 연(燕) 나라로 건너가는데, 거기서 고점리(高漸離)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는 비파(琵琶)를 아주 잘 켰던 가보다. ‘자객열전(刺客列傳)’의 원전을 찾아보니, 이 두 사람이 금세 친해져서 술을 같이 마시면서 비파도 켜고 춤도 추고 노는 장면에서 바로 방약무인(傍若無人)이 나왔더라.
친구 사이에 마음이 너무 잘 맞다 보면 저렇게 신나게 놀다가 술이 들어갔으니 신세한탄도 하겠지. 그러면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도 하겠고. 그러다 같이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겠지. 사마천은 바로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곁에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하였더라’라고 적고 있다. 그러니까 이 성어에 원래는 남을 무시한다거나 예의 없이 행동한다는 그런 의미는 없었다는 거다. 훗날 의미가 확장되어 부정적인 뉘앙스로도 쓰이게 된 것일 뿐. 그래서 현재는 방약무인을 누군가의 무례하거나 교만한 태도를 표현할 때 인용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암튼, 형가랑 고점리가 현대에 살아난다면 좀 억울하기도 하겠다. 자기들은 그저 감정에 솔직하게 돈독한 우정을 나눈 것뿐이거늘. 졸지에 무례한 사람이 되어버렸지 않나. 하하.
주위 의식하지 않고 자기감정에 충실한, 하고 싶은 것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참 멋지다. 하지만, 그 멋짐을 갖기 위해서 때로는 ‘방약무인’의 혐의를 감내해야 할 수도 있겠더라. 우리는 솔직함과 무례함의 그 경계에서 대체로 솔직함이 아닌 가식을 선택하곤 하지 않나. 무례함이라는 억울한 프레임에 갇히고 싶지 않아서일 게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고자 한 행동이 자칫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불러오기도 하니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굳이 남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에 꼭 나를 맞춰야 하나 싶다. 이 당연한 생각에도 불구하고 솔직해지는 데는 어떤 위험부담도 기꺼이 질 거라는 다부진 용기가 필요한 건 맞다. 누군가는 그랬다. 감당해야 할 그 모든 짐을 감수하고서라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솔직함’은 살아가는 데 장기적으로 ‘옳은 방법’인 것 같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나도 냉정하게 생각이란 걸 한 번 해본다. 타인의 불편한 시선이 싫어서,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차라리 솔직함을 포기해 버리는 그 많은 선택들에 대해서. 금세 내 마음엔 이런 생각들로 그득해진다. 솔직함이라는 외피를 두른 무기는 타인을 일부러 곤란하게 만들거나 상처를 주는 데도 사용된다는 것을. 그리고 또 누군가는 나와 마주한 상대방의 마음이 다치는 게 싫어서 솔직하지 못할 때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블라블라블라…
그 누가 솔직함에 대해 ‘단언컨대’를 들이댈 수 있겠나. 복잡 미묘하게 다양한 감정의 결이 담긴 그 어려운 삶의 원칙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