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 같은 집에서 오래 살았다. 초등학교 즈음부터 20대 후반까지.
막판엔 벽지가 누래지고 장판이 울퉁불퉁해져 아무리 청소를 해도 티가 나지 않았다.
그런 벽지와 장판처럼 오랜 시간 그곳에 살며 따뜻했던 추억만큼이나 마음을 우글거리게 하는 일도 많았다.
그래서 나에게 특별한 장소는 고급스러운 여행지나 관광지가 아닌, 내 모든 모습이 벽지와 장판, 그 곳곳에 스며든 창원의 주택이다.
지금은 동생이 리모델링을 마치고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사는데, 얘도 비슷한 생각이었나 보다.
모든 인테리어를 최대한 깔끔하고 하얗게 꾸몄다.
가끔 내가 지내던 방의 문을 열면 과거의 내 모습이 그 방의 공기를 가득 채워,
밀도가 높아 숨쉬기에 꾸덕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은 대게 좋은 것보다 나쁜 기억을 더 오래 붙잡고 놓지 못하니까.
문득 궁금해진다. 내 방.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 100년 후면,
나는 없을 텐데 내가 존재했던 그 공간은 어떻게 될까.
나의 숨결과 내 손때가 조금이라도 그 방에 남아있을까.
그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엔 나와 동생은 방을 나눠썼었어야 했는데,
침대를 놓고 남는 1평도 되지 않은 그 공간을 동생한테 선심 쓰듯 주며 거기가 너의 집이라고,
나머지는 다 내꺼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보다 3살 적은 그 아이는 그 공간에 자기의 장난감으로 성벽을 쌓으며 즐거워 했다.
난 어릴 적 식탐도 많았는데, 엄마가 항상 동생과 나에게 똑같은 양의 과자를 주시면
그걸 우걱우걱 빨리 다 먹고,
동생에게 내가 몸이 크기 때문에 더 많이 먹어야한다며 동생을 때리곤 걔 과자를 뺏어먹곤 했다.
그땐 참 미웠던 것 같다.
엄마는 동생만 좋아한다며 볼멘소리로 운 적도 많았고, 어릴 적 나에겐 진심으로 섭섭했던 순간순간들이
나보다 작고 약한 동생을 때리고 따돌리게 만들었나.
그래도 누나라고 졸졸 쫒아오는 걔가, 쓸데없이 순하게 생긴 남동생은 나에게 애증의 대상이었다.
사춘기가 오고, 동생은 방황을 많이 했다.
몸이 커지면서 더 이상 몸 싸움에서 내가 이기지 못했지만, 그래도 분에 차 악으로 깡으로 맞붙은 적도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걸 바라봤어야 했던 엄마한테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찌그락 빠그락. 말 그대로 서로를 갈아가며 유년기를 보냈다.
모두가 나름의 이야기가 있겠지만, 나는 나기에 언제나 내 이야기에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다.
바로 옆 방의 꾹 닫혀있는 문. 아빠와 부딪칠 때 그 긴장된 공기. 동생을 향한 나의 질책.
너만 없으면 모두가 행복할거라고. 왜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냐고.
돌아보면 동생만큼이나 나도 모두를 힘들게 했었는데, 그땐 나는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고 자만했던 것 같다.
진정 놀랍다. 내가 얼마나 메타인지가 낮았었는지를 깨달을 때마다.
그리고 낮은 메타인지가 말해주듯, 나는 아주 확신했다. 내가, 내 생각이, 그래서 내 행동이 맞다고.
나는 지금도 아침잠이 많아, 우리 팀에서 나 혼자 유연근무제를 활용한다.
중학교도 걸어서 5분 남짓의 거리여서 항상 가장 늦게 등교를 했고, 집에와서도 무척 빨리 잠들었었다.
그런 내가 뺑뺑이를 돌려서 가는 고등학교에 집 바로 앞의 고등학교에서 떨어지고,
차로 20분 정도 가야하는 곳으로 배정을 받았는데 그때 우리 중학교에서 8명 남짓 되는 친구들이
그곳으로 배정을 받았다.
중학교땐 당연히 행동반경이 좁기 때문에 나에겐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고, 아빠한테 전화해서 엉엉 울었다.
나 신월고 떨어져서 봉림고 가야한다고. 이제 어떡하냐고.
‘별 일 아이다.’ 라는 아빠의 담담한 목소리.
당시에는 너무 섭섭했다.
아빠는 도대체 나에게 신경을 쓰는거냐고 소리를 지르고 끊었는지,
기억이 정확히 나진 않지만 차분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은 확실하다.
그때 아빠의 말은 내 인생 전반의 위로가 되었다.
그 후로 3년 내내 아빠는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셨다.
다른 친구들은 작은 봉고 버스를 대절해서 함께 다녔지만,
우리 아빠는 나를 3년 내내 별 일 아닌 듯, 학교 앞 정문에 데려다 주시고는 출근을 하셨다.
엄마는 아침 잠이 많은 나를 위해 어떻게든 간장에, 계란에, 밥을 김에 싸서
아빠 차에 타는 내 손에 쥐어주곤 했다.
아침에 배고프면 안된다며. 머리도 잘 돌려면 아침을 먹어야한다며. 가만보면 난 참 바보다.
이렇게 긴긴 시간 꾸준히 따뜻한 사랑의 행동을 태어나서 지금까지 받아와놓고는,
섭섭한 부분들을 항상 내 마음 속 생채기로 남겨두는걸 보면.
우리 아빠는 나를 그렇게, 20대 후반 내가 서울로 옮기기 전까지 늘 회사 정문에 나를 데려다 주셨다.
팀에서 소문도 났었다. 공주 대접 받고 산다고.
나는 이제 안다. 그게 우리 아빠의 사랑의 표현이란 걸.
나는 그 방에서 힘겹게 아침마다 일어났고, 그 아침을 엄마와 아빠 덕분에 매년 넘어갈 수 있었다.
별 일이라고 생각하면 별 일이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 것.
그것은 감각이 민감하고 생각이 많은 나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통로가 되어 주었다.
결국 사람은 태어난 이상 죽음을 향해 서서히, 또는 꽤나 빠르게 다가가고 있는 것인데 사소로운 것들에
너무나도 많은 에너지를 쓰는 나에게 ‘별 일 아이다.’라고 말하는 아빠의 음성은
내 죽음의 순간에도 잔잔히 울려퍼질 것 같다.
죽는 것도 사는 것처럼 별 일 아니라고.
물론 아빠도 속으론 두렵겠지만 나에게 그렇게 덤덤히 말해주는 그 모습에
나는 부모 새의 날개 밑에서 안도하는 아기새처럼 편안하다.
내가 아주 힘든 시기를 지나갈 때는 그 방의 천장이 생각난다.
아무렇게나 누워 끊이지 않는 생각으로 나를 자책하고 괴롭힐 때.
물이 세 누래진 천장의 모서리 부분에서 왜인지 천장이 나를 보고 있다고 처음 느꼈다.
그때가 아마 내가 바라보는 주체에서 대상이 된 첫 순간이었던 것 같다.
가만히 슬프고 혼란스러운 나를 바라보는 어떤 시선. 정신이 어느정도 나갔던 걸까.
그래도 그 때 내 방 안에서 널부러져 있던 내 모습을 다시금 생각하면 아직도 내가 바라보던 천장과,
나를 바라보던 그 천장이. 좋고 싫음 없이 그저 존재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나는 서울로 이동했고, 그 이후 얼마되지 않아 엄마아빠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를 하셨다.
몇 달이 지나고 엄마를 만났을 때 새로운 공간에서 엄마는 말했다.
"너희랑 함께 살 때 이렇게 좋은 곳에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오래된 공간에서 머물게 해서 미안하다"고.
엄마란 존재는 왜 항상 자식에게 미안한게 이리 많을까. 나도 나중에 엄마가 되면 이런 마음이 들까.
근데 또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서 나는 대답한다.
괜찮다고. 별 일 아니라고.
내가 아주 어릴 적 폐렴이 걸려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고 했었다.
그 때 아빠가 내 몸보다 커다란 인형을 선물로 줬었는데,
10살 이전의 내 사진 속엔 이 인형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항상 함께 같이 잤었다.
그때는 그런 단어도 없었지만, 내 애착 인형. 이름도 나중에 지어줬는데,
우리 동생 이름에서 한자, 내 이름에서 한자를 따서 욱지라고 지었다.
욱지는 겨드랑이가 다 터지고 더 이상 아무리 빨아도 하얗지 않을 때까지 나와 함께했고,
정말 신기하게도 대학생이 되고 나서 얘를 이제 버려야 겠다고 생각하고는,
아무런 감정 없이 깔끔하게 작별했다.
인형 속살이 파랬던 것도, 반짝반짝 나를 바라보던 눈도,
부들부들하다가 나중엔 딱 기분 좋게 뻣뻣해진 털도, 성인이 되어서도 커다랬던 크기의 인형이,
나와 함께한 시간이, 내가 소중하게 여긴 순간들이 내가 살았던 집처럼 너무나도 길어서일까.
내 인생 끝까지 함께할 거라 생각했던 그 인형을, 선물을 받았던 그날처럼, 또 다른 어느 한날 그렇게 보냈다.
별 일 아닌 듯이.
이렇게 나는 많은 ‘별 일’들과 ‘별 일 아닌’ 일들을 구분해가며 매일을 살아간다.
어떤 순간에는 나를 뒤흔들어 놓았던 관계나 물건들이,
나중엔 모르는 사람보다 더 어색해지고 불필요해지는 것처럼.
인생사 이렇게 계속 변한다. 그리고 내 인생 속 내가 변한다. 이 모든게 별일 아닌 것이다.
나 전에 살아왔던 어마무시한 숫자들의 사람이 이렇게 살아왔고,
나 후에 살아갈 셀수 없는 사람들도 이렇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별 일 아닌 것이다. 이 모든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내가 다치지 않을 만큼만 의미를 주고, 그 누구보다 먼저 나를 편안하게 바라보자고.
사람이 80년을 산다면, 그게 4,174.2주라고 했다.
그럼 내가 지금부터 50년을 더 산다고 가정했을 때 2,600주 남짓 시간을 보내다 가는 것이다.
한주한주 이렇게 빨리 흘러간다.
별거 아닌 것 같은 한 주 한 주가, 사실은 우리가 이 찰나에 가진 전부다.
그러니 그 짧은 시간을 자신을 공격하는 데 한 톨도 쓰지 말자.
그러기엔, 이 별일 아닌 시간조차 너무나 짧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