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시작, 그녀가 태어났다.

프롤로그

by GL

나는 만 36세에 첫째 딸 호랑이를 가졌다.

그녀를 만나기 두 해 전 교수로 임용되었고 이듬해 박사학위를 따고 이제 막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쌓아가던 중요한 시기에 그녀가 찾아왔다.

엄밀히 말하면 나와 남편이 그녀를 애타게 기다렸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연애 5년 + 결혼 5년 차에 접어들었고 나는 말 그대로 노산이었으니까 말이다.

어렸던 우리는 당연히 마음만 먹으면 아기가 생길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내 커리어의 베이스만 잡히면 아기를 가져야겠다고 그렇게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더랬다.


연애기간의 절반만큼 결혼 기간이 쌓여가던 어느 해 남편이 말했다.


“우리도 이제 아기를 가져보면 어떨까?”


당시 박사과정에 막 입학하고 대학에 첫 강의를 나가고 있던 나에게 남편의 그 이야기는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은 흘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마침내 지방의 4년제 대학에 강의전담 조교수로 임용이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주말부부가 되었고 아기를 갖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임용 후 코로나가 터졌고 그 해는 정말 힘든 한 해였다. 처음으로 8과목 이상의 강의를 준비해야 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온라인 강의까지 촬영하고 편집하고 이 모두를 내 힘으로만 해야 했으니 말이다. 거기에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해야 했기 때문에 안 그래도 노산인 내 몸 상태는 임신과는 더 멀어져만 갔다.


여차저차 무사히 박사 학위를 따고 교수생활에도 적응이 될 무렵 일 년간 임신을 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더랬다. 그럼에도 아기는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고 연애 및 결혼 8년 차인 우리에게 임신을 하기 위한 부부관계는 너무나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매달 품은 기대와 희망은 실망과 낙담으로 우리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왜인지 임신을 한 것만 같은 좋은 예감에 우리는 행복하게 겨울 휴가를 계획했다. 그러나 휴가를 떠나 숙소에 도착하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그놈이 어김없이 찾아왔고 나는 그 겨울휴가에서 멘털이 무너졌다.

정말 엉엉 울었다. 너무나 속이 상했고 임신을 쉽게 생각하고 노력하지 않았던 지난날의 나를 수없이 탓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너무 미안했다. 오롯이 내 커리어만을 위해서 내가 달려갈 때 그 시간을 말없이 기다려준 사람인데 이 결과가 모두 내 욕심 때문인 것 같아서 말할 수 없이 미안했다. 젊고 건강했던, 임신이 가능했던 그 수많은 시간을 낭비했다는 죄책감이 나를 사로잡아 무너지게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남편이 결심한 듯 말했다.


“우리 시험관 해보자”


남편은 일사천리로 병원을 알아보았고 바로 다음 주 가장 빠른 예약을 잡아두었다고 나에게 알렸다. 이후 여러 가지 검사와 시술을 하였고 정말 감사하게도 첫 시도에 우리는 찰싹이라는 태명의 첫째 딸 호랑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내 나이 38.

만 36세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같이 찾아온 기적의 그녀였다.


그녀와 함께한 임신기간은 경이롭고 행복한 기억으로 가득하다. 그녀와 잊지 못할 38주 5일을 보냈고 38주 6일이 되던 날 뜻밖에 고혈압으로 인해 응급제왕으로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