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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K Nov 19. 2016

내가 만난 남자 - 첫 남친

 고기를 먹으러 가면 난 그저 공주처럼 가만히 앉아 그 애를 가만히 쳐다본다. 자기만 믿으라며 열심히 고기를 굽다 가장 맛있어 보이는 한 조각을 집어 후후 불더니 자기 입술에 갖다 대고는-  이제 안 뜨겁다, 먹어봐.

  그 모습은 그 애와 이별한 지 여러 해가 지나도 아직도 내 머리 속에 박힌 가슴 시린 명장면. 

무슨 선물을 주었는지, 어떤 이벤트를 해주었는지는 가물가물한데,

고기를 먹을 때, 사람 많은 버스를 탈 때, 수업에 지각할 때 같이 뜬금없는 상황에서

항상 내 기억을 흔드는 한 남자.


 나의 전 남자 친구는 지구 반대편에서 학교를 다니던 성실한 유학생이었다. 

한국을 오더라도 그 애는 부산, 나는 서울. 고난의 장거리 연애였지만

어려서 그랬던 건지, 처음 연애다운 연애여서 그런지 얼굴을 못 봐도 그저 좋았다. 

메시지를 보내면 바로 읽어, 표시가 지워지는 순간 느끼는 쾌감.

떨어져 있지만 항상 함께인 듯했다.

12시간이라는 시차를 극복하기 위해 둘 중에 한 명은 잠을 포기해야 했고,

 한국에 들어오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주말마다 기차표를 끊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서로 사랑했다. 

뜨겁게 서로의 애정을 표현했고 때로는 차갑게 냉전을 겪기도 했다.

 나의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했고 밀당이란 건 없었다. 

그저 사랑이 앞서 아무것도 거칠 게 없는 어린 시절의 연애.

그 당시 나의 연애였다.


이 세상 대부분의 연애가 그렇듯 사랑하기에 더 서운하다. 

이 세상 대부분의 장거리 연애가 그렇듯 그 서운함을 쉽게 풀지 못해 이별한다.


어느 순간부터 그 애는 파티를 가는 날이 많아졌다. 

그 애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새우던 날보다 

연락이 안 되는 그 애를 걱정하고 화를 내며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긴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우리는 

그저 구구절절한 메시지를 남기고 상대가 그것을 읽기까지 기다릴 뿐이었다.


만나지도, 만지지도 못했던 우리의 연애는 언젠가부터

우리가 하는 것은 정말 연애일까 - 하는 의문으로 가득 찼다.

의문조차 들지 않았던 우리의 사랑이 이런저런 핑계들로 얼룩질 무렵,

나는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이해와 포기는 한 끗 차이라

포기했던 내 모습이 그 애는 이해받고 있는 줄 알았음을

이별을 갑작스럽게 느끼던 목소리에서 알 수 있었다.

긴 시간 동안 준비한 이별이었고 그 애를 완전히 놓았다고 자부했지만

막상 이별은 나에게도 어느 한순간 다가온 것이고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머리를 잘라 새로운 스타일을 했고, 카페 문을 열고 나가다 들어오는 사람과 부딪쳤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진 것이 나에게 이렇게 큰 허전함을 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

방을 정리하다 보면 톡톡 튀어나오는 그 애와 먹었던 레스토랑 영수증, 카페 쿠폰, 영화표, 추억, 추억, 추억.

너의 흔적은 그렇게 오랫동안 날 괴롭히고 울리고 무력하게 만든다. 


얼굴 조차 어렴풋이 기억나는 지금도, 함께했던 추억만큼은 떠올릴 때마다 선명하다. 

언제쯤 그 애가 아프지 않을까. 그 애만큼 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다시 시작하자는 말이 입 안에 맴돌지만 달라지지 않은 상황 앞에서 

나는 계속 삼키고 삼킨다.





이제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럴 수 있진 모르겠지만.

몇 년을 마음 한 구석에 보관해온 너의 손길, 목소리, 눈빛, 향기까지 이제는 잠가두고 싶다.

서운해하지 말아줘. 행복을 빌어줘.



발개진 얼굴로 나에게 뜨거운 고백을 하던 그 날과 같은 날, 마지막으로 널 시리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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