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의 만족도에 있어서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는
분명히 인간관계이다.
가까워질 듯 가까워질 수 없는 여자.
나의 첫 직장 상사.
회사 특성상 야근이 많았다.
업무량이 많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인원 충원이 거의 없는 회사 사정일 것이다.
나와 동기들은 회사에서 저녁을 먹는 것이 당연해졌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업무량과 잦은 야근으로 불만이 가득했지만 어느 순간 난 이 상황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전환점이 되어준 사람은 바로 나의 직장 상사, 그녀다.
그녀는 멋쟁이였다. 마흔이 다되어가는 나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잠시 충격을 받았을 정도로
뽀얀 피부에 남다른 패션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잠시 머무른 장소에는 항상 그녀를 떠올리게 하는 향기가 남아있었고,
단순히 판매하는 향수가 아닌 그녀만의 스타일이 느껴지는 그런 향이었다.
자신만의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매력적이라는 것은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잦은 야근과 불규칙한 생활의 반복인 회사 생활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버티고 선 그녀는
누가 보아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일에는 철저하고 엄격하게 처리했지만, 후배들의 실수에는 관대한 그녀였다.
고가의 타사 제품을 분실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
태연하게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라던 그녀의 토닥임을 보고
사람이 좋으니 회사도 좋아졌다던 대기업 2년 차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때부터 죽도록 싫던 야근이 조금은 편안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저녁이 없는 삶이지만
사람이 좋으니, 급여가 좋으니 견뎌보자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낯선 업무에 적응되기도 전에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고
출근하는 아침 공기가 무겁게 느껴지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얼굴 곳곳에 뾰루지가 생겨났고 약을 먹어도 몸살이 떠나질 않았다.
거의 일주일을 아픈 몸을 이끌고 회사를 꾸역꾸역 나가고 있던 나에게,
잦은 실수와 조퇴로 화를 꾹꾹 참아왔던 선배가 처음으로 얼굴을 붉혔다.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는 사적으로 가까워진 사이라 해도 사무실에서는 확실한 남이다.
또한 사회생활에서 아프다는 말은 하급 중에 하급 변명이다.
그렇게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 채 회사 화장실에서 눈물을 떨굴 수밖에 없었다.
나 자신에게 실망했고 왜 나만 체력적으로 견디지 못하는 건지 억울하고 답답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누워 하루를 돌아보던 중
메시지 알람이 방을 울렸다.
오늘 많이 힘들었죠? 그동안 말 안 했지만 지금까지 잘하고 있어요. 힘내고 내일 봐요.
그녀의 담백하지만 고민했을 그 한 마디가 거짓말처럼 그동안의 고통을 녹여주는 듯했다.
그 고통이 단지 이 말 한마디로 치유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다시 또 열심히 하고 싶다는 의지를 심어주었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에게 작은 인정이나마 받는다는 것.
그것은 그 사람을 다시 뛸 수 있도록 일으켜주는 힘이 되었다.
회사는 춥다. 하지만 회사의 구성원들의 온기로 그 추위를 견뎌낸다.
나도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
남을 위로하는, 격려하는 말을 아끼지 않는 그런 선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