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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가득 담긴 치킨 비빔라면입니다.

3호, 4호, 5호가 모였다.

by 서진


“맞당게.”

“이름이 없응께.”

“아따, 다 이렇게 나온다고 안혀요.”

3호와 4호 할머니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소리가 계단에 들어서자마자 들리기 시작했다.


열려있는 옆집 현관문으로 내가 지나가는 모습 볼 할머니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모두 모여 계시네요.”

“인자 오는갑네. 거 서 있지 말고 드루와.”


나는 항상 고민한다. 짬을 내어 할머니들과 마주할 것이냐? 아니면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그냥 지나갈 것이냐?

내 마음속 야차와 선인이 말다툼 중었긴한데.

아무래도 뭔가 물어볼 말이 있으니 들어오라는 듯한 3호 할머니의 얼굴에 '싫어요.'라고 말하지 못하고, 옆집 4호 할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뭐 재미난 일 있으셨어요?”

3호 옆에 옆집 할머니가 “나도 인자 들어왔네. 근디 이거 쬐까 봐주소.”라며 4호 딸 할머니를 보고 “인줘바.”라고 말이 떨어지자 4호 딸 할머니가 관리비 고지서를 가져왔다.

3호 할머니 왈 “여그 이름이 없다고 자기 거시 아니라고 얼척없이 우긴당게. ”라며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할머니 여기 000동 004호라고 적혀있잖아요.”

“옆집 처자네. 내가 늙어가꼬 귀가 고장 났는가 잘 안 듣겨.”

“할머니네 고지서 맞아요.”

“내 이름 000가 안 적혀서.”

아무래도 4호 엄마와 딸 할머니는 아파트 살이가 처음인가 보다.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에는 이름 말고 동호수가 적혀있어요.”

“그랴도 ‘누구다.’ 허고 이름이 적히야 누구껀지 알제.” 옆에서 지켜보던 딸 할머니도 가까이 다가오며 물어봤다.

“저번 관리비는 누가 내줬어요?”

“할매요. 여적 요양관리사가 봐줬지요이.” 딸 할머니가 엄마 할머니를 바라봤다.

“우리 아덜이 내준당께.”

“그럼 자동이체겠네. 신경 안 쓰셔도 통장에서 자동으로 출금돼요.”라고 말씀드리고 관리비 고지서를 딸 할머니에게 드렸다.

“그려도 얼만지 알아야된께.”라며 엄마 할머니가 말을 이어가셨다.


전라도말로 ‘암시롱’, 알면서 조그만 벌레 하나 가지고도 허허실실로 말을 이어 심심함을 달래는 할머니들이다.

거기에 난 걸려들었다.


“닭 한 마리 시켜 먹게.”라고 웃으며 내 다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던 3호 옆에 옆집 할머니.

“주문해 드려요?”

“자네랑 먹을라고 그라지. 전번참에 잘 먹어가꼬.”


언제였지, 집에 들어오는 길에 옛날통닭, 닭 한 마리에 얇은 밀가루 반죽을 입혀 통으로 튀긴 통닭을 사 온 적이 있었다.


내가 아파트에 들어서자 “인자 들어오는가. 더운데 고생이 많네.”라며 손을 흔들며 베란다에서 3호 할머니가 날 반갑게 맞아주었다.

“네. 안녕하세요. 또 청소하세요?”

“더워서 문 열어 논께, 먼지가 허벌나네.”

팔을 걷어붙인 할머니의 품새가 대대적인 베란다 대청소에 돌입한 모양이었다.

“노인네가 혼자 살믄 더 깨깟이 하고 살아야혀. 나도 예전엔 몰랐는디 살다 본께. 그라드만.”이라고 자주 말씀하셨고.

“나이 먹음 하루에 두 번은 목욕해야 냄새가 안 나.”라며 항상 단정한 몸가짐을 보여줬으며.

“젊은 사람 귀찮게 하믄 못써.”라며 바삐 나가는 날 보면 어여 가라고 손짓을 해주는 옆에 옆집 할머니다.


집에 들어와 통닭을 반으로 자르고 다리와 날개 그리고 몸통으로 나눠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옆에 옆집 할머니 집 방충망을 열고 들어가 식탁에 접시를 내려놓았다.

“할머니 저녁 식사 하셨어요?”

“벌세 묵었제.”

“여기 닭 놓고 가요. 작은놈이라 양은 얼마 안 돼요.”

“먼 닭이랑가. 혼자 묵지. 나까정 챙겨주네.”


라는 일이 있었었다.


“아, 그때 그 닭? 조그마해서 간에 기별도 안 갔을 건데.”

“월매나 맛나게 잘 먹었다고.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어야제.”

“요 앞에 00집은 장사가 잘되는가. 술 마시러 오는 사람도 겁나드만.”

“저기 00 통닭이 이 동네에선 젤 유명하던데요.”

“그람 00 통닭 묵을까? 한 마리 시켜봐.”


내가 닭집에 전화하는 사이 “닭 묵을라고?”우리가 하는 대화를 가만히 듣던 4호 옆집 엄마 할머니가 가까이 다가오셨다.

“난 안 묵을라요.”라며 4호 옆집 딸 할머니가 고개를 돌리셨다.

“저이가 이가 없어서 그라네. 이를 몽창 뽑았당게. 이가 하나도 없어.”


옆집 딸 할머니의 입술이 유난히 오므려 합죽이처럼 보이는 이유가 있었다.

‘아아, 그래서 항상 얼굴이 어두웠구나.’


“근디 내가 이해가 안 가서 물어보는 건디. 이를 뺐으면 빨리 이를 해주야지. 이 뽑은 지 한참인디 아적도 안 해주는 이유가 뭐래?”

“잇몸이 단단해지길 기다리지 않을까요.”

“시멘 굳어지라고.”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그냥 제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그런데 왜 한꺼번에 다 뽑으셨데요?’라는 말은 점점 더 우울해지는 옆집 딸 할머니의 얼굴 때문에 차마 묻지 못했다.


어색해진 분위기에 일단 화제를 돌려야 했다.

“할머니는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엄마 할머니에게 물었다.

“90까지는 세봤는디, 이젠 세봐도 소용없고, 가야된디 데려가도 않고 그라네.”

“할머니 그렇게 안 보여요. 따님이랑 같이 다니면 자매처럼 보이겠어요.”라는 말에 웃는 모습이, 역시 여자든 남자든 ‘젊어 보인다.’, ‘예뻐 보인다.’라는 말은 진리 인가보다.


“할머니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몰라.”라고 딸 할머니가 단호히 말하더니 죄 없는 선풍기만 이리저리 돌렸다.

“할머니 따님 나이가 어떻게 돼요?”

“내 나이도 모르는디, 쟈 나이를 내가 알것는가.”라며 곁눈질로 딸을 한번 바라보더니 시치미를 떼셨다.


“암시롱.”이라고 말하자, 엄마 할머니가 웃으며 “참말로 모르는디.”라며 짓궂게 한 번 더 씨익 웃어넘기셨지만, 옆에서 선풍기만 만지는 딸 할머니를 어쩔까.

"저이는 걍봐도 엄마랑 비슷혀 보인게"라며 3호 옆에 옆집 할머니가 내 귀에 대고 말씀하셨지만, 딸 할머니에겐 들리는 것 같았다.

점점 더 분위기는 딸 할머니를 더 우울한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도저히 어떻게 분위를 바꿔야 할지 몰라, 벌떡 일어나 “닭 찾아올게요.”라며 집을 나섰다.

“닭 왔어요. 어디서 먹을까요?”

“여그, 여그. 쟁반 없다요.”

“할머니 신문지 깔아요.”

“난 안묵응께.”라며 딸 할머니가 신문지를 가지러 작은 방으로 들어가셨다.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쟁반 위에 닭을 옮겨 담았다. 할머니들이 한 조각씩 가져갈 때, 딸 할머니는 묵묵히 닭을 바라보고 있었다.

닭다리와 허벅지살을 내 앞으로 잽싸게 가져왔다.

그리고 살을 발라 딸 할머니 앞에 놔주었다.

“부드러운 살은 조금씩 드실 수 있죠?”라하고 딸 할머니를 바라보자, 할머니가 날 볼 틈도 없이 닭살을 집어 입에 넣으셨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드시는지 뜨거운 닭을 뜯어 내느라, 내 손가락을 호호 불어야 했다.

엄마 할머니도 딸을 위해 살을 발라 딸 앞에 놔주었다.


“콜라 드실라요.”라며 딸 할머니가 닭과 함께 온 작은 콜라병을 나에게 주었다.

“맛나네. 난 콜라 안 먹을랑게 나눠드쇼”라며 지금까지 대화중 가장 밝은 음색으로 말했다.

“자네도 그만 묵어. 내가 챙길랑게.”라며 3호 옆에 옆집 할머니도 부드러운 살만 골라 딸 할머니 앞에 놓아주었다.


세상에 넷이서 닭 한 마리를 다 못 먹다니, 가슴살 네 조각이 쟁반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자네가 가져가게.”

“아니, 할머니가 드세요.”

“한번 묵었으면 됐지. 난 밥 먹을라네.”

“그려 자네가 가져가이.”

“할머니들 심심할 때 데워 드세요.”

“연설하지 말고 가꼬가 먹어.”

딸 할머니가 위생봉지를 가져와 남은 닭을 담아 나에게 주었다.

“넵.”


그리하여 다음날 닭가슴살을 찢어 한 끼를 만들었다.


찬장에서 한 봉지 꺼내온다.

1. 물을 끓인다.

2. 오이와 당근 채를 썬다.

3. 닭가슴살을 찢는다.

4. 끓는 물에 면을 삶는다.

5. 찬물에 면을 헹궈 전분을 빼준다.

6. 면을 삶았던 냄비에 차가워진 면을 넣고 봉지에 들어있던 비빔장을 넣어 비벼준다.

7. 그릇에 담는다.

8. 작년에 만들어 두었던 동치미 국물을 넣어준다.

9. 오이와 당근채를 올린 후 찢은 닭 가슴살도 올린다.

10. 봉지 안에 들어있던 후레이크를 뿌려준다.












네 그렇습니다. 비빔라면입니다.

날이 덥기도 밥 하기 귀찮기도 하여 비빔면을 만들었습니다.

여름이 막 올 때였지요. 비빔면에 얇게 채 썬 동치미 무와 국물을 부어 먹었더니 맛이 괜찮더라고요.

가끔 오이도 올리고 양배추도 넣어 비벼 먹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닭가슴살은 처음 넣어 먹어 봅니다.

식초와 설탕을 살짝 넣어, 더욱 새콤달콤한 맛을 더해 먹어도 좋더군요.

다음엔 닭가슴살이 아닌 회를 넣고 동치미 국물을 더 넣어 물회처럼 먹어야겠습니다.




오늘의 요리 닭가슴살 비빔라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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