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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맛이 필요한 순간 ‘비빔 콩국수’

가장 어려운 일,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기 그리고 개선하기

by 서진


요즘 예능프로보다 더 재미있다는 정치시사프로.


진지하던 예전과 달리 재치 있는 입담에 깔깔깔 웃기도 분노하기도 눈물이 맺히는 가슴을 쓸어 담으며 이야기를 듣고 보고 있습니다. 코미디언도 탤런트도 아닌 법조인들과 정치인, 기자, 교수, 사회참여연대, 일반인 등 다양한 패널들의 과한 듯하면서도 유들유들 답답한 정치 이야기를 풀어주는 프로가 지나간 잘못된 국정에 대해 정치인들과 국민의 뇌리에 박히도록 가슴에 정곡을 찌르고 있지요.


12월 3일 비상계엄이 일어난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전 친구와 다른 지역에서 인생을 배우는 대학생인 서로의 아들. 딸을 만나기 위해 이른 새벽길을 나서기로 했답니다.

커피를 들고 나온 친구를 차에 태웠습니다.

친구가 차에 타자마자 잠은 잤냐고 물어보군요.

“응.”

“그 난리에 잠이 왔는갑다.”라며 절 희한하게 쳐다보더라고요.


그러니까, 비상계엄 당시 저는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는 거 아닙니까!

새벽에 한 시간 떨어진 곳에 사는 친구를 픽업하고 운전도 해야 하니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요.

어느 누가 ‘비상계엄’이 일어날 것이라 예상했겠습니까!


그러면서 어젯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해 탱크도 오고 헬기도 오고 시민들 나와서 군인들과 싸우고 국회의원들 담 넘어 다니고 이리저리 눈 굴려 가며 뺀질거렸던 국회위원, 지난밤 이야기를 침 튀어가며 열변을 토했습니다.

“까딱했으면 우리 애들 못 보러 갈 뻔했다고.”라며 날 답답한 눈으로 바라보더군요.

“김건희 때문에? 특별법 투표도 ‘꽝’ 나겠네. 미친 거 아님? 설마설마했는데 진짜로? 진짜네. 그럼 언제부터 짠 거야? 국방부 장관을 동문으로 바꾼 거네. 와~ 그럼 언제부터 계획한 거래!”

“너 어제 잤다며.”

“정치에 관해 관심 없는 내가 ‘윤석열은 아닌데’ 하고 선거했다니까. 느낌이 안 좋았어. 그래서 더 얘기해 봐.”

“그게 단데. 뉴스를 봐야지. 몇 시간 안 됐다니까.”


그놈에 윤 전 대통령 덕에 아들과 오붓한 시간을 ‘비상계엄’이라는 화두로 밤이 늦도록 젊은 친구들의 의견에 관해 묻고 토론하고 뉴스를 시청했습니다.

그들이 황금 같은 저와 아들의 시간을 빼앗아갔습니다.


집으로 내려오는 내내, 친구와 밤새 있었던 국회 이야기로 평소엔 길고 머나먼 여정 주던 시간이 금세 가긴 했습니다.

친구가 이틀 잠 못 자서 힘들다고 조수석에 앉아 코 골며 자기 전까지는요.


그날부터였습니다.

솔직히 뻔하디 뻔한 하다만 이야기 같은, 드라마라면 조기 중단해야 할 만큼 재미없었던 정치 이야기를 싫어하는 일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대며 시간 날 때마다 국회와 요즘 일어나는 윤 씨와 김 씨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엉덩이에 불난 인간들의 불합리한 행동을 유튜브로 보고 있답니다.


솔직히 처음엔 레거시 미디어라는 TV에서 방영하는 정규 뉴스나 특보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커다란 바구니를 안고 고구마를 동치미 국물 없이 먹는 기분이거나, 물과 소금 없이 찜통에 찌어낸 감자만 올린 밥상과 마주 앉아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요. 괜한 리모컨만 이불 위에 두드려 댔습니다.


그러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워 핸드폰으로 유튜브에서 요리와 관련된 프로를 시청하던 도중 정치 이야기 ‘짤’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절로 손이 가더군요.

귀신에 씐 사람처럼 스르륵 이불에서 일어나 리모컨을 찾아 TV를 켜고 유튜브를 누르고 로그인까지 마쳤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으흐흐흐

이상한 신음소리와 함께 온몸을 비틀고 일어나, 허리를 제치고 ‘아이고 허리야.’를 한번 외쳤습니다.


퀭한 얼굴이었지만 마음만은 조금 후련했습니다. 묵직한 담담함은 조금 헤갈이 된듯한 마음이었습니다.

밤새 찬물을 연거푸 들이키며 윤김 내란 동조세력 등과 관련자 그리고 극우들의 난동에 관한 이야기에 허공 주먹질로 온몸은 약간 찌뿌드드했지만, 각 분야에 종사하는 출연자들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앞으로 좋아질 나라에 희망을 건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진행되는 사건은 조그만 잡초인 줄 알고 호미로 파고 파보니 거대한 덩굴진 뿌리를 틀어박아 포클레인으로도 쉽게 제거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여기저기에서 이권과 돈 냄새 맡고 몰려드는 일부, 소위 지식인과 고위관리라는 사람들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드는 생각 없는 사람들로 인해 수사는 지지부진해 마음이 답답하지만 기다려야겠지요.


이재명 대통령 새 정부가 들어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던 국가를 바로잡으려 노력하고, ‘인사가 만사다.’라는 어려운 일에 봉착하기도 하지만 민생안정을 우선시하는 모습에 한 표를 보냅니다.

아무리 제거한다 해도 잔뿌리가 다시 자라 또 다른 덩굴진 거대한 뿌리가 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지요.


저도 그 뿌리를 제거하는데 힘들 보태고 싶지만, 가진 힘이 미력하여 죄송한 마음입니다.

다가갈 수 있다면, 이 무더운 여름 고생하는 분들께 ‘시원한 비빔 콩국수’ 한 그릇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우파, 좌파 따지지 말고 흑, 백 논리도 따지지 말고 서로 맞춰 살면 얼마나 좋은 세상일까요. 하지만 세상엔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맞춰나간다는 것.’

맞춰나간다는 말. 당연하면서도 어렵고 새로운 방향을 만들자는 말일 것이라 개인적인 생각을 말해봅니다.

지금과 지금을 맞춰서 새로움으로 서로를 이해해 주고 양보하며 개선해 나가는 밝은 마음의 말입니다.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저도 노력해야 하는 한 가지일 것 같습니다.

저만 보아도 내 가족, 바로 옆 이웃의 마음도 이해하고 양보하기 어려운데, 그런 일이 가능할까 싶긴 합니다.


안 그래도 어제, 비가 오는 것 같아 문을 열고 나가봤습니다.

마늘 냄새가 솔솔 풍겨 오더라고요. 3호와 4호 할머니들이 모여 그 새끼손톱만 한 마늘을 까고 있는 겁니다.

못 본 척하고 싶지만, 어쩌겠어요. 할머니들 틈을 비집고 앉은뱅이 의자 위에 앉았지요.

“뭣 할라고. 손들어워진디.”

“할머니 그냥 오늘 다 깔까?”

“이게 단디.”

“그럼 얼른 깝시다.”

정말 할머니 세 분과 저는 열심히 깠습니다. 모기에 물려가며 ‘오늘은 이 작은 마늘을 끝낼 거야!’라는 각오로 후덥지근한 날씨에 땀 흘리는 것도 마다하고 마무리했습니다.

드디어 새끼손톱만 한 마늘은 이제까지 않아도 됩니다.

마늘 까던 자리를 정돈하고 할머니집에 마늘 꾸러미를 식탁에 올리고 사용하던 칼을 깨끗이 씻어두었지요.


찐득한 땀과 먼지 때문인지 콩국수가 당기더군요.

콩을 불리고 끓여서 갈아 콩물을 만들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두유 만드는 기계를 빌렸습니다.

할머니가 콩국수용 대두도 주시기에 받아서 집으로 왔습니다.


시원하게 샤워하고 되직하게 갈아 놓은 콩물에 소금 간하고 청문회를 보고 있었지요.

누군가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을 열었더니 옆에 옆집 할머니가 서 계셨어요.

“암만 기다려도 안 오길래, 찾아왔당게.”라며 저희 집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은 식탁을 본 할머니가 “콩국수 안혔어?”라며 식탁에 기대 서 계셨습니다.

“어! 같이 드신다는 말이 없으셔서. 어쩌죠. 저는 소금만 살짝 넣은 콩국만 먹고 있었는데. 드릴까요?”

“아녀, 콩국만 어찌 먹는당가. 집이서 밥 먹으면 되네.”라며 뒤돌아 신발을 신는 할머니였습니다. 콩국을 한 사발 들고 그 뒤를 냉큼 따라나섰습니다.


할머니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후회했습니다.

그깟 국수 삶는 게 뭐라고, 시원하게 콩국수 한 그릇 말아드릴걸.

제가 크려면 아직 멀었나 봅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친구와 양보하며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많이 하지요. 아직 사회성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의 아이들에게 말입니다.

지하철, 버스나 공공장소에 항상 보이는 문구 ‘양보’, ‘줄을 서시오’, ‘자전고용 도로’ 등. 가장 기본적인 문구가 많이 붙어있는 이유는 우리가 기본적인 걸 지키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어른이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말은 어른들이 가장 지키지 않는 말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할머니를 위해 특별한 ‘비빔 콩국수’를 만들었습니다.


대두와 병아리 콩을 깨끗이 씻어 두유기계에 넣습니다.

감자, 호박, 당근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놓습니다.

그릴 팬에 감자와 호박, 당근을 구웠습니다.

감자와 호박, 당근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뜨거운 팬에 기름을 두르고 튀겨내듯 볶아내도 됩니다.

붉은 양파를 작은 크기로 썰었습니다.

홍. 청 고추도 다지듯 썰어 줬습니다.

냉장고에 넣어둔 되직한 콩죽을 꺼냈습니다. 볼에 넣습니다. 시원한 물을 넣고 농도를 확인했습니다. 소금으로 간을 했습니다.

볼에 구운 감자, 호박 그리고 당근을 넣고 소금·후추 간을 해줍니다.

끓는 물에 국수를 넣어 삶았습니다. 면수가 끓어 넘칠 것 같아 물을 조금 넣기를 4번 반복했습니다.

중면을 사용해서 소면을 삶을 때보다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삶아진 소면을 찬물에 헹궈줬습니다.

그릇에 예쁘게 담아냈습니다.

참기름을 살짝 둘러도 맛있겠지만 할머니는 전라도분답게 달달하게 설탕을 넣어 드셔서 참기름은 두르지 않았습니다.

볶은 견과류를 뿌려도 좋습니다.


생소한 음식과 맛임에도 할머니가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며 좋아하셨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 스파게티 같은 ‘서양요리’ 좋아해요?”라고 물었을 때,

“난 암거나 다 잘 묵제. 그란 것도 먹고.”라며 저에게 맞춰주신 말인 것 같았습니다.

우린 입맛이 서로 다르지만, 안 먹겠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저 챙겨주는 마음이 고마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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