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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쓰레기가 문제였다

생채, 가지김치, 오이가 들어간 부추김치.

by 서진


게을러...



부지런 떤다고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아깝다고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나중에 꺼내 본다며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저장식품을 꺼내 놓았다.

요리에 사용할 요량으로 만든 레몬청, 자두청에 작년 가을에 만들어 두었던 탱자청과 모과청까지 있었다.



유리병에 들어있는 청을 채반에 담아 청과 과육을 분리하고 펄펄 끓는 물에 소독한 병을 준비해 두었다.

청을 소독한 병에 넣고 남은 과육을 사용 후 모아 놓았던 비닐봉지에 넣어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차양막 그늘진 쓰레기장 한쪽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이지만 날씨가 날씨인지라 뜨끈한 수거통에 담긴 음식물 쓰레기에서 풍기는 냄새.

숨을 한번 참아야 했다.


음식물 수거통 뚜껑을 열고, 잠시 내 눈을 의심했다.

저것은 ‘쌀.’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요상한 정체. 가만히 살펴보았다. 아무리 궁금하다 해도 손을 수거통에 넣어 만져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쌀에 가려진 저것은 ‘생닭 한 마리’

주위에 널려있는 재료들을 보아하니, 백숙하려 준비해 두었던 모양인데, 왜 버렸을까?


쌀과 닭의 색으로 보아, 냉장고에서 오랫동안 묵혀진 상태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백숙 재료를 준비해 놓고 깜빡하고 차 안이나 베란다 혹은 찬장에 내버려 두었을까? 그렇다 하기엔 요즘 날씨가 너무 너무너무 더워 음식물이 부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악취로 모를 수 없었을 것인데.


하여간 수거통 안에 들어있는 어떤 이유로 버려졌는지 모를 멀쩡한 음식을 보면 가끔 한숨이 나온다.


유엔환경계획 UNEP (UN Environment Programme)에 따르면 매일 식량이 부족한 전 세계 8억 명 이상에게 주고도 남을 10억 인분의 음식물이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있다고 하던데.

더군다나 음식물 쓰레기가 가장 많이 버려지는 장소가 음식 서비스 소매업(12%) 일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일반 가정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전체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한다.


전체 쓰레기양의 23%가 음식물 쓰레기라는 우리나라.

UNEP 집게에 따르면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평균 전 세계 1인이 78kg에 반해 한국은 95kg이라 한다.

예전 조사에서 바라보면, 선진국에 비해 개발도상국의 음식물 쓰레기 반출이 높았다. 가장 큰 이유로는 식품 보관 시스템의 부족으로 발생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냉장고 1대는 기본이며 김치냉장고를 필수로 갖춰 놓는 나라. 나의 옆에 옆집 할머니 집에도 2대나 있는 김치 냉장고.

집에 밥 해 먹을 일이 없다는 나의 지인 집엔 2대의 냉장고, 2대의 김치 냉장고, 거기에 냉동고까지 있던데.

그래서인가?

냉장고가 미어터져 몇 번째 칸에 무엇이 쟁여있는지 모르는 우리. 그렇기에 냉파 ‘냉장고 파먹기’가 화두가 되는 나라. 우리나라.


쓰레기를 줄여보려 누르고 눌러 꼭꼭 짜낸 과육 한 봉지지만, 쓰레기가 들린 손이 부끄러웠다.

아아,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 온 비닐봉지도 쓰레기구나.


그나저나, 닭 뼈는 분리해서 넣어야 하는데...


그리하여 나는 다시 냉장고 정리에 들어갔다.


게을러 내일로 미뤄 두었던 준비를 하려 한다. 그래야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줄어들 테니 말이다.


무, 가지, 부추, 쪽파 그리고 당근을 꺼내 손질을 시작했다.

베란다에 있는 양파도 종이봉투 안에서 꺼내 왔다.

무와 당근을 닦아 껍질을 벗기고 한쪽 채반엔 껍질 벗긴 무와 당근을 다른 채반엔 벗겨낸 껍질을 담아 놓는다. 그리고 양파의 껍질을 벗겨 씻은 뒤 무와 당근이 담긴 채반에 담았다.

무와 당근 그리고 양파의 껍질은 물기를 빼고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채수를 낼 때 사용 할 생각이다.


찜기에 물을 담아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큼직한 가지를 길이로 네 등분하고 다시 손가락 길이만큼 썰어 살짝 데쳐 낸 후 차갑게 식혔다.


무 한 통을 채 썰었다.

아침부터 이게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다.

음식물 수거통에 있던 닭만 아니었더라면 내일로 미루었을 일인데.


새끼손톱만 한 마늘을 그 어렵게 깐 마늘을 푸드 프로세서에 넣어 다져 놓았다.

믹서에 간 마늘, 생강, 양파, 새우젓, 사과잼, 모과청 그리고 까나리 액젓을 넣어 양념을 곱게 갈아 놓았다.

스테인리스 볼에 썰어 놓은 무채 2/3를 넣고 믹서에 갈아 놓은 양념과 소금 약간 그리고 고춧가루를 넣는다.

총총 썰어 놓은 쪽파를 넣어 버무린다.

맛을 보고 조금 싱겁다 싶어 까나리 액젓을 더 넣어 주었다.


조금 커다란 김치 통에 하나, 조그만 반찬통에 하나.


믹서에 들어있는 남아있는 양념에 무를 넣어 다시 곱게 간다.

씻어 채반에 놓은 부추는 가지와 비슷한 크기로 썰어 볼에 넣는다. 청·홍고추, 양파와 당근을 채 썰어 넣는다.

차갑게 식은 가지를 넣고 양념장과 소금 그리고 고춧가루를 넣어 버무려 준다.


간을 보고 조금 커다란 김치 통에 하나, 조그만 반찬통에 하나.


남은 부추는 어쩔 것인가?

쪽파도 남았다.


냉장고에 씁쓸해서 생으로 먹기 힘든 오이지를 꺼내와 씻었다. 대충 어슷어슷 썰어 가지를 버무렸던 볼에 넣었다. 사실 부추김치로 먹을까 싶었지만, 오이를 넣어 익혀 먹어도 나쁘지 않지 않겠냐는 단순한 마음으로 벌린 일이다.

남은 양념장을 마저 넣고 까나리 액젓과 고춧가루를 넣고 오이를 버무려 맛을 봤다. 마늘을 조금 더 넣고 쪽파와 남은 부추를 썰어 넣었다.

이것은 오이김치라기보다 오이가 들어간 부추김치라 불러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조금 커다란 김치 통에 하나, 조그만 반찬통에 하나.


남은 무채 1/3.

팬을 꺼내 들기름 1: 참기름 1: 올리브 오일 2 비율로 넣고 뜨거워지면 무채를 넣는다.

마늘을 조금 넣는다.

집 간장과 소금을 넣어 잘 볶아준다.

채수나 물을 살짝 넣고 뭉근하게 끓여준다.


정말 마지막으로 조금 커다란 반찬통에 하나, 조그만 반찬통에 하나 담아 놓는다.



정말 다행이었다.

게으른 내가 계속 유지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먹만큼 나 온 음식물 쓰레기.

아침부터 계획 없이 움직였더니 피곤하지만, 뿌듯한 이내 마음.


벌써 2시가 넘어 3시로 가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서둘러 에코백에 작은 반찬통을 담아 옆에 옆집 할머니 댁으로 갔다.


한 동안 김치만 먹고살겠구나.

생채가 익으면 남은 열무 넣고 달걀부침 넣고 비벼 먹자.

아아, 가지와 호박도 볶아 넣어야겠는걸.

그리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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