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자락, 서촌의 한 한옥집에서 2026년 첫 진저티파티 GPGG(지피지기)가 열렸습니다. 새로운 구성원, 새로운 조합으로 한 해를 시작하며 우리는 어떤 조직인지, 어떤 사람들이 모인 팀인지, 그리고 지금 어떤 질문 앞에 서 있는지 함께 살펴보는 시간이었어요. 진저티의 지난 12년을 다시 읽고, 동료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새롭게 만나며, 지금 우리 안에 있는 가치와 고민을 들여다본 1박 2일. 이번 진저티파티는 ‘진저티다움’을 다시 생각해보는 자리였습니다.
먼저 진저티프로젝트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진저티다움의 히스토리를 기억하고 있는 지혜님, 그리고 진저티의 재정과 운영 흐름을 가장 가까이에서 읽어온 선자님의 시선을 따라 12년의 여정을 함께 짚어보았습니다. 청년, 로컬, 여성, 조직문화 등 진저티가 다뤄온 아젠다들은 서로 단절된 프로젝트들이 아니라, 질문을 따라가며 조금씩 넓어지고 깊어져 온 실험의 축적이라는 점이 또렷하게 느껴졌습니다. Z세대를 이해하려 했던 연구가 자립준비청년과 가족돌봄청년 사업으로 이어지고, 낯설었던 로컬 현장이 ‘밀양은대학’, ‘로컬라이즈 군산’을 지나 더 넓은 지역들로 확장되어 온 과정, 그리고 그때그때 새로운 사람과 아젠다를 만나며 조직의 모습도 함께 달라져 왔다는 이야기가 이어졌어요.
그 변화의 과정에는 준비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필요 앞에서 ‘어쩌다 PM’, ‘어쩌다 대표’가 되어가며 함께 버텨온 시간도 있었습니다. 진저티의 지난 시간은 잘 짜인 성장 서사라기보다, 서로를 붙들며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끊임없이 적응해온 시간에 가까웠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마주한 주제와 현장, 조직 안의 조건들은 달라져 왔지만, 그 안에서 변하지 않은 진저티의 철학도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지원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사람 안의 가능성을 잃어내며 변화의 주체로 만나려 했다는 것. 효율보다 한 사람의 맥락과 힘을 끝까지 존중해왔다는 점 역시 진저티가 오래 붙들어온 감각이었습니다.
지금의 진저티가 마주한 고민들도 솔직하게 오갔습니다. 파트너로부터 "소통이 어렵다"는 피드백을 들었던 순간, 솔직한 대화가 줄어들고 있다는 자각, 일의 재미보다 생존의 압박이 먼저 와닿던 시기. 진저티가 왜 지금 다시 스스로를 들여다봐야 하는지,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를 나눴어요. 동시에 ‘진저티다움’을 이해하는 방식은 각자의 경험만큼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는데요. 결국 중요한 것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붙드는 것이 아니라, 꼭 가져가야 할 본질과 지금의 구성원과 환경안에서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부분을 함께 조율해가는 일이라는 데 생각이 모였습니다.
조직에 대한 해석은 2일차에 열린 현중님 세션에서 더욱 확장되었는데요. SSIR Korea 한국어판에서 에디터를 맡아오다, 지난 1월 진저티프로젝트의 팀장으로 새롭게 합류한 현중님은 fresh eye로 그간의 진저티프로젝트 사업 포트폴리오를 ‘내러티브’라는 키워드로 다시 꿰어 해석해주셨습니다.
진저티는 변화의 주체를 '우리'가 아닌 '누구나'로 설정하고, 당사자의 맥락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내러티브로 엮어내는 일을 해왔다는 것. 이를 바탕으로 사업은 세 가지로 분류됐어요. 당사자와 협력적으로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내러티브 파인딩', 그 내러티브를 기반으로 당사자 주도의 변화를 촉진하는 '내러티브 기반 변화 촉진', 그리고 발견한 내러티브를 더 많은 사람에게 확산해 변화에 초대하는 '센스메이킹'.
이 분류는 진저티가 해온 일을 설명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방향을 고민하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이 언어를 외부에 어떻게 전할지, 내부에서는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구성원들이 어떻게 공통의 기준을 세워갈지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습니다.
진저티의 공식 MC 승현님이 기획한 세션에서는 각자의 역량과 강점, 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경험 등, 말 그대로 서로의 이력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함께 일하고는 있지만, 각자가 지나온 시간에 대해서는 의외로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한 시간이었어요.
뜻밖의 알바를 했던 경험, 교환학생 시절 파티를 즐기던 모습,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났던 시간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들이 하나씩 나왔고, 익숙하던 동료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일하는 태도와 성향이 사실은 오래전의 선택과 경험 안에 이미 담겨 있었다는 것도 보였고요.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동료가 어떤 일까지 해본 적이 있는지, 무엇은 잘하고 무엇은 어려워하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자 함께 합을 맞춰갈 때의 새로운 가능성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동료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앞으로의 협업을 상상해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치관 워크숍 세션을 가졌습니다. 조직 바깥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만큼이나 지금 조직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일도 중요하죠. 구성원이 바뀌고, 새로운 조합이 만들어질 때마다 진저티의 모습도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면, 결국 진저티다움은 각자의 자기다움이 만나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점에서 스스로의 삶에 큰 영향을 준 경험을 하나씩 꺼내어 나누고, 그 안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설명하는 키워드를 찾아보았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지금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어떤 미션을 품고 일하고 있는지를 조금 더 또렷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 안에는 공통적으로 변화에 대한 의지가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변화의 대상은 자기 자신일 수도, 타인일 수도, 사회의 시선이나 더 큰 시스템일 수도 있었지만, 누군가의 삶에 더 나은 변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의 결은 어딘가 닮아 있었어요. 특히 자신의 취약함이 오히려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들고, 그 이해가 변화를 향한 감각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 여러 이야기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준비된 세션들 외에도, 밤늦게까지 카드 게임에 열을 올리고, 인왕산을 함께 오르며 땀 흘리고 웃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저티를 떠나는 승현님을 배웅하는 자리도 함께했어요. 매해가 새로운 진저티이지만, 요즘의 진저티는 분명 하나의 전환점을 지나는 중인 듯합니다. 떠나는 동료를 잘 페어웰하고, 새로운 구성원을 맞이하며, 지금의 조합으로 다시 호흡을 맞춰가는 일. 이번 진저티파티는 그 재정비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진저티 안에서는 우리가 어쩌면 '미션 중심의 창발적 조직'에 가까운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곤 해요. 조금 낯선 표현이죠. 창발(emergence)이란, 서로 다른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미리 의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패턴과 가능성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진저티가 말하는 '미션 중심의 창발적 조직'이란 이런 거예요. 건강한 변화를 만든다는 미션 안에서 다양한 실험과 시도가 자유롭게 일어날 수 있는 조직. 하나의 고정된 답에 머무르기보다, 그때그때 필요한 방향으로 길을 열어가는 조직. 지금 시점에서 진저티가 다시 그려보고 있는 진저티다움은, 바로 그런 모습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진저티가 열어갈 길을 함께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