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레싱/ 민음사
데이비드를 만나기 전까지 해리엇은 처녀였다. 생리학적 상태로서의 처녀 말이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이 알면 소리 질렀을 것이다. 아직도 처녀야? 너 미쳤니?
해리엇은 생각했다. ‘처녀’란 올바른 상대가 나타났을 때 줄, 예쁜 종이로 여러 겹 포장한 선물 같은 거라고. 데이비드를 본 순간 바로 알았다. 그는 해리엇이 기다려온 남자였다. 해리엇은 데이비드를 만난 첫 날 그와 잤다. 데이비드는 사려 깊은 남자였고, 무엇보다 해리엇과 비슷했다. 보수적이고 반듯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는 점에서.
둘은 자식을 많이 낳을 예정이었다. 여섯이나 일곱 정도. 그래서 아주 큰 집을 샀다.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태어날 아이들을 위한 무성한 정원과 방이 여러 개 있는 삼 층짜리 집을.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해리엇은 스물넷이었다. 애를 가질 수 있는 동안에는 힘껏 애를 가져야 한다고 해리엇은 생각했다. 데이비드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이를 많이 낳겠다는 자신들을 왜 사람들이 비난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첫 아이를 낳자 드디어 꿈꾸던 행복에 첫 발을 디딘 기분이었다. 첫 아이로는 부족했으므로 둘째를 낳고, 셋째를 낳고, 넷째를 낳았다. 해리엇은 병원을 거부하고 안방 침대에서 산파의 도움을 받으며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를 낳았다. 해마다 몇 십 명씩 손님들을 초대해 부활절 축제도 열었다.
해리엇은 행복했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 아이를 넷은 더 가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6년 동안 넷이나 낳았으므로 몇 년은 휴식기를 가지기로 했다. 넷째 아이를 낳았을 때 맞이한 부활절 축제는 최고였다. 넷째 아이를 낳았을 때까지는 완벽했다. 실수로 휴식기 없이 곧바로 다섯째 아이 벤을 임신하기 전까지는.
벤을 임신한 후 모든 게 달라졌다. 일상이 무너지고 가족이 붕괴되고 행복은 산산조각 났다. 그 모든 일이 다섯째 아이로부터 비롯되었다. 누구와도 같거나 비슷하지 않고 낯설고 이질적인 다섯째 아이, 벤이 태어난 후로.
해리엇은 납득할 수 없었다. 자신이 뭔가를 잘못했는가. 그녀는 단지 아이를 많이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려 했을 뿐이었다. 인생은 예측불가능하고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어떤 일에는 납득할만한 이유란 게 존재하고 않고 그것이 자연의 속성이며 불행은 이유 없이 무작위로 도둑처럼 들이닥치기도 한다는 걸 해리엇은 알지 못했다.
다섯째 아이가 들어섰을 때 해리엇은 임신 3개월째부터 강한 태동을 느꼈다. 이전에는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5개월이 되자 태동 때문에 배가 부풀고 뒤틀렸다 다시 가라앉았다. 해리엇이 불안해하자 의사는 진정제를 처방해 주었다. 뱃속 아이는 끊임없이 발길질을 하고 격렬하게 움직였다. 고통 때문에 울어야 할 정도였다. 진정제를 먹으면 한 시간 정도 태동이 멈추었다, 해리엇은 데이비드를 속이며 진정제를 먹는 횟수를 늘렸다.
무언가,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뱃속에 들어있었다. 뱃속 존재는 뭔가를 상대로 사투를 벌이듯 무섭게 움직였다. 망상이 해리엇을 사로잡았다. 누구도 그녀의 고통을 이해해줄 수 없었다. 환영과 망상과 고통을 참는 시간들을 지나야 했다. 해리엇은 뱃속 존재가 피곤해지도록 몸을 혹사하고, 뱃속에서 신호가 느껴지면 진정제를 먹었다. 고통을 벗어나려면 뱃속에 있는 아이를 꺼내야 했다. 해리엇은 부엌칼을 잡고 자기 배를 갈라 애를 꺼내는 상상을 했다.
마침내 진통이 시작되었을 때 해리엇은 집 대신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달수를 못 채우고 태어났는데도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컸다. 뻣뻣하고 무겁고 근육질에 누르스름했다. 젖을 물리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1분도 안되어 한쪽 젖을 다 비우고 잇몸으로 젖꼭지를 물어댔다.
부부는 다섯째 아이에게 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해리엇은 도저히 벤을 좋아할 수 없었다. 늘 좋은 아버지였던 데이비드마저도 아이를 만지지 않았다. 누구도 벤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는 짐승 같았다. 아이는 사랑의 결실이 아이라 태어나겠다는 자기 의지를 가지고 태어난, 해리엇이나 데이비드 그리고 둘이 낳은 네 아이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존재였다.
해리엇은 생각했다. 자신들은 너무나 평범하고, 그래서 이런 이질적인 대상에 대해 아무 방어능력이 없는데, 이 혐오스러운 존재가 태어나 자신들의 평범함을 침범했다고. 비난, 비판, 혐오. 벤은 이런 감정들을 불러 일으켰다.
벤이 태어난 후 집안에는 긴장감과 경계심이 감돌았다. 해리엇은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한다고 여겼다. 원시시대에 변종을 낳은 여자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았다. 개가 목이 졸린 채 죽고, 몇 개월 후 고양이도 목이 졸린 채 죽었다. 모두들 벤이 한 짓이라고 믿었다. 벤이 한 첫 말은 ‘엄마’나 ‘아빠’가 아니라 “난 케이크를 원해”였다. 벤은 무겁고 탁하고 불확실한 목소리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만 요구하며 말했다.
아주 많이 다르다는 것. 생김새도 행동도 말투도 목소리도 여느 누구와도 다르다는 것. 벤의 출생은 다르다는 것이 불러일으키는 공포와 불편과 혐오를, 계기가 없어 묻혀있던 감정들을 밝은 빛 아래로 끌어올려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였다.
저 아이는 다른 종족이다. 해리엇은 생각했다. 벤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가 다른 종족이라고 믿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는 그 아이의 존재를 납득할 수 없었다. 자기가 뱃속에 품고 있다 낳은 아이지만 벤은 보통의 인간들과 달랐다.
벤을 요양소로 보낸 뒤 데이비드는 말했다. 그 앤 내 애가 아니라고. 데이비드에게 나머지 네 아이는 자신의 아이들이 확실했지만, 벤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나머지 네 아이와 해리엇을 보호하려면, 자신이 원래 꿈꾸고 계획했던 행복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려면 벤을 영원히 격리시켜야 했다. 첫째 아이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벤이 우리와 아주 달랐기 때문에 데려간 거라고. 벤이 사라지자 가족들은 물에 불린 종이꽃처럼 피어났다.
죄의식 때문에 해리엇은 잘 수 없었다. 결국 그녀는 요양소에 갇혀 있는 벤을 데려왔다. 벌거벗은 채 구속복에 갇혀 강한 마취제를 맞고 실신해 있는 벤을. 요양소 직원은 말했다. 이 아이는 힘이 무지 세며,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항상 싸우고, 그래서 더 큰 주사를 맞아야 하며, 그게 바로 이 아이를 죽게 만든다고.
벤을 데려온 후 해리엇은 가족들과 멀어졌다. 가족들은 그녀가 자신들에게 등을 돌리고 벤과 함께 낯선 땅으로 가는 것을 선택했다고 느꼈다. 벤 같은 아이가 또 태어날까봐 해리엇은 피임약을 먹었다. 자연의 섭리에 손을 대다니. 벤을 낳기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죄책감 때문에 벤을 집으로 데려왔지만, 이 다섯째 아이에 대한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그 애는 인간이 아니었다. 오래 전 지구에는 인간과는 다른 인종이 살았을 것이다. 그것들은 한때 진짜 존재했을 것이다. 벤이 바로 그 증거였다. 해리엇은 의사에게 호소했다. 오래 전 어떤 종족이 존재했다는 걸 누군가 말해주어야 한다고, 그래서 그게 사실이란 게 인정되어야 한다고. 누구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는 걸 해리엇은 참을 수 없었다.
권위 있는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해준다면 벤이라는 이 낯선 종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벤은 다른 말로는 설명 불가능했다. 인간 한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께름칙함, 이질적인 대상에 대한 공포. 벤을 낳았다는 이유로 해리엇 역시 께름칙한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해리엇은 식탁에 앉아있었다. 한때는 이 식탁에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떠나버렸다. 벤이 가족의 일원이 된 후 첫째 아이가 떠나고 둘째와 셋째 아이 넷째 아이가 떠났다. 데이비드는 며칠에 한 번씩 집에 돌아왔다. 벤도 패거리들을 따라 집을 나가게 될 것이다.
오래 전 이 식탁은 풍요로웠다. 해리엇이 꿈꾸었던 행복이 이 식탁을 중심으로 꽃 피었었다. 식탁은 여전히 고요하고 부드러운 광채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벤을 요양원에 남겨 두었더라면, 식구들은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해리엇을 홀로 남겨두고 떠나버렸다. 벤을 죽게 내버려두었다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해리엇은 그러지 못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인가. 이질적인 존재는 격리시키고, 정상적인 사람들과만 어울려 지냈어야 했던 걸까.
벤이 태어난 후 해리엇은 자신이 죄인 같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네 아이를 낳았을 때는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네 명의 정상적이고 똑똑한 아이들을 낳다니, 정말 멋지고 훌륭하구나!” 정상적인 네 아이를 낳은 데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던 사람들이 벤을 낳은 것에 대해서는 비난의 눈길을 보냈다.
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자신과 같은 종족들이 어디엔가 더 있다고 생각할까. 이 지상에서 한때 살았던 종족, 그들은 우리 내부에 틀림없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녀는 단지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이를 많이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게 욕심이었을까. 그녀는 살면서 한 번도 행복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해지려고 했기 때문에 벌을 받아 불행해진 걸지도 몰랐다. 집안에 여덟 명의 아이가 있고 모두가 행복해하는 꿈꾸던 삶으로부터 그녀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도리스 레싱은 한 인터뷰에서 ‘다섯째 아이’를 쓰는 데 실마리를 준 사건 두 가지를 밝혔다. 하나는 인류학자의 글이고, 하나는 네 아이를 낳은 한 여자가 잡지에 기고한 글이었다. 인류학자의 글은 빙하시대의 유전자가 우리에게도 전해져 내려온다는 내용이었다. 네 아이를 낳은 여자가 잡지에 기고한 글은 정상적인 세 아이를 낳은 뒤 네 번째로 낳은 딸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망쳤다고 하소연하는 내용이었다.
도리스 레싱의 소설은 모성애, 부모로서의 의무, 개인과 집단 등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바라보고 믿어왔던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도록 한다.
그녀는 평생을 관찰자로 살았다. 어떤 집단이나 그룹에 동조하기를 거부했다. 어린 시절을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황야에서 보냈고, 열네 살에 학교를 그만 둔 뒤 간호보조원, 타이피스트, 전화교환원 등으로 일했다. 이란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에 정착하기 전까지 25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살았다. 결혼해 세 아이를 낳았고 가정주부의 삶이 맞지 않다고 느껴 이혼한 뒤 글을 썼다. 그녀는 결혼생활을 포기한 이유가 글쓰기를 위해서라고 밝혔다. 글 속에서 다양한 사회문제를 건드렸고, SF소설도 여러 편 썼다.
도리스 레싱은 여든여덟 살이 될 때까지 계속 해서 글을 썼다. 여든여덟 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역대 최고령 수상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