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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니 Jan 03. 2022

혜택 받은 삶을 산다는 자각

매일 지은 1호 - 공부를 통해 얻은 시선


살다 보면 내가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 집중하게 될 때가 있다.


부동산, 주식, 차, 전자기기, 옷 등 더 나은 것을 갖고 싶다는 욕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다.


내가 매일 밤 두 시간씩 공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보다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이들은 알고, 나는 모르는 것이 무언인가에 대한 호기심. 그 갭을 공부가 채워주리라 기대했다.


이처럼 욕망은 삶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연료가 된다. 가고 싶은 모습이 있어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니까. 하지만 욕망의 대상이 소유에 머물러있는 한,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욕망과 문제를 구분하지 못할 때 우리의 삶이 꼬이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갖지 못했다는 문제에 지나치게 매몰되면 내가 가진 것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다. 분명 몸을 누일 수 있는 방 한 칸이 있음에도 생각은 끊임없이 내게 없는 전셋집, 내게 없는 아파트로 향하다가 이대로는 벼락 거지가 되어 길에 나앉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적어도 공부를 시작하기 이전에 내가 가진 생각의 패턴이었다. 나는 번듯한 커리어와 안락한 삶을 가진 것에 비해 매우 불안한 사람이었다.



우리의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저는 한국의 대학생들이
재능기부를 필요로 할 만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한 유명 작가가 자신에게 무료 강의를 요청하는 대학생들에게 거절의 이유를 밝혔다. 나는 이 말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11학번인 나는 입학사정관 제도와 함께 대학에 들어가 아프니까 청춘을 읽으며 대학생활을 보낸 밀레니얼 막바지 세대다. 그때는 스펙이 될 수만 있다면 재능기부도 마다하지 않던 때였다. 기업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대학생들의 시간과 노력을 마케팅에 활용했고 무급인턴은 취업을 위해 당연히 거치는 관문이었다. 그만큼 누군가의 재능은 무료로 나눌 수 있다는 개념이 퍼져있었다.


하지만 그 작가는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것은 전 세계 인구를 놓고 봤을 때 특혜 받은 계층에 속함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자칫 냉정하게 들리는 이 말은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었다. 2020년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70%를 상회한다. 반면 같은 시기 아프가니스탄의 대학 진학률은 5%에 불과하다.


아동 국제구호 NGO에서 근무하는 나는 저소득 국가의 가족이 마주하는 문제가 생존과 직결되어 있음을 매일 눈으로 확인한다. 하루 1달러를 벌 수가 없어서 피눈물을 흘리며 갓 낳은 아기를 남한테 주거나, 열 살 남짓한 아이들이 길바닥으로 돈을 벌러 나가는 일이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다. 그들이 내가 지금 가진 것만큼을 누리기 위해선 수많은 기적이 필요하다. 이들이 겪는 문제를 보고 있자면 내가 '문제'라고 칭하는 것들은 사치에 불과했다.



시야를 확장하는 공부


나는 앞서 내가 공부를 시작한 동기가 '갭을 채우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나보다 많이 가진 이들은 알고, 나는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내가 습관적으로 보던 세상 그 이상을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틀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내가 가진 욕망을 문제로 보는 시선을 거두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러자 다른 세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혜택 받은 사람이에요



지난 1년 간 매일 두 시간씩 공부하면서 선생님께서 여러 번 강조한 말이다. 굳이 머나먼 나라의 누군가까지 생각을 넓힐 필요도 없었다. 내가 얻은 모든 기회의 뒷면에는 누군가의 실패가 있었다.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누군가는 그토록 원하던 신입생 타이틀을 놓쳤다. 내가 일자리를 얻었을 때 누군가는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우리의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나보다 훌륭한 자세를 가지고, 훨씬  간절한 마음을 품었을 누군가는 내가 깔고 앉은 기회로 인해 낙담했을 것이다. 내가 혜택을 받은  내가  나은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삶에 충분히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은 기본에 불과했다.  배움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더 큰 책임이 따라왔다. 내가 누린 혜택을 세상에 돌려줘야 하는 다음 단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


파키스탄의 총리 임란 칸은 유명한 크리켓 감독이자 영국 대학의 총장이었다.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국가대표 크리켓팀의 주장으로 활약했고 옥스퍼드 대학에 다니며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온 그였다. 자신의 앞에 놓인 꽃길을 걸으며 초엘리트의 삶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삶은? 그는 자신의 고국 파키스탄으로 돌아가 병원과 대학을 설립한다. 그리고 정치에 입문해 국가를 재건하고 주변국과의 평화를 회복하는 한편, 파키스탄의 미래 세대를 교육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세상에는 자신이 받은 혜택을 사회에 되돌려놓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예전의 나라면 '저 사람은 이미 가진 게 많으니까'라고 얘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삶을 지탱해주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 준 기회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내 나름으로 넘쳐흐르는 혜택을 누리며 살아왔다. 이 자각은 나를 더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적어도 내가 배운 것을 글로 쓴다는 것은 내가 얻은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나를 깨우치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쏟은 선생님, 오랜 기간 인류의 노력으로 축적된 지식을 공짜로 얻어먹고 꿀꺽 삼켜버리는 욕심쟁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욕망을 문제로 바라보지 않을 뿐 나는 여전히 많은 것들을 욕망한다. 더 배우고 싶고, 더 누리고 싶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 다만 이제는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한 노력으로 욕망이 채워지지 않음을 안다. 지식을 소유하지 않고 나눈다. 기회를 소유하지 않고 나눈다. 내가 받은 혜택을 더 이상 나만의 것으로 소유하지 않으리라는 다짐. 내가 공부를 통해 얻은 새로운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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