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의식이 있어야 하는 곳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하며

by 에너지니

분만의 과정에서

아기와 엄마 중 누구의 고통이 더 클까?



비교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거니와 쉽사리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아기에게 물어봐도 답을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아기의 입장이 되어볼 순 있다.



아기는 온 세상의 충격을 흡수해주던 따뜻한 자궁에서 나와 좁은 산도로 들어간다. 딱딱한 엄마의 골반뼈에 두개골을 우겨 넣는다. 타원형의 골반을 두 번 통과하려면 좁은 공간에서 몸을 회전시켜야 한다. 엄마의 자궁은 아기의 하강을 돕기 위해 수축하지만 골반이 비좁은 탓에 나아갈 길은 쉬이 열리지 않는다. 강한 압박감이 온 몸으로 전해지는 과정을 과연 아기는 어떤 감각으로 통과할까.



분명한 건, 출생의 순간이 엄마 혼자만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란 점이다. 아기와 엄마가 삶의 호흡을 맞추는 첫 순간은 탄생 그 이전부터 시동을 건다.



현대의학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아기의 고통보다는 눈 앞에 있는 엄마의 고통을 없애는 방향으로 발달해왔다. 그덕에 무통주사처럼 더 안전하고 덜 치명적인 방법들이 고안되었다. 그러나 엄마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묘약이 아기의 몫을 줄여주는건 아니다. 엄마는 통증을 느끼지 못해도 아기에게 주어지는 압박은 계속돼야 한다. 그래야 출산이 진전되니까.



출산 후기를 보면 무통천국이 시작되고 핸드폰을 보거나 주변 지인들과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는 얘기들이 많다. 그 이야기에 적잖이 충격 받은건 내가 유난하기 때문일까? 엄마의 의식이 고통에서 잠시 떠나있는 동안, 아기가 자동항법장치처럼 움직이는 엄마의 몸 속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내겐 왠지 모를 기이함이 느껴진다.



From Womb to Tomb. 이어령 선생님은 인간의 삶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시작해 무덤으로 향하는 여정이라 했다. 점성술에서 죽음을 의미하는 12하우스와 탄생을 의미하는 1하우스는 맞닿아있다. 인간은 죽음을 통과해 탄생으로, 탄생을 통과해 죽음으로 향한다.



실제로 아기는 죽음의 고비를 넘긴다. 진통 중 엄마가 소리를 지르거나,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태반을 통한 산소 공급이 끊긴다. 뱃속에서 두 번 회전하는 동안 탯줄이 목에 감기기도 하고, 태변을 먹으면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반면, 엄마는? 진통 때문에 죽지는 않는단다. 산모가 사망하는 경우는 산후 출혈과 합병증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앞으로의 삶에서 가장 사랑하게 될 존재가, 죽음의 고통을 넘어 탄생의 여정을 향해 온 힘을 다할 때 나의 의식은 어디에 있는 것이 온당할까. 아기와 나의 고통이 만나는 곳, 그 접점인 나의 몸이지 않을까?



물론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함께 겪는 것만이 정답인가. 이 어려운 철학적 질문의 답을 나는 잘 모르겠다. 어떤 경우에는 무통주사의 힘을 빌어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꼭 필요할 때 쓰는 것도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은 산부인과 시스템처럼 산모의 감통을 지원할 인력이 부족한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진통의 부담을 산모에게 온전히 지우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럼에도 나의 마음은 내 의식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삶의 많은 영역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회피하기보단, 정면돌파하는 방향으로. 그래서 나의 선택은 흔들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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