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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IL NOME DELLA ROSA)

움베르토 에코의 죽음에 부쳐...

서양의 문화를 주도한다는 유럽에서 철학의 불모지라 불리운다면 다소 의아한 일이다. 나라가 잘 되려면 사회 각 분야에 유형의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건 자명한 일이고 그 유형적 인프라의 바탕에 무형의 철학적 인프라가 없으면 안된다는 것도 자명한 일일 게다. 그런데 희안한 건 지구촌 G7의 하나로 불리우는 이탈리아 땅엔 근대이후 서양철학의 계보를 잇는 결정적 존재가 없다는 사실이다. 결정적 종교인, 결정적 예술인, 결정적 정치인은 허다하게 많았지만 결정적 철학가가 없었다니 그것 참 재밌는 일이다. 중세 후반, 신권이 종지부를 찍을 즈음 마키아벨리즘의 주인공이 태어났지만 종교나 권력에 종속된 관계속에서의 고민이 아닌 인간 그 자체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던 건 “Cogito, ergo sum” 이라는 시대적 명제였고 그 역설의 주인공은 뜨악하게도 프랑스인이었다. 물론 신권 천년의 역사가 인권의 역사로 바뀌는 대지진이었으니 그 역사의 주인공이 신권을 쥐고있던 이탈리아에서 다른 나라로 옮겨 탄생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허나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이탈리아는 결정적 철학자를 탄생시키지 못하고 있다. 로마제국 이전부터 2천년 가까이 서양역사를 주도했다는 국가로서 그 명예가 무색하기 짝이 없을 정도다.


데카르트 이후 존재의 근원을 고민하던 합리주의자들에게 경험을 더 보태야 한다 충고하던 사람들은 중부유럽을 넘어선 북부사람들이었으며, 이후 생각의 깊이를 더해 존재의 가치를 고민했던 실존주의자들이나 불평등한 계급에 익숙한 대중들을 계몽하려 했던 사람들까지도 중북부 유럽 출신들이었다. 나아가 인간의 이성능력으로 끝장을 보려했던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며 무의식의 세계를 시전했던 정신분석 심리학자들도 중북부 사람들이었고, 이후 여태껏 보고 믿어왔던 형상들이 진짜가 맞더냐 물음을 던졌던 수많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마저도 죄다 지중해의 따스한 햇살보다 북쪽의 우중충한 먹구름을 훨씬 더 많이 보며 자란 사람들이다. 이쯤되면 인간의 지나온 발자취는 우연보다 필연의 과정들임을 부정하기 어려워진다.

달 전 움베르토 에코가 사망했다 하니 일부 식자들은 현대를 대표하는 대단한 이탈리아 철학자가 떠났다고 애석해 하지만 냉정히 생각컨데 그의 행적을 고려한다면 현대의 이념을 상징하거나 변화를 이끌었던 ‘결정적’ 철학자로서가 아닌 방대한 지식을 소유한 학자로서의 공헌도를 평가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지난 날 파시스트 정권하에서 공산주의를 주장했었던 안토니오 그람쉬 정도라면 혹 현대 이탈리아 사상에 영향을 끼친 철학자라 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 마저도 글로벌한 영향력으로 평가되진 않아 보인다. 이건 어쩌면 현대 이탈리아의 운명이다. 이미 주어진 수많은 자원과 따스한 햇살이 있는데 이성적 인간으로서의 근원적 성찰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남은 일은 골치아픈 생각을 접고 욕망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일 게다. 우중충한 먹구름을 보고 자란 사람들에게 철학이 필연으로 얽힌 것처럼 어쩌면 이탈리아인들에겐 철학보다는 예술이 필연이고 고민보다는 유희가 필연이다. 에코의 저서 중 하나인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조차도 학자 치고는 퍽이나 해학적이며, 그의 불멸의 명작 <장미의 이름>을 관통하는 금서의 정체 역시도 웃음에 관한 내용이다. 현대의 이탈리아에선 해학이 곧 철학이고 철학이 곧 해학인 것이다. "Ridi, che passa tutto!"



엄격함으로 상징되는 중세의 주무대가 이탈리아 땅이었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다소 넌센스다. 웃어도 안되고 웃음을 논한 책을 봐도 안되던 시절, 어느 이름 모를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 에코의 대표소설인 <장미의 이름>은 기존의 스릴러와는 달리 고상한 기호들과 텍스트들로 범벅이다. 역사가 살아숨쉬는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자란 그에게 중세는 일찍이 호기심 천국이었을 것이다. 그의 전기를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가 기호학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는데 있어서 어쩌면 그가 살아온 공간이 강력한 동기유발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어쩌면 이것도 필연이다). ‘다빈치 코드’ 류에 등장하는 교회의 수많은 상징이나 기호들은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더할 나위없이 재미있는 퍼즐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또 어쩌면 중세의 기호란 인간의 기본욕망을 절제해야 했던 시대의 숙명적 명제였을 것이다.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많으니 기호를 표현의 도구로 삼아 대리만족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걸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인간의 숨겨진 실체와 욕망을 파헤치는 작업, 아주 통쾌했을 것이다. 물론 그가 평생을 두고 몰두했던 기호에 관한 복잡한 이론이 중세라는 프레임에만 국한되거나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에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겨우 그정도였다면 댄 브라운에 먹혀버린 운도 지지리 없는 기호학 창시자로 여겨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수많은 유무형의 기호들을 방대한 지식을 토대로 분석하여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는 건 그의 탁월한 능력이다.



영화로서의 <장미의 이름>은 부담없이 재밌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지만 “웃어?” 라는 서늘한 한마디가 이탈리아를 천년간 지배했던 일종의 기호였다면 진짜로 타임머신을 타고 싶어진다. 베네딕트 수도회와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성직자의 재산소유권을 두고 벌이는 ‘썰전’도 재미있을 것 같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몰래보면서 '개그콘서트' 대본을 읽듯 했을 수도사들 표정도 아주 재있을 것 같다. 게다가 엄한 사람 잡아다 화형시키는 건 고대의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벌어졌던 그것처럼 극한의 볼 거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중세때의 이 모든 어처구니 없는 일들은 우리들 주변에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며 소설과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도 여전히 살아숨쉰다. 합리적 이성을 실천하는 지식인을 연상케 하는 주인공 윌리엄, 권력에 입바른 소리 했다가 유배당한 우베르티노, 경건한 수도원에서 몰래 동성애를 했었던 수도사들, 억지 이념을 주입하는 조직의 대부 호르헤, 자신의 권위를 관철시키며 비논리적 재판을 하는 베르나르도, 억울한 누명에 끽소리도 못하는 살바토레, 그리고 순진한 대중들... 이 모든 존재들은 시공을 달리한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다. 또 관료조직 내에서의 비합리적 권위는 도처에 흔하며 종교계의 재산소유 문제도 여전히 시끄러우며 엄한 사람 잡아다 처벌하는 경우나 권력을 합리화하는 것도 여전하고 필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대중들이 그저 자신의 보신을 돌볼 뿐인 것도 여전하다. 시대가 변하고 외형은 변했지만 이처럼 인간의 본질은 고대나 중세나 현대나 도찐개찐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의 수많은 기호들은 지배체제의 자화상이거나 그에 대한 저항의 산물이다. 어쩌면 에코는 소설을 통하여 '이름(기호)'뿐인 인간들의 껍데기를 벗겨내어 '장미(진리)'의 실체를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중세=암흑"이라는 등식은 그래서 재고의 여지를 남긴다. 중세가 암흑이라는 건 지금시대가 '덜 암흑'이라는 전제를 조건으로 하는 표현인데 그걸 부정하는 학자들은 의외로 많다. 에코 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중세의 가을>의 작가인 하위징아도 중세를 다채롭고 치열했던 시대로 풀이한다. 아닌 게 아니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문명의 형태가  변했을 지언정 인간의 욕망과 권력과 사회적 질서의 투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패턴으로 존재한다는 걸 부정하기 어려워진다. 아날로그가 디지털화 되면서 생활이 편리해지고 계급으로부터 해방되어 노예로 팔려가지 않는 게 감사하지만 중세의 그들보다 더 행복하다거나 걱정 근심이 더 줄어들었다거나 욕망이 더 해소되서 좋더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별로 없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피카소가 형상을 일그러뜨린지 백년, 우리네 화가도 종이에 점 하나만을 찍거나 찟어진 캔버스를 내놓으며 보이지도 않는 정신을 봐달라 하는 시대를 살고있다. 무슨 동화에 나오듯 '벌거벗은 임금님'이 입은 럭셔리한 명품 수트를 정신차리고 봐달라 하는 이 시대, 뭔가를 대변하거나 앞선다는게 어떤 건지 영 모르겠고 또 에코가 기호학자로서 이 사회에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는가도 영 모르겠지만 그가 풀어놓은 중세에 관한 이야기는 유쾌한 방법으로 편견을 환기시킨다. 지극히 주관적 감상을 배제하더라도 이탈리아의 거목 한그루가 사라졌다는 그의 죽음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인 중론인 것 같다 .


그건 그렇고, 앞으로도 또 얼마를 기다려야 서양의 새로운 사상을 창조하며 획을 긋는 인물이 이탈리아에서 탄생할지 새삼 궁금해진다. 에코가 죽었다 하니 괜히 이탈리아의 무슨 맥이라도 뚝 끊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탈리아를 대변하는 살아있는 지식인이 누구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제 뭐라 답해야 할까? 답하기가 주저된다면... 어쩌면 그게 에코가 남긴 빈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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