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남들이 모두 기대하던 수련회나 수학여행이 나는 설레지 않았다.
먼저 엄습하는 것은 두려움이었다. 그런 활동에는 꼭 짝을 이루었는데, 모두가 나를 기피했기 때문이다.
어린 날, 같은 반 친구들 모두가 나를 조롱하던 그 날의 풍경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불 꺼진 교실, 큰 화면에 프레젠테이션을 띄워놓고 어떤 한 친구가 발표를 하면서 키득거렸다.
"아, 우리 반에도 있잖아. 귀척(귀여운 척)하는 애."라고 하는 순간 들려온 웃음 소리를 잊을 수 없다.
학기 초에 친구와 대화를 하다 수줍게 웃었던 나는 어느새 왕따가 되어 있었다.
1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지나, 그 고난을 딛고 일어선 나는
잘 지내다가도 이따금씩 떠오르는 그 날의 기억이 고통스러워 몸부림 친다.
하루의 절반을, 1년의 절반을, 인생의 절반을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짓은 하면 할 수록 고단하다. 대체로 저 질문에 대한 답은 나에 대한 '부정'으로 귀결된다. 정작 타인은 나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거나, 관심이 없을텐데도 나는 자의식 과잉에 빠져 저 사람이 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어쩌지? 그러지 말았으면...하는 마음으로 남의 눈치를 보느라 바쁘고,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추기 바쁘다. 그러다 보면 가뜩이나 없는 에너지는 소모되고, 이제는 억울해진다. 유년 시절의 그 경험이 여전히 나를 둘러싸고 있구나. 유년 시절의 그 경험이 15년이나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분통하다며, 괜찮지 않았던 나날을 탓하고 계속해서 상기하고, 상기하고....
그렇게 혼자 땅굴을 파며 괴로워한다. 어떻게 보면 스불재이기도 하다.
혼자 괴롭기만 한 이 짓을 그만하고 싶었다.
지금은 이제 그만 하고 있느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남 몰래 새겨진 흉터를 안은 채로, 사회생활 속에서 '평가'에 예민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 다만, 예전에는 하루의 절반을 전전긍긍했다면 이제는 하루의 1/3정도만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앞으로 나아지겠지. 자그마치 30년간 쌓아온 나의 인식을, 나의 사고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과 훈련을 필요로 할 것이고, 나는 그 연습을 하고 있다.
그것의 계기가 되어준 책은 바로 '미움 받을 용기' 였다.
타인의 부정적 평가와 시선에 짓눌려 있던 내게 용기를 부여해준 책이다.
내게 강렬한 깨달음을 주었던 문장을 조금만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① 필자는 트라우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트라우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 - 즉 트라우마 - 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 中>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Positive). 나는 내가 겪었던 경험으로 나 자신을 정의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따돌림'이라는 경험 때문에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버렸어, 라고. 그렇게 '경험'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일어설 생각도 못하고 그저 나 스스로를 그런 사람으로 두게 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② 필자는 타인의 과제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믿는 최선의 길을 택하는 것.' 그 뿐이다. 그 선택에 타인이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 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이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절대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 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미움받을 용기 中>
내 갈 길을 스스로 정하려면 당연히 이리저리 헤매게 된다. 다른 사람의 소망이나 안색을 살피며 사는 것도 인생의 이정표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너무 부자연스러우며, 누구에게도 미움을 받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이다.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살면, 그리고 내 인생을 타인에게 맡기면, 자신에게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되는 삶을 살게 된다.
<미움받을 용기 中>
자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자네의 과제가 아니야.
'나'를 미워하는 것. 나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타인의 몫이다. 나의 과제는 선택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믿을 것인가, 말 것인가. 타인에게 인정 받는 삶을 살 것인가, 인정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삶을 살 것인가. 넘어져 있을 것인가, 일어설 것인가. 그 선택으로 하여금 타인의 시선에 휘청거리는 내가 아닌, 진짜 나다운 나로써의 자유를 찾게 될 것이며, 자신만이 나를 결정하고, 바꿀 수 있으니 용기를 내라고 아들러는 말한다.
책 <미움 받을 용기>는 읽는 내내 넘어진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너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니? 하고 묻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결심한다. 과거의 경험이 내게 미치는 영향은, 어쩌면 내가 나 스스로를 그렇게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넘어져있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그렇다면 일어날지, 주저앉아 있을지 선택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라고.
그리하여 나는 일어설 것을 선택했다. 지금도 여전히 작은 돌부리에 걸려 휘청거리는 것처럼 문득 '나를 저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주눅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을 떠올리면서, 의식적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게 됐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저 사람이 알아서 할 일이니, 나는 내 할 일이나 하면 된다고. 그렇게 비틀거려도 다시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노력을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