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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아 Feb 07. 2024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졸업식에 참석하고

초등학교 졸업식에 꽃다발을 들고 참석했다. 서두르질 못해서 서서 보아야 했다.

“지금부터 별별초등학교 제00회 졸업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안내를 듣는 동시에 오늘 손수건을 챙기지 못했다는 걸 떠올렸다. 식장에 와서야 ‘나, 울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다는 말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잘 모르는 이의 결혼식장에서도 눈물이 차오르며 떨어질락 말락 하는 사람이자, 그런 나를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1월에 있었던 우리 학교 졸업식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졸업식이 있던 강당은 내빈으로 꽉 차서 참석하지 못했다. 작년 졸업식까지만 하더라도 코로나로 인해 집합 행사(그러니까 강당에 다 같이 모여서 식을 거행하는)는 못하고 각반 교실에서 방송으로 교장선생님 말씀을 듣는 등 축소해 진행했다. 올해는 몇 년 만에 제대로 된 졸업식을 치른 것이다. 나중에 듣자 하니 그렇게 오랜만의 졸업식이기도 하고, 졸업생 대표 인사가 절절하기도 했고, 화면 가득 흐르는 아이들과의 학교살이 영상이 감동을 주어서 담임 선생님들 가운데 꽤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나는 중2 담임이므로 3학년에는 아는 학생이 단 둘(우리 독서동아리 학생)뿐이었다. 교무실에서 업무를 보다가(학교생활기록부 일은 도무지 끝이 안 보였다.) 졸업식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장도식을 위해 행사장 앞에 섰다. 장도식을 아시는지? 양옆에 늘어서서 가운데 길을 만들고 지나가는 분께 크게 손뼉 치며 격려하는 의식을 말한다. 2층 강당에서 나가는 계단 바로 앞에 줄을 맞추어 선생님들이 나란히 섰다. 내려오는 졸업생과 가족을 향하여 힘껏 박수를 쳤다. 졸업장과 꽃다발을 들고 조금은 민망해하며 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아는 선생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학생도 있고, 선생님 품에 안기는 아이도 있다. 의례라는 것은 참 신기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나로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아이이지만, 이렇게 박수하며 아이들 얼굴을 보니 몇 번이나 울컥하게 되었다. 말 한 번 안 건네 본 사이이고 어쩌면 오늘 처음 얼굴을 본 학생들이지만, 표정으로부터 감정이 전해져서 울먹이는 아이를 보면 나도 덩달아 눈썹을 찡그리며 울컥하는 것이다. 속으로는 울면 안 돼, 울지 마, 나를 다그치며 눈물을 안 흘리려고 애쓴다.


6년 간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는 초등학교 졸업식은 또 얼마나 의미가 깊은지. 둘째는 1년 프랑스 살이로 입학식에 참여하지 못하고 2학기부터 학교엘 다녔지만,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지금은 얼마나 컸는가 말이다. 어린이용 알록달록한 책가방을 메고 실내화 주머니를 돌리며 학교 다니던 그때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시커멓게 하고 다니는 지금이라니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성장한 아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에 젖었다. 졸업 영상을 보여준다길래 나는 또 울면 안 된다 생각하며 시청했다. 시작부터 눈물이 핑 돌았지만, 생각보다 덜 감동적이어서 참고 볼 수 있었다. 저걸 만드시느라 선생님들이 고생하셨겠다는 의식의 흐름은 어쩔 수 없었다.

교장선생님께서 친히 졸업장을 한 명씩 나눠주셨고, 우리 아이 순서에 화면에 나타난 아이의 장래희망을 보고 우리 부부는 놀랐다. 축구선수인 줄 알았는데, 의사라고 쓰여 있어서다. 자애롭게 웃고 있는 졸업 사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교장선생님의 축사가 이어지고, 졸업 노래를 불렀다. 옛날 사람인 나는 이렇게 경쾌한 졸업의 노래라니, 하고 감탄하며 들었다.

졸업식이 끝나고 아이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기념사진을 찍고 담임 선생님을 찾아뵙고자 했다. 어젯밤 아이에게 쓰게 한 감사 카드와 꽃다발을 드리기 위해서다. 강당 앞쪽으로 선생님을 찾아갔다. 나보다 훨씬 키가 큰 아이가 선생님을 금방 찾아냈다. 남편, 아들보다 다리가 짧은 나는 부지런히 뒤쫓아가 선생님께 인사했다.

“선생님~.”

돌아선 선생님을 뵙자마자 내 눈에서는 눈물이 차올랐는데, 선생님께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계셨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일인지.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리고 발음은 엉망인 채로

“감사합니다.”

만 겨우 했다. 이런 상황은 상상도 못 했는데, 그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마음을 주고받았다. 선생님도 그 상태로

“아이가 막내라 사랑이 많아요.”

덕담해 주셨고, 나는 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아유, 말썽쟁인데, 감사합니다.”

를 겨우 발음했고,

“사진 한번 찍어주세요. “

를 정신 차리고 말했다. 인사드리고 다시 출입문 쪽으로 가면서 아이 친구, 친구 엄마를 마주치고 당황한 건 나. 빨개지고 촉촉한 눈이라니. 무슨 사연인가 싶었을 수도 있다. 아이 친구들이랑 사진을 몇 장 찍어주고 나오는 길, 스스로에게, 또 아들과 남편에게, 난 왜 이럴까, 울고 계신 선생님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났다, 그런 얘길 하면서 학교를 빠져나왔다.

선생님의 일 년이 잠깐의 만남으로 그려졌다. 요새 초등학교 6학년은 기피 학년이라는데, 아이들이랑 생활하시면서 정이 많이 드셨나. 너무 고생 많으셨겠다. 꽃다발 드리기를 너무 잘했다. 정말 감사하다. 혹시 마음고생하신 일이 있을까. 같은 교사로서 마음 쓰이고 아이들 졸업 시키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서 찡했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라는 인간, 언제든 울 준비가 되어 있는 인간이로군. 한참 에쿠니 가오리 소설에 빠져있던 때가 있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었다. 이런 준비는 안 해도 되는 것, 안 하고 싶은 건데. 난 왜 그 기능이 탑재되어 있는 건지. 그저 언제든 감동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고 싶다. 오늘은 선생님 덕분에 감동을 받았다.



이건 비밀로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나의 성향이 하나 더 있다.

같은 곳에서 근무하는 선생님 아이도 우리 애와 같은 학교라서, 졸업식 시작 전에 반갑게 인사했다. 두리번거리며 아이를 찾으시길래 아이가 어디 앉아있는지 알려드린다고,

“저기 우리 애는 5반인데 샘네 애는 어딨을까요?”

하며 우리 애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씀드렸다.

“여기 전체 4반까지야.”

아이쿠, 숫자에 약한 나인 것을 깜빡하고 아는 척했다. 5반은 큰애였지. 언제나 숫자 틀릴 준비는 되어 있다. 다음주에는 큰애 졸업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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