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위하는 엄마 마음
우리집은 13구에 있는 아파트 11층. 설거지할 때 파리 시내를 보며 할 수 있다. 허허, 침대방 한 켠에서는 저멀리 에펠탑 상부도 보이고, 사크레쾨르 성당도 보인다. 팡테옹은 그보다 가까이에 우뚝 서있다. 허허허.
한국에서 부동산 분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집을 구경하고 구했다. 비싼 파리 월세에 조금이나마 생활비를 아끼려고, 2P짜리 그러니까 방 하나, 거실 하나를 구해보려고 했는데 마땅치 않았다. 파리의 부촌이라고 하는 16구의 세련된 집은 너무 좁았고, 15구의 역세권(진정 코앞이 전철역) 집은 상가 2층의 집이었는데 시끌시끌함과 안전 문제를 감안하고 계약하려 했으나, 이미 살던 사람이 연장해 살기로 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또 시야도 트이고 실내도 여유로워 보이는, 그러니까 우리 마음에 쏙 드는 집들은 죄다 파리에서 벗어난 곳이었다. 집은 저런 곳이어야지 싶은, 정말 넓고 살기 좋아보이는 집은 그러니까 파리에서는 우리의 가격조건에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딱 1년 사는데, 파리에서 살아야지 하는 결론에 우리는 그나마 가성비가 좋은, 13구의 4P - 방 세 개에 거실 하나 구조의 집에 살아보기로 했다. 주차장도 있고 인터넷이나 전기요금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앞의 집들은 주차장도 없어서 근처에 따로 돈을 내고 주차를 해야했다. (하지만 뭐 2P 조건보다 월세가 더 나간 건 맞다.)
파리 도착한 다음 날. 호텔에서 조식을 마음껏 먹고 집주인을 만나러, 집을 보러 나섰다. 설레고 들뜨는 마음으로 만나뵌 부동산 분과 집주인. 집주인은 나와 나이가 같은 끌레멍 씨. 부모님께 물려받은 집을 자신의 결혼 후에는 이렇게 세를 놓고 있다는 금수저 프랑스인. 형도 같이 와서 미리 청소를 해두셨다며 이런 저런 얘길 해주신다.
보안키로 대문 열고, 아파트 입구 열고 하며 들어가는 길에 부동산 분이 하시는 말씀. 며칠 전에 우리집에서 사고가 있었단다. 사고? 사고라면 자살? 아님 무슨 끔찍한 사건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건의 당사자가 온다. 사건은 다름 아닌, 집 베란다에 아기 새들이 사는 것! 아니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새끼가 태어날 동안 뭘 했단 말인가. 인조잔디가 있는 베란다 한쪽에 두 마리 새가 웅크리고 있었다. 노랗고 진한 밤색의 새끼 새 둘이 서로 붙어서 꼼짝도 않고 있는 거다. 헐..... "아이들 보라고 아직 뒀어요." 부동산 분이 하시는 말씀. 이런 말씀도 덧붙인다. 어미새가 들여다보러 올텐데 다른 데로 데려가면 어쩌겠냐고, 저러다가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두라고. 사람 냄새 나면 어미새가 못 올까봐 저기는 청소도 못했다며 치워달라면 치워주겠다고 했단 얘기도 하셨다. 파리생활(?)이 익숙치 않는 나는 허허 웃고. 아이들은 신기해서 들여다본다. 나는...... 가까이 가기도 싫다. 부동산 분의 이어지는 말, "부리가 까만 걸 보니 비둘기는 아닌 것 같으니 좀 둬 보세요. "
이런 얘기를 하는 사이에 무슈 끌레멍과 남편은 열쇠며 제일 바깥 대문, 건물 들어오는 문, 현관문 등을 2-3번씩 열어보고 닫아보는 테스트를 해보고 설명하느라 바쁘다. 주차장에 가보겠냐고 해서 함께 나섰다. 엘리베이터로 내려가서. 건물을 나가서! 또 보안키를 대고 대문(?)을 열고, 건물 들어가는 문을 또 열고, 지하로 가는데, 계단을 이용하고, 엘리베이터를 또 타야 한다. ㅠ 이렇게 도착한 주차장! 이렇게 무서운 주차장은 처음 봤다. 1970년에 지은 건물이라더니 진짜 껌껌한 지하. 여기저기 있는 차 중에는 먼지가 두둑히 쌓인 스포츠카(도대체 몇 년을 두면 저럴까 싶다.)까지 있다. 지정된 주차 자리를 확인하고(지하 4층이다) 올라와서, 그러니까 올라올 때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계단(답답한 원형 계단!)을 오르고, 건물을 나와서, 대문밖으로 나와서 - 문마다 키를 대야한다!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와 건물로 들어가고...하는 과정을 겪었다. 그리고는 쓰레기를 버리는 곳(지하에 있다. 역시 무섭다.)과 창고를 보았다.(와, 이 형제분들이 학생 때 썼을 법한 공책들이며 뭔가가 많다.) 자꾸 알려주셔서 우린 거기를 쓸 일이 없을 거라고 말했다.
다시 11층으로 올라왔는데. 베란다로 글쎄 비둘기가 온다! 너무 깜짝 놀랐다! 그리고 주인의 형에게 외쳤다. "저는 비둘기 안 좋아해요(Je n'aime pas la pigeon)!" 싫어한다(deteste)고 할 걸 그랬나. 부동산분이 한국에도 비둘기가 많은데,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얘기를 그분께 해주시고 나는 저거 치워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청소기를 들고 일을 시작하신 형님. 일 시킨 것 같아서 미안한데, 부동산 분도 적극적으로 도우신다. 나는 가까이 가기도 싫은데. 아기새 둘을 천으로 감싸 안아서 쇼핑백 안으로 넣는 부동산 분!!! 자기는 동물 키우는 걸 좋아한다며 선물을 가져가게 되었다며 좋아하신다. 신기하다~~.. 아무튼 그런 사건이었던 것이었다. 아기새를 치운(?) 후에도 어미 비둘기는 자꾸 집 베란다를 찾는다. 없는데.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새라 그런가 싶기도 하다.
아... 아무튼 아직도 집주인과 집을 꼼꼼히 보는 과정. 우리 주인은 서랍이며 다 일일이 보여주고 설명할 기세. 이분들이 다른 곳에도 집을 갖고 스튜디오 세주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엄청 꼼꼼하게 알려주시는 분들이라는 부동산 분의 말씀. 아이들과 우리는 지쳐가기 시작했다. 목이 타고. 다리가 아프고. 문따는 거 해보라며 세번씩이나 보여주고 해보라는 주인에게 얼른 끝내달라고 독촉을 하고서도 이분들은 가실 생각을 안 했고. 호텔에 주차해둔 우리 차를 집 주차장으로 안내해주고 싶다 해서 괜찮다고 거절했다.(왜 안내해주겠다고 했는지 주차장 들어설 때 알았다! 주차장도 키로 따고 가는 건 알았는데 우리 자리를 한번에 찾기가 아직은 어려웠다. 게다가 나갈 때에도 키를 대야 문이 열린다.) 벌써 열두시가 넘었다. 10시 전에 만났는데.
계약서 사인도 다 마치고 거의 마무리될 무렵. 집 청소 엄두가 안난다 했더니 부동산 분이 "조선족 아주머니 불려드려요?" 하신다. 가구마다 먼지가 쌓였고(그 소파에 우리 아이들이 앉아있었다.ㅠ), 바닥은 신발 신고 들어왔으니 깨끗한 걸 좋아하는 나는 조바심이 났다. 그래 그 아주머니와 3시로 약속을 잡고 보니, 청소도구를 사둬야 한단다. 마트에 가야겠다 생각했는데 점심도 먹어야겠고, 낯선 곳에 다녀오고 그 시간을 맞출 엄두가 안났다.
친절한 집주인은 계속 우리를 지켜봐주고 싶어하셨으나, 우리는 얼른 인사를 마치고 갈길을 갔다.
호텔로 차 가지러 걸어가면서 점심 거리를 사고, 차를 가져오고 주차를 하고보니 거의 한 시.(호텔까지 도보로 5분 거린데, 주차가 힘들었다. 겨우 우리집 주차장에 주차하는 건데도) ㅠㅠ 배고프단 아이들에게 물과 빵을 먹였다. 집 근처에서 청소도구를 해결해야겠단 생각에 까르푸시티에서 급한 것만 몇 개 샀다. 주방세제, 욕실세제, 고무장갑, 수세미, 막대걸레.
그리고 아주머니가 오시기 전에 나는 청소를 시작했지. 너무 허리도 아프고 어지러웠지만 얼른 애들을 편히 쉬게 하고 싶어서. 그런데 참 바보같이 급하지도 않는 주방을 닦았다. 여긴 내가 해야된단 생각에. 아주머니가 오시고 가격 흥정을 하고, 청소 시작. 욕실을 닦아주시고 바닥을 닦아 주심. 그런데 우리는 실내용 슬리퍼도 없어서 바로 신발을 벗을 수도 없었다. 장마다 닦고 건조대도 닦고 의자도 닦고.. 어지러웠다. 유리도 닦아 주시고 약속한 두시간 반 후 아주머니는 가셨다. 가셨어도 신을 신고 있던 우리. 얼른 마트가서 실내용 슬리퍼, 욕실 슬리퍼, 침대매트(제일 중요했다! 우리 큰아이는 침대를 보자마자, "엄마, 나 여기서 못 자. 침대 다시 사."했던 것이다.)커버, 베개 등을 사오자고 나섰다. 매트커버를 사자니 동네에선 해결이 안 되고, 큰 까르푸로.
하루가 너무 긴 기분. 베르시에 있는 까르푸까지는 길도 막혔고,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신났지만. 파리 교통은 우리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뒤에서 좌회전 차가 우리를 앞서가기도 하고 너무 혼잡하다. 파리에서는 정말 흔한 로터리에서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빙 돌아오기도 했다. 이놈의 로터리.
그렇게 도착한 마트. '여기가 어디여~' 하면서 올라갔다가 엄두가 안나서 다시 나와서 쇼핑몰 안에서 저녁부터 먹었다. 그리고 다시 들어간 마트. 아이들은 벌써 지쳤다. 시차적응도 안된 우리가족은 안되겠다 꼭 필요한 것만 사고 가기로. 사야할 거, 사고싶은 건 많았는데. 오늘 당장 필요한 필수품만 고르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항균매트커버가 필요했고, 베개, 베갯잎, 덮을 이불도 필요했는데. 이불은 죄다 솜이 들어서 일단 패스하고 나왔다.(한국에선 여름에 솜이불 안덮잖아.)
지친 아이들에게 레고를 하나씩 안겨서 집에 오는 길. 피곤한 아이들은 차에 오르자 금방 잠이 들었다. 눈이 쑥 들어가서 큰 쌍커풀이 생긴 둘째는 고개를 자꾸 떨궜고, 큰아이는 그냥 엎드려서 잔다. 그 모습을 보니 너무 속상했다. 게다가 집에 가서는 바닥을 다시 닦아야 했고! 매트를 씌우고 -빨지도 못한 베개 커버를 씌워 재워야하는데. 또 주차장은 어떤가.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오르는 심난한 과정을 겪어서 바깥 길을 걸어서 대문을 따고 현관에 들어와 다시 우리집 엘리베이터를 타서~ 짐을 들고 와야 하는 거다. 산넘어 산이다. 집에 도착해 잠이 안 깨 정신을 못 차리는 어린이들만 챙겨서 겨우 집에 들어오고. 남편이 두번을 왔다갔다 하며 짐을 나르는 동안.
아이들에게 아직 자면 안된다며 영상을 보여주고 나는 바닥을 닦았다. 지들이 좋아하는 영상을 틀어놓고도 졸고 있는 큰애 입에 젤리도 넣어주고 실내용 슬리퍼를 신기고(아직은 맨발을 허락할 수 없다.) 좁은 샤워부스에서 겨우 씻겨서 새 매트 위에 눕혔다.
나만큼 예민한 큰애는 연신 침대를, 그게 안 되면 매트 자체를 사라고 얘기했는데, 비닐에서 막 꺼낸 새하얀 매트커버 위에 어쩔 수 없이 쓰러져 잠들었다. 하루 더 호텔에서 잘 걸 그랬나 후회도 되고 속상한 엄마마음. 왜 이 고생을 하러 왔나 싶은 밤이었다.
엄마 비둘기는 틈틈이 집 베란다로 날아든다. 자식 생각하는 마음이야, 너나 나나 다를 게 뭐겠니. 갑작스레 아가들이 없어진 마음이 어떨까 싶어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도, 그래도 미안하지만 나는 비둘기는 싫다. 새털이 날리는 건 정말 질색.
*부동산 분에게 카톡이 왔다. 집에 가시는 길에 주사기 두개를 사다가 새들 모이를 먹였다고. 대단하시다!
2017년 6월 27일 화요일(파리 도착한 이튿날. 겨우 이튿날. 전날 밤에 겨우 호텔 도착하고 정말 그다음날. 너무 길었던 날의 기록이다.)
* 쓰고 보니 '게다가'가 너무 많다.
파리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사는 거야. 바깥과 집을 드나드는 것도 만만치 않고. 또 내부는 어떤가. 복도가 길고, 식탁과 그러니까 거실의 큰 식탁과 주방 또한 동선이 길었으며, 변기 있는 화장실이 한 칸, 샤워부스가 있는 좁은 목욕실이 한 칸, 욕조와 시멘트 바닥의 목욕실이 한 칸. 뭐 다 분리되어 있어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익숙치 않은 구조.
* 우리가족은 정말이지 힘들게 주차장을 다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짐이 있으나 없으나 바깥으로. 파리에 사는 다른 친구가, 지하주차장이 왜 연결이 안 되어 있느냐고 타박을 할 때에도 우리집은 옆 건물이어서 말이야 하면서 투덜대며 다녔는데. 파리 한 해 살이의 거의 반이 지날 무렵, 발견했지 뭔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1층)에서 내려서, 그 밑 지하통로 - 그니까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 창고들의 통로를 지나쳐서 몇 개의 문을 휙휙 여닫으며 가면, 주차장 엘리베이터에 닿는다는 것을!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린 분을,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우연 덕분이었다. 나와 남편은 무슈 클레멍을 원망했다!!! 그 사람, 이 집에 살아 본 걸까? 우리더러 식탁과 장식장 두 개는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거라며 소중히 해달라고 했던 그 분. 네, 네. 부모님께서 일부러 많이 걸으라고, 혹독한 날씨에도, 무거운 짐에도 단련시키셨던 모양이어요. 그 마음 좀 알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