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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 May 27. 2022

구례를 생각하면 침이 고인다

'개미' 넘치는 섬진강과 지리산의 고장

매달 한 번씩 한 도시의 음식 문화를 소개하는 기사를 썼다. 먹방이 대세였던 시기, 하루 다섯끼를 먹는다는 다소 무리한 설정으로 ‘일일오끼’라는 연재명을 내세웠다. 세끼에 더해 오후 디저트와 야식(+술)을 먹으면 다섯끼니까. 소화력이 약해서 잘 먹지도 못하면서 푸드 파이터 스타일의 기사를 추진한 거다. 혼자 쓴 건 아니고 팀원들과 번갈아가며 4년간 연재했다. 기사 반응이 점점 약해졌고 더 다룰 도시도 마땅치 않아 작년에 마무리했다. 전남 구례가 피날레였다. 원래부터 애정했던 동네이고 마지막 취재였던 터라 구례의 맛이 더 각별하게 기억된다.


5월. 지리산에 산나물이 많이 나고 섬진강 다슬기가 가장 맛있다는 시기였다. 한데 기사에 앞세운 건 산나물도 다슬기도 아니었다. 돼지족탕과 닭 육회였다. 산나물, 다슬기와 달리 구례가 아니면 쉽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니까, 라는 건 대외용 멘트고 실은 ‘괴식’ 콘셉트로 제목을 뽑으면 기사 반응이 좋을 것 같았다. 한데 닭 육회와 돼지족탕은 정말 괴식일까?

산수유로 유명한 산동마을 ‘당골식당’은 닭 코스요리가 유명하다. ‘산닭구이’를 시키면 3코스로 닭 요리를 내준다. 주인공인 숯불구이에 앞서 육회가 애피타이저로 나왔다. 프랑스 전채요리, 스페인 카나페 같은 생김새였다. 가슴살과 모래주머니(닭똥집), 껍질이 한 주먹씩 나왔다. 살코기를 집어 들고 코를 가까이 대봤다. 비린내가 전혀 안 났다. 기름소금을 찍어 먹어봤다. 가슴살은 광어회처럼 부드러웠고, 모래주머니와 껍질은 꼬들꼬들했다.


사실 닭 육회는 식약처에서 먹지 말라고 한 음식이다. 세균 위험 때문에 닭고기는 꼭 익혀서 먹으라고 권고한다. 그러나 예부터 전라남도에서는 닭 육회를 많이 먹었다. 물론 풀어놓고 키운 토종닭을 막 잡았을 때나 그랬을 터다. 평생 좁은 케이지에 가둬 키운 닭이나 냉장고에서 고기 상태로 몇 날 며칠 유통한 걸 날로 먹진 않았을 테다. 난생처음 먹어본 입장에서 독특한 미각 체험이긴 했다. 그러나 일부러 찾아 먹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숯불구이와 후식으로 내주는 닭 녹두죽은 또 먹고 싶다. 프라이드치킨이나 닭갈비처럼 자극적인 음식과 달리 닭고기 고유의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배가 불렀지만 기분 나쁘게 더부룩하지 않았다.


돼지족탕은 궁금증을 유발하던 음식이다. 닭 육회는 해남, 순천 등 다른 지역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돼지족탕을 파는 곳은 찾기 힘들다. 구례읍 후미진 골목에 웅크리고 있는 ‘동아식당’을 찾았다. 수십년 내력을 자랑하는 집으로 허 모 만화가, 백 모 외식사업가도 소개했다. TV에 많이 나왔는데도 인파로 들끓진 않는다. 왜냐. 메뉴가 족탕이니까. 간장에 조린 족발도 호불호가 갈리는데, 돼지 발꼬락을 탕으로 끓여 먹는다? 기겁할 사람이 많을 테다. 돈사(aka 돼지우리)를 활보하던 그 발을 어떻게 먹냐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꽤 있다. 사람마다 약한 비위의 포인트는 다른 법이니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마마무 노래 부르니?), 돼지 족발은 괜찮은데 닭발은 도저히 못 먹겠다. 어릴 때, 시골에서 닭 잡는 모습을 보며 받았던 충격 때문이다. 숨 거두기 일보 직전까지 버둥버둥 발버둥 치던 수탉의 처절한 발을 본 뒤로 닭발은 쳐다보지도 않게 됐다.  

동아식당의 돼지족탕은 곰탕 같은 희부연 국물에 족을 듬뿍 넣고 끓여 먹는다. 족발이 물컹물컹 찐득찐득한 콜라겐 덩어리여서 국물이 느끼할 것 같지만 의외로 깔끔하다. 청량고추가 적당히 들어가서 균형을 잡아준다. 안주인께 여쭈니 구례에서는 예전부터 보양식으로 족탕을 먹었고, 특히 산모에게 인기였단다. 서울의 모 산부인과에서는 들통으로 사가기도 한단다. 물론 술안주로도 훌륭하다. 옆 테이블에서 작업복 차림의 촌로들이 족탕을 먹으며 불콰하게 취해 있었다. 동아식당에서는 가오리찜도 빠뜨릴 수 없다. 하루 말린 가오리를 쪄서 종종 썬 부추와 홍고추, 참깨를 듬뿍 얹어서 내준다. 살점이 차렵이불처럼 보드랍다. 하루를 말려서일까, 아줌니 솜씨가 좋아서일까. 전라도 말로 ‘개미’가 끝내준다.


별미이자 보양식인 닭 육회와 돼지족탕이 아니어도 구례는 맛있다. 구례에 갈 때뿐 아니라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어도 꼭 사 먹는 음식이 있다. 바로 다슬기 수제비. 여느 지역에서 파는 올갱이국, 다슬기탕과 달리 구례에서는 다슬기 수제비를 많이 먹는다. 토지우체국 주변에 맛난 집들이 많은데 어딜 가나 실망하지 않는다. 전라도 손맛이 진하게 느껴지는 밑반찬도 다 맛있다.

목월빵집도  들른다. 토종 밀을 고집하는 뚝심 있는 빵집이다. 지방을 다니다 보면  지역 농산물로 만들었다는  강조하는 빵집을 흔히 마주친다. 취지는 좋은데 은 별로인 곳이 많. 브랜드 철학, 가게 인테리어, 접객 태도에 무심한 가게도 많고. 목월빵집은 프로 냄새가 진하게 난다. 우리 밀과 지역 농산물을  활용할뿐더러 또 오고 싶도록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는 게 느껴진다. 물론 맛도 출중하다. 소화도  된다. 많이 먹어도  물린다. 수십가지 빵을  싸들고 와서 우걱우걱 먹고 싶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대표가 추천한 ‘쑥부쟁이 치아바타 인상적이었다. 치아바타 고유의 식감이 살아 있으면서도 들기름과 대추 맛이 은은하게 감도는 ‘미난빵이다. 글을 쓰다 보니 군침이 돈다. 당장 구례에  일이 없으니 택배 주문이라도 해야 쓰겄구먼.

음식 하나만 더. 보통 전국의 유명한 산 입구에는 산채비빔밥, 버섯전골집이 줄지어 있다. 어디 가나 크게 실패하지 않지만 딱히 감동적인 맛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남 지역에서는 지나치게 반찬이 짠 경우도 많다. 구례 화엄사 입구 식당들도 대동소이할 거라 생각했다. 지리산식당 백반은 달랐다. 반찬 스무가지가 나왔는데 모두 저마다의 향이 살아 있었다. 간이 세지 않다는 말이다. 고춧잎, 쑥부쟁이, 신선초 등 모든 나물이 싱그러운 봄 향기를 머금고 있었다. 1만원에 이런 음식을 먹는다는 게 황송했다. 배가 불러서 제일 저렴한 백반을 먹었다. 한데 주인아주머니가 싸리버섯을 다듬는 모습을 보고 후회했다. 생 버섯 향이 엄청 진했다. 저걸 먹었어야 했는데. 다음엔 싸리버섯전골을 꼭 먹어보리라. 입맛 까칠한 아버지를 모시고 가도 아주 흡족해하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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