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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Dec 18. 2018

학생작품, 예술일까 아닐까

한 해 250명 이상의 학생들과 만난다
'아름다운 몸' 주제 수업 학생 작품 중에서

나는 미술 수업을 통해 매해 250여 명에서 400여 명의 학생들을 만나왔다. 과장이라고? 천만에. 학교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중학교 기준으로 보면, 교사의 평균 수업이 20시간. 학급수로 따지면 10개 학급에 해당하니, 학급당 학생수를 계산해보면 250명에서 400여 명의 학생을 만난다는 이야기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 명의 교사와 학생들이 일 년 동안 생산(이런 표현이 적절한지는 잘 모르겠다.)하는 작품(이 또한 정확한 표현이 아닐 것이다.)의 양은 얼마나 될까? 계산해 본 적은 없으나 어마어마하리라는 것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많은 학생 활동 결과물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까?

학생들의 수업 결과물, 흔히 미술교사들이 학생작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수명은 매우 짧다. 학생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보관하지 않는다면 학년이 끝남과 동시에 그 수명도 사라진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학생작품은 생명연장의 기회를 얻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많은 교사들은 학생들의 작품을 디지털 기기로 찍거나 실물 작품으로 보관한다. 다음 해 수업에 참고작품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좀 더 적극적인 교사들은 블로그나 카페와 같은 인터넷 사이트를 활용해서 학생작품과 수업 과정을 기록하고 공개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수업을 성찰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이렇게 기록된 학생작품은 더러 검색을 통해 다른 교사들에게 '발견'되어 새로운 수업으로 만들어지는 등 잠시 소비되다가 사라진다.


정말 많은 양의 학생작품들이 매년 생산되지만 이를 어떤 방식으로 기록하고 남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답을 하지 못한다. 다만 교사 개인의 취향과 필요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재활용될 뿐이다.

 

미술교사들이 학생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교사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수업 주제와 수업 목표를 정한다. 그리고 수업을 마친 후 자신의 수업 의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을 선택해서 기록으로 남긴다. 당연히 시각적인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 선택될 확률이 높다. 나 또한 그랬다. 성취가 높거나 특별한 감각이나 생각을 드러낸 소수의 작품을 기록으로 남겨왔다. 그리고 선택받지 못한 대부분 학생들의 활동은 그냥 '활동'으로 사라진다.

어느 순간 의문이 들다. 이래도 되나? 소위 말하는 잘 만든 작품들만을 기록하고 나누는 이런 방식이 적절한가?

왜 잘 만든 작품만을 기록해야 하지?

언제부터인가 학생 작품 기록 방법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작품은 학생들의 성장 기록이다. 성장 기록이라면 시각적 완성도와 상관없이 하나하나의 작품 속에 그 학생의 생각의 변화, 매체를 다룰 수 있는 기능의 변화가 들어있을 것이다.


나는 학생들의 수업과정 기록으로부터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성취가 높은 학생이라면 무엇 때문에 그러했는지, 성취가 낮았다면 어떤 요소가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또 그들이 만든 시각 이미지에서는, 교사의 이끎이 있었다 할 지라도, 한 시대의 청소년 문화와 가치에 대한 생각도 들어 있다.

동일한 나이, 유사한 성장 과정을 거쳤겠지만,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각각 다르다. 진짜 궁금하다.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

왜 미술교육 연구 논문들은, 미술교사 블로거들은(나를 포함하여) 자신들의 수업 목적을 적절하게 구현한 완벽한 결과물만을 기록할까? 성취가 낮은 학생작품은 왜 외면하는 걸까. 실패한(또는 학습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작품은 가치가 없는가? 하나의 수업을 온전히 보기 위해서는 완성도 높고 '기록 가치가 있는' 작품만이 아니라 그 수업에 참여한 학생 작품 전체를, 학습목표에 도달한 결과물과 성취가 낮은 결과물 모두를 들여다봐야 한 수업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 아닐까? 만일 학생들이 수업에서 좌절을 경험했다면 그 수업 주제가 그 또래 학생들에게 적절하지 않았거나, 학생들의 환경적인 요인을 감안하지 않았거나, 교사의 교수학습 방법이 적절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논문을 쓰는 방법도 잘 모르고, 논문을 발표할 공간도 모르지만 언젠가 논문을 쓰게 된다면 성과가 좋은 작품만이 아니라 한 학급 혹은 한 학년 전체의 작품을 대상으로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해봤었다. (에휴~ 생각만 해봤다. ^^)

그래서 기록해보았다

그래서 해봤다. 한 학년 380명 전체 학생들의 수업과정 기록하기.


때는 바야흐로 2012년, 수업 주제는 <아름다운 몸>.

한지 인형 제작 과정을 차용했던 그 수업은 '아름다운 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는 의도로 시작한 수업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외양이 아닌 내면의 가치를 발견해보자는 수업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수업 과정은, 예술이 인간의 신체를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살펴보고, 각자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몸을(가진 사람을) 입체로 만들어보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수업 중 사용했던 학습지는 따로 보관하지 않았고, 표현 과정만을 기록했다.


전체 수업 과정을 기록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기 오 분 전, 각자의 작품을 사물함 위에 번호 순서대로 늘어놓고 열 명 단위로 사진을 찍으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찍어 놓은 사진은 수업이 끝난 후 교사용 컴퓨터에 학급별 폴더를 만들어서 저장하면 된다.

첫주 : 다섯명씩 순서대로 촬영한 사진들. 뼈대를 만들고, 지점토로 살을 붙인 모습. 이 앙상한 몸을 꾸미기 시작하면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두번째 주:옷을 입히고 머리를 붙이는 등 꾸미기 시작한다.
마지막 주 : 완성. 한 학급 전체 작품을 모두 나열해보고 싶었으나....

사실 고백하자면, 그렇게 기록은 해놓았지만 이 기록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몇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당시를 돌아보면, 수업이 끝난 후 그렇게 찍어놓은 사진들을 아이들과 함께 봤는데, 일반적인 수업에서 처럼 잘 만든 작품만 보지 않고 서툴게 표현된 작품까지 포함한 학급 전체의 작품을 보니 학생들의 호응이 더 좋았던 기억이 난다.(그러니까 호기롭던 처음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수업 마무리 단계에서의 감상 자료로 쓰고 말았다는 허망한 이야기인 것이다.ㅠ) 

왜 학생 작품은 예술이 아닐까?

어떤 학생의 성취는 미술을 전공한 나로서도 감탄을 자아낼 만큼 뛰어나다. 하지만 누구도 학생작품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술 수업이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학습활동이고, 무언가를 배워가는 성장 과정의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학생 작품을 볼 때 일부가 아니라 모든 학생들의 작품을  봐야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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