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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Jun 04. 2022

미얀마 여행21_우베인 다리의 석양

중국발 코로나 소식과 국내 첫 환자 발병 소식을 들었던 곳이 미얀마 바간에서였습니다. 벌써 만 이년이 지났네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쿠데타, 전쟁.... 미얀마는 겁 많은 저에게는 다시 가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가게 되면 이 년 전 보았던 것과 또 다른 모습이 되어있겠지요. 사실, 미얀마 여행기를 중단하기로 마음먹었던 터라 망설임이 없지는 않지만, 지나간 시간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사진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올려볼까 합니다.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네요. 

  만달레이에서는 총 4일을 머물렀다. 만달레이 힐과 궁전, 마하무니 빠야와 공방 등 시내를 둘러보는데 하루, 밍군 섬을 다녀오는데 반나절, 아마라뿌라와 사가잉을 다녀오는 데 하루를 할애했다. 마지막 날은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바간으로 이동했다. 만달레이의 로컬 버스는 우리 같은 여행자들이 이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우리나라와 같은 버스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버스 정류장도, 번호도 없다. 양곤 같은 대도시는 물론 예외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택시나 툭툭이다. 핸드폰 앱인 그랩(Grab)을 이용하면 조금 저렴해진다고는 하나 교외로 이동하거나 시내 이곳저곳을 이동할 때면 매번 툭툭이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서 만달레이의 교통비는 생각보다 많이 든다.(미얀마 관광지는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많고 미얀마 도시는 우리 생각보다 크다.) 만일 만달레이 시내에 숙소가 있어서 사가잉이나 잉와를 방문할 예정이라면 툭툭이를 하루 빌려서 여행하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이다. 다만, 잉와는 그 안에 들어가면 다시 호스카(말이 끄는 마차)를 타야 섬 이곳저곳을 여유 있게 돌아볼 수 있다. 우리는 잉와를 걸어 다닌다고 했다가 고생만 오지게 하고 결국 나오는 길에 오토바이를 비싸게 탔던 경험이 있다.  


너무나 길고 너무나 높은

나는 내가 그냥 겁이 많은 줄 알고 있었다. 언젠가 원주 소금 다리를 방문했다가 다리 아래 까마득한 계곡이 무서워서 출렁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구경만 하고 돌아왔을 때도 나는 내가 그냥 겁이 많은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베인 다리를 방문한 날, 나는 처음으로 내가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긴, 가만 생각해보면 비행기를 타면 허공에 매달린 느낌 때문에 불쾌한 기분이 든 적이 몇 번 있기는 했지. 

사진 찍는 내 그림자가 찍혔네

총길이 1.2km의 우베인 다리. 만달레이 방문한 여행객들이 꼭 들른다는 세계에서 가장 긴 목조 다리, 티크 나무로 된 앙상한 다리와 타웅타만 호수에 비끼는 노을이 너무나 아름다운 다리.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 다리를 건너고 싶었다. 하지만, 다리의 5분의 1도 채 건너지 못한 시점에서 나는 다리를 건너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아, 너무 무서웠다. 같이 간 후배는 성큼성큼 걸어서 저만치 가는데 나는 다리 사이로 빠질까 봐 발을 옮길 수가  없었다. 다리 상판 나무 사이로 보이는 저 아래 밭들과 호수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게다가 다리 양 옆에는 손잡이나 가드레일 같은 것이 없었다. 나는 후배에게 돌아가겠노라 외쳤다. 후배는 손을 흔들며 성큼성큼 다리 저쪽으로 멀어져 갔다.


석양이 물든 우베인 다리, 그리고 스님....

다리를 건너는 대신 내가 선택한 것은 다리 밑으로 호수 사이를 걸어 일몰 스폿으로 가는 것이었다. 다리 아래로 가서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일몰이나 보자는 심정이었다. 물론 다리 아래를 걸어가면 호수 건너편까지 갈 수 있다. 그러나 굳이 호수 건너까지 가지 않고 발길을 멈춘 곳은 다리 아래쪽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목조 다리인 우베인 다리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장소였다. 우베인 다리를 찍은 사진 중 가장 일품은 석양에 물든 다리 위를 스님이 지나가는 사진이 가장 일품이라는데, 나에게는 그런 행운이 안 오나? 스님이 지나가시건 안 지나가시건 무슨 상관이랴. 바람은 차가웠고 노을을 아름다웠고 배는 고팠고. 다리 건너편에서 돌아와 배고픈 후배는 노을 삼매경에 빠진 나를 기다리다 지쳐 화가 났고....  

다리 아래에는 보트가 있어 우베인 다리 바로 아래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그들은 배에 앉아 다리 건너편에 석양이 지기를 조용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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