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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Mar 29. 2018

살찐이

살찐이에게 살찐이라고 이름 붙인 이야기

  살찐이는 내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 사는 얼룩 길냥이다. 하지만, 아파트 모든 사람들이 살찐이를 살찐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살찐이가요~" 하고 이야기를 꺼내면, "그게 누구요?"하고 되물을 것이다

왜냐하면 살찐이란 이름은 내가 살찐이에게 붙여준, 나 만이 살찐이를 부를 때 쓰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살찐이는 무척 뚱뚱하다. 뚱뚱한 것이 아니라 무척 뚱뚱하다. 처음 아파트 관리사무실 계단 앞에서 살찐이와 마주쳤을 때, 나는 살찐이가 임신한 고양이인 줄 오해했었다. 하지만 살찐이는 그냥 덩치가 크고 배가 과하게 나온 살찐 고양이일 뿐이었다.


  며칠 전, 외출에서 돌아와 딸아이와 함께 차에서 내렸을 때, 살찐이는 주차장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딸아이는 길냥이와 쉽게 친해지는 재주를 가졌다. 딸아이가 쯧쯧 소리를 내면서 고양이를 부르자 신기하게도 딸아이에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그것도 콧소리 섞어 야옹거리면서 말이다. 살찐이는 바닥에 내려놓은 딸아이의 가방을 몸으로 터치하는 등 친근감을 표시했다. 아이 이야기로는 고양이의 그런 몸동작은 '이건 내 꺼'라는 표시란다.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아이의 고양이와의 교감보다 저러다 고양이에게서 나쁜 균이라도 옮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먼저 되었다. 살찐이는 나에게도 다가와 다리를 스치면서  마찬가지로 친근감을 표시했다.


 고양이에 대해 온갖 확인되지 않은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나에게 고양이는 이쁘기보다 약간 두려운 동물이었다. 나는 살짝 주눅이 든 채 서 있었다.   

  '아무래도 먹을 것을 내놓으라는 뜻이겠지. 나는 아무것도 안 줄 거야.'라고 굳은 결심을 하면서.  


  살찐이는 이날 백 여미터 정도 딸아이를 따라왔다. 이때 사실 나는 살짝 겁을 먹었었다.  고양이는 집사를 자신이 선택하기도 한다는데, 얘가 집까지 따라 들어오면 어떻게 돌려보낼까 싶어서였다. 우리 집에는 이미 16살 된 치와와 한 마리가 있었던 터였다. 다행히도 살찐이는 이날 아파트 현관에서 발길을 돌렸다. 마치 자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이라도 하듯이. 그리고 이날, 나는 살찐이에게 살찐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살찐이는 그냥 길냥이가 아니라 '내가 아는 고양이, 살찐이'가 되었다.


  며칠 후 퇴근길에 다시 살찐이를 만나게 되었다. 녀석은 검은 승용차 본넷에 위풍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마치 이 차는 자신의 차라는 듯 가슴을 내밀고 앉아서 한 곳을 지긋이 응시하고 있었다.

 녀석은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가까이 가자 아주 느린 몸짓으로 차에서 내려왔다. 마치 '쉬는데 귀찮게 됐네.' 하는 거만한 몸짓이었다.


  "살찐아-." 내가 녀석을 부르자 녀석은 자신이 살찐이 임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나에게 다가왔다. 아마도 녀석을 알고 있는 모든 주민들은 살찐이를 부르는  자신만의 이름을 하나씩 가지고 있을 테지만, 뭐 어떠랴. 내 생각에 살찐이가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내게 온 걸 보면 녀석의 이름은 살찐이임에 분명한 것 같다! 살찐이는 몸으로 내 다리를 살짝 건드리면서 또 예의 야옹 울음을 우는 것이었다. 녀석을 보면서 괜히 미안해졌다. 빈 손으로 왜 부른거야.


  살찐이는 절대 귀여운 고양이가 아니다. 이름 그대로 살찐 길고양이다. 하지만 내가 살찐이에게 이름을 붙여주자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고양이처럼 느껴졌다. 마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는 어떤 시인의 시처럼 살찐이는 내게 세상 하나뿐인 고양이 살찐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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