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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May 29. 2018

모방(미메시스 mimesis)

미술=현실의 모방?

 

어린 시절, 그림을 그리면 부모님들은 왜 얼굴이 이렇게 생겼지?라고 말씀하시며 사실적인 표현을 요구하곤 하셨다. 왜 어른들은 이렇게 사실적인 표현을 요구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그림은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집, 나무, 사람. 이 세 가지를 자유스럽게 그려보자.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그림과 비교해보자.  어린아이들의 그림들과 혹시 비슷한 점이 있는가? 혹은 전혀 다른가?                      

왼쪽, 7세 어린아이의 그림. 실제 그림과 비슷한가, 혹은 비슷하지 않는가.

초등학교 1-3학년 시기에는 대상을 사실대로 보고 관찰하여 그리는데 익숙하지 않다. 그들은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그린다. 그래서 그들이 그리는 그림은 다 자란 우리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유치하다. 개념적이다. 게다가 왜 배경은 하얀 도화지 그대로 남겨놓는 것일까?

좌로부터 5세, 5세,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의 그림

초등학교 3학년까지의 시기를 도식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의 어린아이들은 아는 것을 그린다. 즉,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그리는 것이다. 때문에 아이들에게 배경은 중요하지 않으며 보이지도 않는다.    

                

★ 상징적인 표현(개념을 그린다.)

 -집, 사람, 나무가 갖는 특징(인정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을 것

  사람:머리, 몸통, 팔다리 등 

  나무:기둥, 가지, 나뭇잎, (뿌리)

★ 사실적인 표현(구체성을 가진다.)

 -사람:긴 머리, 눈, 옷, 등등

 -나무:소나무, 감나무, 느티나무 등

어린이들이 배경을 꼼꼼하게 칠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어른들은 보이는 것을 그리고 싶어 하기 때문에 배경이 보이지만 아이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만 그리기 때문에 배경을 그리고 싶어 하지도, 색칠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아이들에게 배경 색칠을 강요하면 고문이 될 것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4-6학년 시기가 되면 사실적인 그림, 구체성을 가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 시기를 관찰기라고 부른다. 중학교 1-3학년이라면 관찰기를 지난 시기이므로 자연스럽게 사물을 관찰하고 대상을 파악하여 그릴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미술로부터 서서히 멀어지는 시기 또한 이 시기이다. 사실기로 접어들면서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스스로 미술에 소질이 없다거나 미술을 좋아하지 않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자.  지금 나의 그림 나이는 몇 살? 


어린이의 눈과 어른의 눈

어른들은 어른의 기준으로 어린아이의 그림을 판단하고 싶어 한다. 

'왜 이렇게 그렸니? 엄마는 파마를 했는데.'

'더 살쪘는데, 눈이 다르게 생겼는데.'

'배경은 왜 안 칠하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실적인 그림, 재현을 요구한다.

그런데, 왜 어른들은 이런 그림을 좋아할까?


그것은 어른들의 생각 속에 그림이란 현실을 모방한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제대로 모방한다는 것은 곧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추린 모방의 역사

인류가 그림을 현실의 모방이라고 생각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멀리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방론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플라톤의 사상 속에서 미술은 그다지 권장할만한 활동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세계를 이데아의 세계, 이데아의 그림자인 현실세계로 나누고, 예술은 현실세계를 모방한 것이므로 예술은 진실을 그릴 수 없다고 하였다. 즉 예술이란 외면 세계의 충실한 복제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에 의하면 예술은 실재를 모방한다. 그러나 이때의 모방이란 충실한 복사가 아니라 실재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다. 

원반 던지는 사람과 벨베데레의 아폴론

그리스 시대 조각의 특징으로, 이상주의적 인간상을 그렸다고 흔히 이야기한다. 그리스 시대 조각은 현실을 충실하게 묘사한 것처럼 보이나 이는 가장 이상으로 생각되는 자세와 인체 묘사를 위한 엄격한 규율 적용의 결과이다. 그리스 시대 조각은 가장 현실감 있게 묘사되었음에도 현실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이상의 반영이라는 역설을 가지고 있다. 

좌로부터 생클레멘트 성당 벽화, 비잔틴, 로마네스크 세밀화

중세는 회화의 침체기로, 조각과 장식 미술이 발달하였다. 이는 기독교의 영향으로, 초기 급진적 기독교 사상가들은 신은 어떤 세계의 모방도 금한다고 생각하여 미술은 상징적인 표현 중심으로 발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중기로 접어들면서 문맹이 대부분이었던 그 시대 사람들의 종교적 교리교육을 위해 그림을 허용하게 되었다.


모방 이론이 정점에 달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였다.

르네상스 시대는 그리스 시대 미술을 규범으로 시작했으나 그 시대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예술가는 현실을 보다 잘 모방하기 위해 마치 자연과학자와 같은 태도로 현실을 관찰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체를 해부하거나 인체에서 황금비를 찾아내는 등 인체를 미적,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하였다. 이와 같은 태도는 당시의 회화와 조각품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미켈란젤로는 자연은 완전하므로 예술가는 모방하기보다는 창조하는 게 더 쉽다고 하였다. 르네상스 이전의 세계에서는 창조란 신의 전유물이었다. 신만이 창조를 할 수 있었다. 신은 우주를 창조했고, 세상을 창조했고, 인간을 창조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이르면 드디어 예술가도 창조의 주체로 나서게 된 것이다. 신과 더불어 창조를 하는 유일한 존재, 인간이지만 창조할 수 있는 존재, 그가 예술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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