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둬요, 지금이 더 노예답잖소!
강기린의 세계만화일주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조각상, <큰 덩이 머리 노예>를 봅니다. 몸통은 돌 밖으로 드러나 있지만, 손과 발, 머리는 대리석 덩어리 안에 잠겨 있네요. 이것을 미완성이라 불러도 될까요? 돌 안에 갇힌 머리에서 완전한 노예를 봅니다. 숨통 막힌 존엄성을 봅니다. 잠시, 그를 마저 꺼내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얼굴 없는 노예가 호통 칩니다. ‘그만둬요, 지금이 더 노예답잖소!’
미켈란젤로, <큰 덩이 머리 노예> 문득, 튀니지의 정치 평론가, 나디아 키아리(Nadia Khiari)가 떠올랐습니다. 그녀의 특기는 고통 받는 이들의 사연을 발굴하여 만화로 그리는 것입니다. 어딘가에 갇힌 인권을 해방하기 위해 애쓰는 일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튀니지 국민은 오랜 세월, 정치 이야기를 금기시하며 살았습니다. 광기어린 지도자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벤 알리(Zine el-Abidine Ben Ali) 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무기한(無期限) 대통령이라는 뜻의 벤 아 비(Ben A Vie)라 불렀지요. 벤은 무려 23년간, 튀니지 수장이었습니다. 그는 ‘경제’를 최우선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국민의 살림살이는 갈수록 쪼들렸습니다. 경제 정책 수혜자들이 엉뚱한 데 있었기 때문이지요. 금융업, 이동통신사, 언론사를 장악한 대통령 일가였습니다. 국민들 할 말 많았을 겁니다. ‘대관절 누구를 위한 경제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튀니지는 고요했습니다. 벤의 장기집권 비결은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의 정자만 꺼내도 경찰에 끌려가 초죽음 당하기 십상이었지요. 그러나 2010년, 벤 알리의 횡포를 참지 말자 외치는 이들이 나타납니다. 총성이 울리고, 사람들이 쓰러졌지요. 그러나 거리를 메운 이들은 죽음의 공포를 견디기로 작정한 듯, 쉼 없이 민주주의를 외칩니다.
튀니지의 정적을 깬 건, 어느 젊은이의 처참한 마지막이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중퇴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집안의 가장이었던 그는 거리에서 과일을 팔며 근근이 살았습니다. 청년 실업률은 최악이었고, 대졸자조차 취업이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단속반들이 나타나 과일을 쏟아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침 뱉고 두들겨 패며 온갖 모욕을 쏟아냈습니다. 허가증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뇌물을 주면 넘어갔겠지만, 청년은 그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당장 먹고살 일이 급했습니다. 그들에게 빼앗긴 저울이라도 되찾아야 했지요. 그러나 공무원들은 가난한 시민을 상대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어찌 살란 말이오!’ 청년은 시 청사 앞 도로에서 몸에 불을 붙였고, 결국 사망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모하메드 부아지지(Mohamed Bouazizi), 26세였습니다. 뇌물 없이 취직하기 힘든 나라, 벤 알리가 빚어낸 세상에서는 모두가 부아지지였습니다. 국민의 분노는 뜨겁게 타올랐지요.
여느 독재자들이 그러하듯, 벤은 시위를 테러라 칭했습니다. 무자비한 수단으로 국민을 때려잡기 위한 구실이었지요. 그의 잔인성은 정권퇴진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벤 알 리가 위태위태해 지자, 그의 측근들은 등을 돌렸습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연설이 등장한 이유였지요. 국민들은 그런 속사정을 몰랐기에 얼떨떨했습니다. 시위를 잠재우려 미끼를 던진다며 수근 대기도 했지요. 그러나 분명, 코끝 찡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찰나, 튀니지 역사에 길이 남을 만화가 탄생합니다. <튀니지의 윌리스 (Willis from Tunis)>입니다.
작가는 나디아 키아리(Nadia Khiari), 화가였습니다. 역사적인 순간, 나디아는 가까운 이들들에게 그림을 그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이것 봐, 난 자유를 얻은 예술가야.’ 곧, 나디아의 스케치가 페이스북에 올라왔습니다. 그림에서는 그녀의 고양이 윌리스가 쥐떼들에게 대통령과 똑같은 연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은 폭소했지요. 또 올려 보라는 요청에 윌리스는 하나 둘, 이전까지 금기된 영역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알음알음 펴져나가던 만화는 어느덧 꽤 많은 구독자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튀니지의 윌리스> 페이스북
윌리스의 이야깃거리는 무궁무진했습니다. 튀니지에 많은 숙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정축재자 벤 알리는 이를 책임 질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는 연설 다음날 외국으로 달아났습니다. 거리 행진은 쭈욱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 나디아는 그 속에서 윌리스의 이미지를 보았습니다.
정치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는 고양이는 어느덧 일종의 상형(象形) 문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상형은 흔히 고대 문자라 여겨지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친숙합니다. 화장실의 성(性) 표기나 교통안전 표지판도 상형문자입니다. 생김새를 본 딴 그림이 인류사에 가장 먼저 문자 역할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다는 특징 때문일 겁니다.
<튀니지의 윌리스>는 이제 단순한 만화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들의 상징이자, 목소리였지요. 그날 이 후, 윌리스는 점점 신랄해졌습니다. 나디아가 만화를 두고 고민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고요. 어느덧 그녀는 알려져야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기 두려워하는 것, 때로는 그녀 자신조차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벌써 10년 전이네요. 현재 나디아는 만화가이자 정치 평론가로 활동 중입니다.
많은 이들이 혁명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이에 비해, 튀니지의 진보는 거북이 걸음이었지요. 독재자의 고약한 습성 때문입니다. 그들은 많은 정당(政黨)을 불편해 합니다. 다양한 정당은 다양한 목소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튀니지의 정치 시스템은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나라 구석구석을 돌볼 수 있는 날까지, 부지런히 달려야 할 것입니다. 윌리스는 그들의 훌륭한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주겠지요.
어느 인터뷰에서, 나디아는 그녀를 가장 화나게 하는 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차라리 그 때가 나았지.’라고 하네요. 분노한 그녀는 <독재자의 완벽한 매뉴얼>을 썼습니다. 끽 소리도 할 수 없던 독재자 통치하의 삶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정치평론가 나디아 키아리, 그녀는 그 자체로 진보한 세상을 말해줍니다. 열심히 노력중인 튀니지, 차라리 그때가 나았다는 말이 찬물을 끼얹습니다. 나디아에게는 어떻게 해석될까요? 혹시 이렇게 들리지는 않을까요?
‘그만둬요, 지금이 더 노예답잖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