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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언니 Sep 06. 2024

아이와 함께 좌절을 디디고

기린양육자 인터뷰 프로젝트 (5) - 김윤진 님

비폭력대화로 사람을 돌보는 양육자들,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이번 인터뷰이는 쌍둥이인 두 딸을 키우는 양육자 김윤진 님입니다.     


윤진 님을 인터뷰이로 모시게 된 건 우연에 가깝습니다. 어느 날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비폭력대화를 만나는 시간을 돕고 있었는데요. 그 자리에 있던 윤진 님의 두 아이에게 반해버렸습니다.

네 명이 함께 활동하는데, 역할을 나누라는 선생님의 안내에 대부분 그룹은 자연스럽게 가위바위보를 하더군요. 또 어떤 그룹은 한 친구가 다른 친구들의 의견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려 해서 갈등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윤진 님의 두 아이는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같은 조 친구들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염려되는 것은 없는지 묻더군요. 또 자신이 원하는 것도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사소한 차이 같지만, 제겐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차이를 만들어 낸 양육자는 도대체 어떤 분일까, 궁금한 마음에 윤진 님께 연결의 손을 내민 것이죠. 어느 공휴일 오전, 연희동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는 본인의 원가족과 가까이 살며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친정엄마가 등·하원을 도와주시고, 아이들은 삼촌이나 이모네 집에 가서 사촌 언니 오빠들과 놀다 올 수 있는 환경이었죠. 과거 대가족과 비슷한 환경에서 두 아이는 자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를 돌보는 일은 고됐습니다. 초반 삼 년은 힘들어서 별 기억이 없다고요. 현재는 육아휴직 중이지만 아이들 유치원 시기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윤진 님은 스스로 쉽게 불안을 느끼는 양육자라고 말합니다. 특히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이들이 적응을 못 할까 봐 걱정이 많았다고요. 아니나 다를까 입학식 다음 날 한 아이가 엉엉 울면서 돌아옵니다. 아이들은 집에서 떨어진 곳의 유치원을 다녔기 때문에 친구들이 유독 낯설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동네나 유치원을 중심으로 이미 친하니 나만 혼자인가 싶었겠지요.     


윤진 님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동시에 유치원을 멀리 보낸 것에 대해 자책했다고 합니다. 아이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인 것이지요. 그리고 학원이나 동네 모임 등을 통해 아이들이 친구들과 가까워지도록 애썼습니다.     

일 년 정도 지나 보니 아이가 타고난 성격을 존중해야 하고, 관계는 강제로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어느 순간, 놀이터에서 싸우고 부딪히면서 스스로 깨우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좌절'은 윤진 님이 관심을 가지는 또 다른 주제입니다. 얼마 전 한 아이가 태권도 학원에서 품새를 잘 외우지 못해 꾸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제대로 혼나 본 거라고요. 윤진 님이 불안을 잘 느끼고 주변에 아이들을 사랑해 주는 어른들이 많은 만큼 아이들은 안전하게, 수용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거절을 듣거나 좌절해 본 경험이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간 안전하게 배울 기회를 자신의 불안으로 막은 게 아닌가 싶어 견뎌내는 연습 중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건널목 혼자 건너기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세세하게 지침을 세우고 같이 도로에 나가면 아이들은 조금 긴장하면서도 곧잘 한다고 합니다. 불안한 사람은 오히려 윤진 님입니다. '아이들이 다치면 어쩌지' 염려되는 동시에 '내가 계속 쫓아다닐 순 없지' 자신을 설득하며 용기 냅니다.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건 양육자가 자신의 불안을 넘어서는 일이니까요.     


좌절은 아이만의 숙제는 아닙니다. 양육자도 마음같이 되지 않는 수많은 순간을 견뎌야 합니다. 크고 작은 좌절이 계속될 걸 알면서 또 다음 걸음을 내딛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출산 자체가 '리스크'라고 생각합니다. 경력, 수입, 건강, 시간활용 등등 모든 자원배분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안전지대 벗어나기, 이 무모한 결정 덕분에 우리는 양육자가 됩니다.    

 

윤진 님은 아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잘 모르겠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내가 9년 동안 키웠지만 그렇다고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요. 그래서 초등학교 첫 상담도 신청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여전히 '내가 보는 게 정말 아이의 모습인가?' 곰곰이 생각합니다. 칭찬이든 부정적인 평가든 낙인찍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윤진 님의 두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달랐던 대목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집에서 의사결정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결정하고 책임지는 일을 어느 시점에 어디까지 아이에게 넘겨주었는지 말이죠. 그는 일방적으로 정해서 지시하기보다 둘 다 만족할 방법을 스스로 찾아가게 돕고 있었습니다. 의도했다기보다 윤진 님 본인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서 한 선택이라고요. 언제까지나 양육자가 해결해 줄 수는 없으니까요.     


윤진 님은 2010년 전 비폭력대화를 만났습니다. 교사인 그는 다른 교사들과의 모임에서 함께 노란색 표지의 비폭력대화 책을 읽었습니다. 체벌이 있던 시기라 실제 교육 현장에서 표현되기까지는 어려웠다고 말합니다. 그 이후에 교직 경험이 쌓이고, 두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다양한 육아서와 심리학 서적을 접합니다. 그렇게 14년이 지난 후 엄마가 되어 다시 본 비폭력대화는 사뭇 달랐습니다. 윤진 님 이야기에서 비폭력대화도 인연이 닿는 때가 있음을 실감합니다.     


윤진 님은 올해 3월부터 기린 부모학교를 수강하고 있습니다. 상반기 수업을 들으며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우선 책으로만 접한 비폭력대화를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연습하며 체득하고 있다고요. 예전엔 화가 났을 때 옆에 땔감이 쌓여있는 것 같았다면, 요즘은 소화기가 옆에 놓여있는 것 같다고 표현합니다. 불이 활활 타오르다 못해 번지곤 했는데, 이제 소화기를 집어 들고 불길을 잡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비폭력대화가 아이들과의 의사소통에 직접 쓰이기보다는 내면의 평화나 남편과의 대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전엔 부부가 서로 성향이 달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상대를 나의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각자 자기 욕구를 채우는 과정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요.     


부작용도 있습니다. 가족들이 자신에게 너무 말을 많이 한답니다. 윤진 님 가족은 이따금 장거리를 차로 이동합니다. 그 시간이 갑론을박으로 시작해 침묵으로 채워졌었다면 요즘은 깊이 연결되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윤진 님이 욕구 차원에서 들어주며 반응하기 때문이겠죠. 아이들도 어찌나 자신에게 이야기를 많이 하는지 너무 피곤하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윤진 님이 마냥 힘들어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몇 년 지나 아이들은 자라고, 윤진 님의 삶에 비폭력대화가 켜켜이 스며들겠지요. 그때 만나 나누는 대화엔 어떤 이야기가 담길지 상상하며 각자 육아의 현장으로 총총걸음을 옮깁니다.     



*기린 양육자를 소개해 주세요. 주변에 비폭력대화로 아이와 자신을 돌보는 양육자가 있나요? 알려주세요. 인터뷰이는 아이와의 시간을 돌아보실 수 있고, 그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배움이라는 선물로 전해집니다. 메일 열려있습니다. jhleepd@gmail.com


*기린양육자 인터뷰, 비폭력대화로 육아(育我)하기 네이버 카페를 통해 먼저 만나보세요.

https://cafe.naver.com/growingnvc

카페에 온라인 인터뷰 일정과 인터뷰이에 대한 소개를 공유해요. 함께 하셔서, 글에는 담기지 않는 인터뷰이의 생생한 이야기와 각자가 품은 질문들을 나눠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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