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린언니 Aug 06. 2024

수많은 NG 틈에 폭죽

기린양육자 인터뷰 프로젝트 (4) - 내진설계 님

비폭력대화로 사람을 돌보는 양육자들,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이번 인터뷰이는 네 자녀의 양육자인 내진설계 님입니다. 2018년 제주 패밀리 캠프에서 처음 그와 그의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당시 양육 경험이 없던 저는 그의 삶을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올해 초 경주에서 열린 IIT(International Intensive Trainings)에서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 사이 저 역시 양육자가 되었고, 20대의 아이들과 그 양육자의 이야기가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큰 종이를 한 장 펼쳐 들었습니다. 제가 미리 드린 인터뷰 질문을 토대로 아이들과 지난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그 내용을 마인드 맵 형태로 정리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틈틈이 저 종이를 살펴 가며 대답하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아이들과 각각 나눈 대화가 이미 큰 선물이라고요.



네 아이(이 글에선 꿀벌-하늘-바다-사랑이로 부르겠습니다.)는 각각 27세 아들, 25세 아들, 22세 딸, 21세 딸입니다. 어린 시절 아이들은 두 줄로 줄지어 다니거나, 딸 둘은 쌍둥이 유아차에 타고 두 아들들이 양쪽에 하나씩 날개처럼 걸어 다녀서 주변의 시선을 끌었다고 합니다.    

  

조부모와 이모 삼촌의 도움 속에 아이들을 키우다, 개인적인 이유로 2010년부터 그가 홀로 네 아이들을 돌보게 됩니다. 너무 큰 시련이었다고요. 당시 아이들은 각각 13,11,8,7살이었습니다. 경제적, 정서적, 체력적으로 모든 면에서 굉장히 고통스러웠다고 말합니다. 그때를 떠올리는 그를 보며 저도 몸에 힘이 들어가고, 숨이 가빠졌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었습니다. 그가 쓰러지고, 몇 차례 수술을 받는 와중에도 아이들은 자랐습니다.  

   

너만의 아이가 아니다.

그는 주변 사람 그리고 아이들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이 시간을 버팁니다. 한 친구는 '너희 아이들은 너만의 아이가 아니다. 내 애들인 것과 다름이 없다'며 경제적으로 도와주고 마음과 시간을 내주곤 했습니다.     

한편으로 아이들은 밤낮으로 일하는 엄마를 돌봅니다. 화장실을 갈 때도 엄마가 깨지 않게 발을 들고 다니고, 어린 손으로 이불을 들어 햇빛을 가려주던 모습들이 지금도 떠오른다고요. 졸졸졸 따라다니며 '엄마 사랑해', '우리는 엄마가 최고야. 잊지 마.'라며 마음을 표현합니다. 아마 많은 양육자들이 이 말에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먼저 사랑을 줬어요. 제가 육아를 받은 것 같아요.     



그는 어떻게 비폭력대화를 만났을까요? 2004년, 처음 도서관에서 비폭력대화 책을 펼쳐듭니다. 너무 집중해서 읽어서 옆에서 불러도 대답 못할 정도였다고요. 그전까지 그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충만하면 말은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어떻게 돌봐야 하나', '마음은 어떻게 알아줘야 하나'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이 필요했습니다. NVC 1만 대여섯 번 들으며 계속 길을 찾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직접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셋째 바다가 처음 초대에 응해 스마일 키퍼스와 NVC1을 수강합니다.


패밀리 캠프의 기억입니다. 네 아이들이 모두 왔지만 첫째 꿀 벌이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멀리 제주까지 와서 참여는 안 하겠다는 첫째의 선택을 존중하기가 그는 무척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캠프에서 얻은 여러 돌봄과 배움으로 그저 묵묵히 지켜봅니다.     

캠프가 끝나갈 즈음, 잔디밭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는 아이에게 '지금 어떠니?'묻습니다. 꿀 벌이는 이렇게 답합니다.     

내 뜻대로 편안하게 쉴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엄마, 나를 존중해 주어서 고마워요.   
  

이전까지 그는 첫째에게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 집안일이며 진로며 엄마의 뜻에 따라주길 바랐고, 아이를 위해 좋은 것을 권했지요. 하지만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할 때 진짜 연결이 되고, 이게 NVC를 실천하는 거란 걸 깨닫습니다.      

그 후로도 NVC의 방식이 익숙해지도록 연습하고, 습관적인 반응을 다르게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는 이 과정을 촬영에 비유했습니다. 준비하고(레디), 갈등을 직면(액션!)하는 거죠. 물론 다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수많은 NG를 내가며 여기까지 왔지요.     


그에게 NG 경험을 묻자, 다양한 에피소드가 쏟아집니다. 싸움을 구경하러 달려간 아들에게 손찌검을 한 일, 퇴근해서 설거지가 쌓여있는 것을 보고 폭발한 일. 사랑하는 마음을 잘못된 방법으로 표현한 순간들을 함께 애도합니다.      

변화와 성장의 순간도 나눕니다. 막내와 방청소를 두고 자주 다투곤 했는데 어느 날 비폭력대화 수업을 듣고 와서 아이의 방을 보니 조금 달리 보였다고요. 그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이렇게 두는 게 너만의 규칙이 있는 거니? 이게 편안한 거니?    
 

평소 같으면 빨리 치우라고 혼냈을 엄마였지만, 이날만큼은 호기심과 존중을 전했습니다. 막내 사랑이가 당황합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며 엄마로서의 미안함, 아이 나름대로의 규칙을 발견합니다. 혼나지 않은 사랑이가 말하죠. 엄마가 많이 달라졌다고.     


셋째가 고민을 털어놓길래 그저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들어줬더니, 대화를 마친 아이가 너무 신나 하고 홀가분해하며 '엄마, 폭죽이 터진 것 같아!'라고 말합니다. 그 순간 기여할 수 있는 엄마가 됐다는 게 너무 뿌듯하고 행복했다고요.     


듣고 자란 말을 그대로 하고 싶지 않아서

그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지만 아이들과 연결되는 언어는 배우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다른 수많은 부모들도 같은 심정이지요. 이 사실을 의식하고 변화하기로 노력합니다.      

가령 셋째가 버스터미널에서 도움을 청하는 어른에게 쌈짓돈을 털어 주고 '엄마, 나 잘했지? 착한 일 했지?'라고 물었을 때, 마냥 칭찬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되묻습니다.     

착한 일이 뭘까? 너한테는 그런 게 착한 일이었구나.
그렇게 했을 때 기분이 어땠니?     

아이의 감정을 함께 들여다보며 그는 어렸을 때 들었던 '착하다'는 말을 떠올립니다. 그 평가를 듣기 위해 애썼던 순간, 원하지 않았지만 순응해야 했던 순간들 말이죠. 그는 들은 말을 그대로 하는 대신, 아이들을 공감해 주며 스스로의 욕구를 충족해 나갈 수 있게 돕습니다.     


나만의 아이가 아니다

그는 아이들이 '내가 낳았지만, 그저 나와 잠시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양육자는 아이들이 독립적인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돕고 지지해 주는 역할만 할 뿐이라고요.     


네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각자 나아가고 있습니다. 비폭력대화를 실천하려 애쓴 엄마와 바깥 사회의 온도 차이에 적응 중입니다. 둘째는 그간 엄마를 통해서 접했던 비폭력대화를 직접 배워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훌쩍 자란 셋째는 '엄마는 기린친구를 낳아서 엄마 옆에 두고 공감받아가며 키웠네?'라고 농담을 건넵니다. '다들 이렇게 말하는 줄 알았다'는 막내는 이따금 고민을 상담해 옵니다.    

 

그가 고통 속에 있을 때 아이들이 지켜보며 버텨주었듯, 그 역시 앞으로 아이들에게 충성된 사랑으로 함께 할 겁니다. 결코 없어지지 않을 사랑을 보여주고 싶다고요. 이 깊은 마음은 가정을 넘어 사회로 번집니다. 그는 현재 한국 NVC중재협회에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잘 나서 혹은 NVC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저 따뜻한 마음으로 함께 있어주면 된다는 그의 말 덕분에 저의 수많은 NG가 조금은 덜 부끄러워졌습니다. 이렇게 계속 나아가다 보면 저도 언젠가 신나게 폭죽을 터뜨리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겠지요?     


이날 저는 다섯 명의 기린 가족들을 다 같이 만난 것 같았습니다. 가족구성원을 어떻게 NVC로 초대할지, 가정과 사회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시킬지 같은 고민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NVC라는 바다로 초대를 하되, 물놀이하는 건 각자의 몫'이라는 비유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수면 깊이 잠겨서, NVC라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어려운 순간을 버텨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물 위로 올라와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호흡하며 먼바다와 가까운 바다를 신나게 헤엄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