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치료 받는 것을 남친에게 말하면 안되는 이유

저도 알고싶지 않았습니다

by 기린

잠이 온다.

커피를 안 마신 탓일까, 혹은 어제 밤에 털어넣은 항불안제 때문일까.

불면이 심해질 때 수면제 대용으로 처방받은 약을 1/4T씩 쪼개먹는데,

보통의 경우는 그 반의 반쪽만으로도 잠이 잘 오지만 어제는 달랐다.

애초에 잠이 안 올 것 같은 스트레스여서 평소 먹던 약 용량의 2배를 2번씩 먹었기도 했고,

거기서 추가로 한번 더 먹었으니 평소의 5배를 복용한 셈이다.

약전에서는 반감기가 6-12시간이라고 했는데. 어째 하루가 다 가도록 몽롱한 기분이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이 약을 먹기 전이었던가, 아니면 오늘 한 생각이던가.

되짚어보니 그건 약통에 손을 뻗기 전부터였다.

항상은 아니고, 살면서 두 번 정도 있었다.




결혼을 생각하던 남자친구와 다퉜다.

이제야 좀 잘 맞는 사람을 만난 것인가 생각했는데,

사소한 가치관 차이도, 어긋나기 시작하면 관계에 금이 가게 한다.


나는 종종 어떤 트리거 버튼이 눌려지면

묘사하기 어려운, 속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뜨거움(?)을 느끼는데

그럴 때에는 어쩐지 수 년간의 상담치료(수천 만원 상당의)도 나를 막아내지 못한다.

이전의 진했던 연애에서, 뜨거움이 불쑥불쑥 찾아올 때마다

폭발하며 금가던 관계 때문에 시작한 상담치료는 햇수로 치면 거의 4년 째였다.

나는 정말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나를 고치고 싶었다.





정신과의사들은 수련 과정에서 자기 스스로를 알기 위해 정신분석 및 상담을 꾸준히 받는다 한다.

아는 언니의 친구인 정신과 선생님의 추천으로(레지던트 때 이 원장님께 상담을 받으며 인생이 바뀌었다는 후기를 덧붙였다), 4년 전 나는 한 작고 아늑한 의원을 찾아갔다.


나는 성장과정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8살 때까지 같이 살았는데, 정말이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는 내게 원장님은 비특이적이라고 했다. 내가 아버지를 기억 저편에 억압 중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아버지의 외도와 배신으로 망가진 엄마 옆에서

엄마의 샌드백 역할을 30여 년 하다가 결국 도망쳤다.


본가에서의 독립과 엄마와의 물리적 격리를 거치면서 내 삶도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단언컨대 나의 심리적 안정과 사랑받는다는 느낌은

단 한번도 가족에서가 아닌,

오직 나의 애인들(편의상 '구')에게서만 찾을 수 있었다.

나의 '구'들은 사실상 내 남자친구이자, 내 보호자, 아버지이자, 오빠이자, 친구이자 모든 것이었다.


나의 '구'들은 내게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대체로 따뜻한 사람들이었으나,

미숙했던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고 사랑했던만큼 많이 다퉜다.


나는 아버지가 그러했듯, '구'들이 나를 떠나버릴까 항상 두려웠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늘 불안해하며 걱정했고

걱정했던 일들의 일부는 실제로 일어났다.


아버지가 그러했듯, '구'들도 내게 실망감을 안겼고

우리는 헤어졌다.


상담선생님은 내게 골치썩일 남자만 골라서 좋아하는 것이 나의 성장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온전히 사랑받아보지 못한 경험 때문에, 고통을 주는 관계를 사랑으로 착각하는 거라고.




4년 여의 상담치료를 통해 조금씩 안정을 찾던 나는,

새로운 연애가 시작되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할 때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 반복되는 나의 이 일상(상담을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

공개를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했다.

내가 정말 이상해보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미주알 고주알 내 일상을 공유하길 좋아하는 수다스러운 나는 거짓말을 하기 싫었다.

남자친구에게 상담 받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고

내 가정사를 들은 그는 매주 반복되는 나의 스케줄을 이해했다.


당시 나의 스트레스 대부분은 '구'에 대한 나의 불안과 집착,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엄마처럼 화를 내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였다.


고맙게도 '구'는 매 주 "오늘은 선생님이랑 무슨 이야기했어?"라고 물어봐주고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내가 담에는 이렇게 해줘야겠네"라고

선뜻 상담의 피드백까지 반영해 본인을 고치려고도 하는 꽤 따뜻한 이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나는

누군가 내게 <상담 치료를 받는것을 애인에게 밝힐것인가>를 묻는다면,

말릴 수 밖에 없겠다.


사이가 좋을 때는 몰라도 (이마저도 괜찮지 않아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사이가 나쁠 때는 그 것이 내 약점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했던 '구'들과 다툴 때

가슴에 콕 박힌 그 말.

"너 그 선생님한테 가서 물어봐봐. 이게 맞는지" (정말 궁금해서 했던 말이라며, 후에 내게 사과했다)


'상담치료를 받는 사람이라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불합리한 사고를 할 것이다'라는

전제 필터를 씌운 안경을 누군가가 쓰고있다면

심지어 그가 내게 정서적으로 중요한 사람이라면, 데미지가 꽤 크다.


갈등 상황에서 내 감정과 내가 내린 결정이,

내가 평소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타인의 잣대를 또 거치게 된다.


충분히 불안하고 화날 수 있는 상황에서(내가 판단하기에) 정상 범주의 반응을 하더라도,

그저 상담 받는 사실을 솔직하게 오픈했다는 사실 때문에

평소에도 문제가 있던 사람이 증상 악화를 겪는 것(?)으로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이 경험이 썩 유쾌하지 않았음을

상담치료 중인 동지들이 굳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해본다.

누구나, 완전한 내 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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