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를 집중할 수 있다면 지루함은 사라집니다.
현대 사회에서 주의력은 새로운 사치품으로 그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과거의 사치품이 귀금속, 고가 의류 등 희소한 물질적 자원의 독점을 통해 과시되었다면, 정보 과잉 시대의 사치는 가장 희소하고 재생 불가능한 자원, 즉 개인의 주의력을 어떻게 배분하고 '낭비'하느냐로 재정의된다.
주의력은 한정된 생명의 시간과 직결되기에, 그 가치는 금전적 가치를 초월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우리의 주의는 아주 비싼 소유물이다. 주의는 우리의 시선이 어디로 갈 건지를 결정하고, 우리의 시선은 개인의 주의를 지배한다.
우리는 매 순간 우리가 의도하지 않는 수많은 매체가 전달하는 미끼에 노출되며, 우리의 주의를 '무료'로 제공하라는 끊임없는 요구에 시달린다. 때문에, 주의력을 아무 곳에나 흘려보내지 않고 의식적으로 지키고 보존하는 행위 자체가 고도의 절제와 인식 수준을 필요로 하는 '주의력 재정 관리'의 영역이 되었다.
진정한 사치는 그 귀한 주의력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숏폼 콘텐츠, 피상적인 뉴스 헤드라인, 알고리즘이 짜준 쾌락 회로에 주의력을 '할인'하여 판매하는 낭비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흔한 '가난'의 표현이다. 이는 자신의 가치를 무조건 아래로 추락시키는 원인이고 스스로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반면, 주의력의 낭비, 그 자체가 새로운 사치의 표현이 된다. 여기서의 '낭비'는 비효율성이나 무의미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성과나 효율성이라는 시대적 강박에서 벗어나 여유와 선택의 자유를 만끽하는 행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두껍고 복잡한 논픽션 서적을 끈기 있게 독파하는 행위, 공들여 만든 예술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여 관람하는 행위, 혹은 느리고 불편하지만 깊은 사유와 성찰을 요하는 고전적 형태의 미디어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모두 '나에게는 이 귀한 주의력을 느리고 비효율적인 활동에 투자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다'는 강력한 사회적 신호이다. 이는 마치 고전적 사치품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여유와 선택의 자유'를 과시하는 행위와 같다.
주의력을 현명하게 소비하는 사람은 세상의 빠른 속도와 강요된 효율성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속도를 지킨다. 가장 필요한 곳에 주의를 낭비한다. 이러한 '주의력 사치'의 실현은 결국 타인의 시선이나 알고리즘의 유혹을 벗어나, 자신의 내면적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경험에 주의력을 전적으로 쏟아붓는 주체적인 삶의 선언이다.
따라서, 주의력은 단순한 인지 자원을 넘어, 현대인의 삶의 질과 사회적 지위를 규정하는 가장 귀하고 함부로 낭비해서는 안 될 사치품인 것이다. 이 사치품을 어디에, 어떻게 '낭비'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21세기의 진정한 자유이자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