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 늙어가는 때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가는 게 아니라 늙어가는 때다. 나이 50을 분기점으로 그 이전에 아이를 낳고 돌보는 시간이 있는데 정말 시간이 빨리 가는 때가 한 번 있고, 다시 좀 더 나이가 들면서 젊음과 늙음의 분기점이 오는 때에 또 세월이 초고속으로 지나가는 때가 있다고 한다. 지금은 아주 적당히 흐른다. 바람이 막힘을 두려워할까? 물이 바위를 두려워할까? 아주 잘 흘러간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늘 흐르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마음이 느려진다는 표현이 좋다. 육체적으로 점점 졸아들고, 정신적으로 반응이 느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상만사에 대해 갑작스레 놀라지도 않고, 확 좋아지지도 않고, 서두르지 않고 가만가만 마주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난다. 자연이 겪는 생로병사에서 생을 제외한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은 선택이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태어나는 건 선택할 수 없지만 어떻게 늙어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에 아주 큰 책임감을 느낀다. 그것은 곧 어떤 모습으로 죽음의 문 앞으로 가느냐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도 우리는 늙고, 병들고, 죽는 과정을 우리가 선택하고 사는 것임이 분명하다. 남자처럼 담배와 술 같은 중독에 약한 사람은 보장할 수 없다.
항상 어디를 가든 조심스러웠고, 가는 곳 모두가 좋았다. 논현동이나 도곡동 도심 한복판, 판교, 상적동, 안산 캠퍼스까지 모든 곳이 처음이었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적어도 어디서든 풀 죽은 목소리를 내지 않았고, 해 본 적이 없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자신 있고 용기 있게 덤볐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하지 않아도 후회하니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는 말을 한다. 모든 지나간 일을 자책하거나 반드시 후회하는 일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 못한 일은 하지 않은 채로 살아갈 뿐이지 무슨 후회를 하겠는가? 우리가 하지 않았다고 꼭 아쉬워하거나 미련을 갖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하지 않은 채로 흘러갈 뿐이다. 혹시라도 하지 않은 일로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런 일은 꼭 하고 살기를 바라야 한다.
아무리 마음에 드는 좋은 일이 있다고 해도, 전부 해볼 수는 없다. 다른 어떤 것도 마찬가지다. 멋진 옷과 맛있는 음식, 좋은 사람과 좋은 책, 여행도 한결같이 좋을 수는 없으니, 매 순간 가장 마음에 들고, 즐겁고 편한 것을 선택하기로 한다. 시장에서 파란색과 빨강색 티셔츠가 마음에 들면 어느 하나를 고르지 말고 두 개를 산다. 훈련을 마치고 자주 가는 마마구이 식당에 가면 김치찌개, 청국장, 고등어구이, 제육볶음 이렇게 서 너 가지를 시켜서 먹는다. 중국집에 가면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시켜 혼자 먹어도 된다. 모든 것을 풍족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일회용을 잘 사용하지 않고, 음식을 남기지 않는 사람이라 아주 가끔씩 즐기는 일이다.
조금씩 나아지기 위해서 매일 하는 루틴이나, 일상을 지탱하기 위해 리듬, 조화, 균형, 반복을 빼먹지 않고 실행하는 규칙을 제외하고 매일매일 같은 활동을 하면 성장은 없다. 매일 같은 시간에 조금도 다르지 않은 연구실로 오고, 매일 만나는 사람을 만나고, 늘 하던 일을 한다는 자체가 어떻게 보면 발전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다. 더구나 같은 생각은 같은 방식의 행동을 불러온다. 하던 대로 하는 방식은 창의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 누군가 보여주는 태도와 행동을 이해하긴 어렵지만 보여주는 사실은 확실하다. 이 나이까지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면 앞으로는 사실 FACT을 찾으려고 노력하길 바란다. 진실을 찾는 삶은 늘 공허할 수 밖에 없다. 진실은 늘 사실을 가려왔다.
늘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순서와 방식을 바꾸고, 가지 않았던 곳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변하지 않기 때문에 경쟁하는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바꾸지 않기 때문에 창조하지 못하는 것이다. 경쟁하는 곳에서 일단 빠져나와야 한다. 경쟁은 상투적이고 일관되게 좋지 않은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무조건 다른 대륙을 찾아 떠난다. 창조하는 일에는 경쟁이 없다. 아름다운 항해를 이어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