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테 Jun 16. 2020

헛수고에 대한 두려움을 마주하다.

아... 6시간 동안 썼던 글을 다 날려버렸어.

방금, 하루종일 썼던 순례길 여행기가 반토막이 난 채로 올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속으로 엄청난 탄식을 내지르며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었다. 


'아.... 이게 뭐야.'


하지만 곧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올렸던 글은 서랍 속으로 보내게 되었다. 며칠 전에 썼던 분량 그대로 다시 저장이 된 셈이다. 오늘 카페에서 6시간을 넘게 죽치며 보냈던 시간들과 나의 노고가 헛되이 흘러가는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거대한 짜증과 분노를 잠시 마주해본다. 지난 날, 이와 비슷했던 크고 작은 모든 사건들에 대한 격한 감정이 엉겨붙어 올라오고 있음을 느꼈다. 마치 나를 가로막는 듯한 거대한 장벽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새까맣게 변한 덩어리가 어느새 가슴 안을 커다랗게 장악하고 있었다. 숨을 크게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으며 반복적으로 비워내본다.


'너가 아무리 날뛰어도 나는 굴하지 않고 단단히 중심을 다잡으며 계속해서 나아갈거야. 그러니 지금의 너가 느껴져도 괜찮아. 기꺼이 너도 안아줄게. '


문득 겨울왕국2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엄청난 분노에 휩싸여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릴듯이 뛰어다니던 불덩어리와 그 옆에서 단호하지만 마음으로 손을 내밀던 엘사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사실 그 불덩어리는 단지 엄청난 두려움에 불로 무장한 귀여운 꼬마 도마뱀(?) 친구였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나니 내 안의 까만 덩어리들이 점점 녹아내린다. 헛수고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작아짐을 느낀다. 


오늘 썼던 내용들은 날려보냈지만,

여전히 짜증감은 좀 남아있지만,

뭐 어쩌겠어.


결국 나는 글을 다시 완성하여 발행할 것을 알고 있다.

오늘의 글과는 결이 좀 달라질 수도 있지만, 아무렴 어때!


나는 언제라도 다시 걸어갈거야.












작가의 이전글 꽃을 꼭 만개한 순간이 아니더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