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정심

살아내는 방법

by girok

오랫동안 수시로 변하는 마음이나 감정의 상태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이나 슬픈 감정이 들 때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서요. 기록만이 그 순간을 덮어주고 숨을 고를 수 있게 되는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 순간의 기록이 몇 개의 계절로 순환하고 있는 걸까요. 말로는 세밀하게 전할 수 없는 감정들이 문장으로 새롭게 피어나듯 표현할 수 있는 것만 같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 글을 눌러 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원하지 않는 슬픔이 어느샌가 흘러와 자기 자신을 울릴 때,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감정의 이면. 그 속에서 나를 지키는 마음들, 부디, 슬픔을 외면할 수는 없어도 어디선가 평안이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아프거나 힘들지만은 않았으면 해서요. 그럼에도 그런 순간 속에서도 저는 살고 있습니다. 살아내고 있다는 표현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요조 - 나의 쓸모라는 노래가 생각나는 밤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에는 내가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 제가 중요했던 적은 원래 없었습니다. 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삶일 뿐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마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저 역시 누구의 마음을 모릅니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과잉 공감의 시대라 했던가요, 가끔은 모른체하고 두 눈 질끈 감은 채 지나가고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더 나은 선택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따금씩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녕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이 안녕한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부디,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기를. 존재하고 있기를 하는 마음 하나였습니다.

구원, 구원자라는 말은 거창한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누군가를 구원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만이었고, 자만이었습니다.

저조차도 저를 구원하지 못하는데, 그런 제가 감히 누구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 한때, 타오르던 동정심으로 구원을 외치며 손길을 내밀려고 했던 손을 잡아주고 싶었던 지난날의 오만한 제 모습을 보며 깊이 반성했습니다.

저는 아무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 기록하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이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뭐, 더 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점점 말 수는 줄고, 생각하는 시간이 줄고, 글 쓰는 시간도 줄고 있습니다.

구구절절한 마음과 낭만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내려 갔습니다. 그러나, 타오르는 마음이 말라버린 마음과 닿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메마른 도시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단조로운 일상의 온도는 미지근합니다. 사람마다 지닌 온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온도는 따스할 것 같기도 합니다. 아, 정확하게는 사랑의 온도가 따스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어떤 온도를 만나도 호들갑 떨지 않으려 합니다. 조금 더 유연하게,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겠습니다. 이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1월의 끝을 지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