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말, 행동

by girok

무엇이 그렇게 나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걸까. 그날에 나는 펜을 잡을 수 없었고, 말하지 못했고, 행동이 빠르지 못했다.


펜을 잡고 무언가를 적고 나면 글인가, 낙서인가 구분할 수 없었고, 누군가의 물음에 답을 하려 첫 마디 내뱉으면 버벅대기 일쑤였고,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이라도 시켜 둔 듯 손쉽게 할 수 있는 일들도 쉽게 해내지 못했다.


그 시절에 나는 잠시 죽어있었다.

숨이 붙어있었지만, 간신히 겨우 생존할 정도의

호흡만이 가능했다.


생존의 호흡을 하며 나는 메모장을 켰다. 메모하는 일을 멈추지 못했던 것은 내내 살아있어서 존재하고 있었기에 멈추지 못했다.


책표지에 눈길이가 책을 구매하고 조금 읽어볼까 싶으면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닫힌 책들이 몇 권 있다. 그렇다. 나는 책과 거리가 멀다. 책을 읽지 않고, 늘 새로운 영화들이 개봉되지만 영화를 보지 않는다.


그저 메모장을 켜 글을 끄적이는 것, 타인의 방문 앞에 서서 그들의 방을 구경하는 일. 나는 이 일이 유명한 작가의 책을 읽는 것과, 관객 수가 1000만이 넘어가는 영화를 보는 일보다 더 좋았다. 방을 구경하며 그들의 취향이 무엇인지 보았고, 어떤 마음과 생각을 방에 간직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나는 똑똑하지 못해서 책을 읽으며 책과 친해져보자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많이 보고 읽을수록 시야는 넓어지고 배움의 폭이 넓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똑똑하지 못한 사람으로 남기로 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올리고 있는 내가 책과 전혀 친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 또한 모순이라면 모순점이겠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나 자신에게 솔직하자고 작은 다짐을 했다.


그리 대단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이렇게 기록하고, 가끔 사랑하는 이들을 사진으로 담으며, 좋아 하는 음악을 들을 때 나는 호흡을 하는 것 같다.


너무 많은 것들에 나라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말을 아끼고, 지나치게 감상적인 사람이 된다거나 감정이 중심이 되지 않기 위해 나의 중심을 지키고자 이렇게 글을 적어본다.


불안한 날들에 연속이었다면, 이제는 안정적인 날들이 더 많아지기를. 머무는 동안 다정하기를.

작가의 이전글많이 슬프고 우울한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