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한 꼭지

어디까지 해야 하지?

by 뽀야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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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일을 시작한 지 이제 17년 쯤 되는 듯 합니다.

불안한 미래로 인해, 현재에 만족을 못하는 성격으로 인해, 나를 다그치기만 해온 세월이었던 듯 합니다. 일을 하고 있어도 불안하고 뒤쳐지는 듯 하고 더 많은 연봉과 더 넓은 인정, 더 높은 자리를 갈망해왔던 듯 합니다. 어느 순간 이게 다 무슨 의미지? 나를 사랑해보자! 와 같은 생각에 자기 계발서를 보며 위안도 얻고 억지로 쉬어보지만 다시 뒤쳐지는 듯 하여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일을 합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그 순간들은 맞았을까? 아직 답은 나오지 않았고 종착역까지는 멀었습니다.

그래도 사십대 후반인 지금 한 번 쯤은 나를 돌아보고,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스스로에게 납득을 시켜보고자 경험한 이야기들을 적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헌데 그 마음은 이미 4-5년이 되버렸네요.

일단 시작을 해보기로 합니다. 몇 자 적다보면 나아지겠지요. 아니.. 스스로 만족하겠지요?



가장 힘들었던 기억 중 하나로 짧은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몇 년도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찾아보면 제대로 적을 수 있을텐데 관둡니다. 그건 왠지 귀찮아서요. 여하튼 현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았고 대리시절이니 기껏해야 2009년 혹은 2010년일 겁니다. 다들 좋게 봐주셔서, 그다지 잘하지도 않는 영어인데 영어 잘한다고 현 회사에 스카웃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의 영어가 상급이다라고 스스로 생각한 적은 거의 없는 듯 합니다. 옆에서 아무리 잘한다 잘한다라고 해도 스스로 납득을 못하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지언정 믿지를 않는 피곤한 성격이거든요.


영업부서의 부장님과 둘이서 유럽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첫 출장지는 영국이고 그곳에서 대리점분을 만나서 스코트랜드의 고객사를 만나는 일정이었지요. 다행히 대리점 분은 그 전 회사에서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오신 분이라 저를 잘 알고 제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도 전부 아시는 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제 인생의 멘토가 되실 분입니다)

안타깝게도 히드로에서 만나기는 했지만... 스코트랜드로 같이 이동은 못하셔서 교통편만 봐주시고 부장님과 둘이서 고객사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출장이고, 영어를 잘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영어에 스스로 확신은 못하고, 매번 가는 곳에서도 길을 잃는데 초행길이고.... 기술영업임에도 아직 제품을 명확히 알지도 못했고...(공부해서 와라라고 하셔서 공부는 했습니다만..... 머 아는 게 있었겠습니까?)

여러 부담감으로 인해 지금도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었습니다.

전 끔직할 정도로 방향치입니다. 여전히 저희 부서분들이 제 길을 찾는 영험한 능력에 감탄하곤 합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그리 가실 수 있습니까라는 말을 매번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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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사가 큰 기업이라서... 건물을 여러 개 사용하더군요. 길 설명을 경비원분이 해주셨는데... 아..... 영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고 길센스도 전 최악이라 헤메기 시작했습니다.

부장님은 정말 무서우신 분이었거든요. 옆에서 쌍욕급 엑센트(단어는 노멀한 단어였습니다)로 나무라기 시작하십니다. 한 몇 분 헤맸나(저에겐 인고의 세월이었지만) 다행히 아시아 사람들이 저랑 부장님만 있어서인지 어떤 직원분이 말을 걸어주셔서 저희를 회의실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늦지 않았더군요.


미팅장에 앉았습니다.

보드 세팅을 해서 저희 회사 제품의 데모를 보여줘야 합니다. 아.... 보드가 구동을 하지 않습니다. 땀을 뻘뻘흘리면서 세팅을 해봐도 도저히 화면이 나오지 않네요.... 부장님이 이번에는 온화한 엑센트로 험한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고객들은 멀뚱멀뚱 앉아서 화면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구요...

죽고 싶었습니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파워는 들어와 있는데 영상이 안나옵니다(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보드 세팅이 유럽향으로 되어 있지 않아서 유럽 모니터에서 영상이 나오지 않는 거였습니다)

고객분이 데모는 됐고 스펙 설명부터 해달라고 합니다. 부장님은 영어가 능통하지 않으셔서 제가 통역을 해야 합니다. 헉......스코트랜드... 억양은 정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이야 익숙해져서 어케든 될텐데 당시에는 영어가 아닌 것처럼 들렸거든요. 제가 하도 버벅이니까 고객분들이 배려를 해주시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감사했지만 존심도 상했고 부장님은 정말 한대 저를 치셔도 이상하지 않을 눈빛이셨습니다.

미팅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보고서는 썼지만 맞는지 확인도 안되었구요... 대리점 분에게 부탁해서 전화로라도 액션아이템 체크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돌아 나와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부장님의 갈굼을 온몸으로 우주의 기운을 느끼듯이 들었습니다. 세포하나하나에 욕이 박히는 느낌이었죠.

저도 회사에 욕하고 싶었습니다. 난 영어 잘한다고 한적이 없는데... 니들이 잘한다고 했잖아...(물론 부인하지도 않았으니 입사가 되었겠죠) 난 아직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일단 가라며!!(안간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망칠 꺼였거든.. 난 알고 있었거든......(솔직히 이정도로 망칠지는 몰랐습니다)



그때부터였나봅니다.

스스로 만족이 될 때까지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해서 준비를 하는 버릇이.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까지 만족도가 올라왔습니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신이 있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다그침이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드는지도 몰랐던 듯 하구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던 그 시절, 영어도 공부하고, 기술도 공부하고, 사회 생활도 공부하고, 비즈니스도 공부해야 하니.... 막막하고 두려웠고 그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해 더 채찍질을 했나봅니다.

차라리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당시에 부족함을 인정했다면 좀 더 나은 마음가짐을 가지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