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있는 시장은 차량용 반도체입니다. 반도체 시장의 속성과 이 일이 왜 어려운지를 좀 적어보려고 합니다. 아래 꼭지들에도 조금씩 적었던 내용입니다만 더 정리해 봤습니다. 아... 주식투자와는 관계없으니 저런 제목이라고 투자 관련으로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ㅎㅎ
반도체 자체의 속성 중 영업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가장 기초가 되는 부분 중 하나가 단독 제품만으로는 완제품을 구성할 수 없다입니다. 누구나 아는 것 아냐?라고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팔 제품을 위한공부 방향성의 시작입니다. 스마트폰이든 PC든 우리가 아는 제품에는 다양한 반도체들이 조합을 이루면서 완제품을 만드는 거죠. 반도체를 판매하는 입장에선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차암 많습니다. 당연히 우리 제품을 알아야겠죠. 내가 공부할 "우리 제품"이 저희 회사가 만드는 반도체처럼 카메라에 사용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카메라를 구성하는 요소는 크게 이미지센서, 영상처리 프로세서, 전송 반도체 이렇게 3개의 메인 제품이 있고 여기에 메모리와 기타 반도체들이 연결되어 카메라를 이룹니다. 우리 제품을 팔기 위해선 우리 제품도 알고 이 카메라를 구성하는 다른 제품들도 알아야 합니다. 반도체끼리는 어떤 것은 연결되고 어떤 것은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른 제품이라고 명명되어 있는 것들 중에 연결되는 제품들까지는 알아야 하죠. 하지만 너무도 다양한 제품들이 있으니 고객사에서 이야기하는 제품이 레고블록처럼 우리 제품과 맞는지 안 맞는지를 판단도 해줘야 합니다. 메일로의 문의라면 엔지니어에게 물어서 답을 줄 수도 있지만 미팅 자리에서 물어봤는데 엔지니어가 없다면 좀 난감하겠죠?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회사와의 조합으로 완제품을 구성하는 타회사의 반도체 스펙들이나 대략적인 단가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것도 힘든데 남의 것까지... 헌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제 경쟁사 제품들도 알아야 물건을 팔 수가 있습니다. 경쟁사 제품과 우리 제품의 차이, 경쟁사 제품과 조합을 이루는 다른 회사의 제품과 우리 조합에 속하는 제품들과의 차이까지 알아야 하죠. 예를 들어 우리 회사 제품은 A 제품과 연결해서 많이 사용하는데 타회사 제품은 B 제품과 연결한다고 해보죠. A가 B보다 뛰어난 점을 간단한 측면이라도 설명을 해내야 합니다.
퀄컴 반도체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너무 큰 회사를 예로 드는 것 같지만 그래도 많은 분들이 아신다고 생각을 해서) 삼성도 화웨이도 예전의 LG도 같은 퀄컴의 반도체로 스마트폰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 회사의 스마트폰을 사용해 보면 묘하게 다르죠. 그건 소프트웨어의 차이입니다. 물론 퀄컴 반도체에서 지원하지 않는 기능은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만 그 지원하는 연산능력, 즉 컴퓨팅 파워 내에서 차별화를 이루는 부분이 소프트웨어거든요. 그러니 반도체 회사의 고객을 만나면 그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소프트웨어가 우리의 반도체에서 가능한지를 물어보면서 미팅이 진행됩니다. 연산능력과 예제 소프트웨어(애플리케이션이라고 합니다)를 숙지하고 고객의 요구사항에 대한 답을 해야 합니다. 계속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 고객의 요구사항이 특정 부분으로 수렴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나의 역량이 그 수준에 이르기까지 소위 계속 깨지면서 공부해야 하는 힘든 시간들을 견뎌야 합니다. 언젠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하는 분들의 인식이 어떻게 다르고 왜 다른지 한 번 설명해 보겠습니다. 물론 일반화는 안됩니다. ㅎㅎ 그런 성향이다 정도의 이야기가 될 듯하네요.
지금까지 설명드린 것은 시스템반도체의 이야기입니다. 메모리 반도체와는 아예 다른 부분입니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쪽에 특화되어 있는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반도체 그러면 메모리부터 떠올립니다만 시장 사이즈에선 시스템 vs 메모리로 보면 25년 기준으로 시스템반도체가 34%, 메모리 반도체가 26% 정도 됩니다. 이것도 AI 쪽 수요로 인해 메모리가 과도하게 성장하면서 만들어진 구조고 그전까지는 격차가 거의 2배 이상 났었습니다. 잠깐 말이 샜는데 반도체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은 어렵다는 말을 제외하곤 설명이 안돼서 좀 길게 적어봤습니다.
이제 시장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속한 시장의 특성을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제가 속한 시장이 자동차 반도체 쪽인데 이 자동차 시장 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으니 별도로 정리하겠습니다. 반도체 시장의 속성 정도를 말씀드리려고 하는데요 반도체는 주식투자와 같다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건 속성 자체가 약간은 선투자 쪽이어서 그렇습니다. 간단한 반도체라도 만드는데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스펙이 다 정해져 있는 상태부터 설계를 시작한다고 해도 칩의 사이즈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1년은 걸립니다.(SoC라고 하는 시스템 온 칩은 작은 제품이라도 1년 이상 걸리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1년간 설계를 하는 거죠. 이후 파운드리라고 하는 반도체 공장(기간산업에 속합니다. 반도체 공장은 만드는데 수 조원 이상이 들고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에서 이제 설계도에 따라 반도체를 만듭니다. 이것도 공정(집적화 정도라고 보면 되는데 반도체 기판이라는 정해진 크기의 웨이퍼에 얼마만큼의 회로를 넣느냐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집적도가 높다는 것은 같은 사이즈의 웨이퍼에 회로를 더 많이 넣을 수 있으니 더 많은 기능을 지원한다로 보시면 됩니다)이라는 것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인 수준의 SoC라면 1년 좀 안 걸린다고 봐야 합니다. 자... 스펙을 정하고 2년 후에 반도체 "시제품"이 나옵니다. 이후 이 반도체를 검증하고 별 문제없으면 고객에게 전달되죠. 검증도 그냥 쿨하게 6개월 잡으시죠. 이제 설계 시작부터 2년 6개월이 흐르면 고객에게 우리 반도체가 전달됩니다. 고객은 이 반도체로 완제품을 설계하겠죠? 정말 빨리해서 1년 6개월 걸린다고 해보죠. 시장에 출시되는 시점이 설계 시작부터 4년 걸리는 겁니다. 물론 스마트폰처럼 매년 제품이 나와야 하는 거면 이 시간들을 감안한 계획을 만듭니다. 0에서부터 하는 것은 아니라서 재사용블록도 있고 하니 시장과 자금여력만 받쳐주면 시간을 줄이는 것은 병행해서 설계가 가능하니 문제가 없죠. 하지만 스마트폰 같은 시장이, 차기 스마트폰의 시장이 아직은 안보입니다. 그러니 스마트폰 쪽은 예외처리하고...
설계 시작부터 4년 후의 시장트렌드를 예측해야 합니다. 위의 예제는 모든 것이 정해져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스펙을 결정하기 위해 고객사 미팅을 해야 하는데 최소 6개월 한다치죠. 중간중간에 우리 반도체를 사용할 업체들을 설득하는 기간 6개월을 더하고.. 자동차의 경우라면 제품을 만드는 Vendor가 자체 검증을 하고 다시 자동차 회사에 전달돼서 검증하고 이러면 1년은 훌쩍 날아갑니다. 요새 자동차 쪽은 일반적으로 4~6년 정도 후부터 양산 가능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도 많이 줄어든 거예요. 제가 이 자동차 반도체 시장에 들어왔을 당시가 2010년 정도였는데 그때는 양산까지 9년 잡았습니다.. ㅎㅎ 왜 이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느냐 하면... 반도체는, 어중간한 SoC를 만든다고 해도 100억 이상이 듭니다. 자동차 쪽이 좀 심하기는 한데 이번에 저희한테 만들어달라고 한 제품은 1,000억이 넘어갑니다. 개발비만요. 자, 이걸 선불로(Upfront: 요새 트럼프 때문에 많이 회자되는 그 단어네요. 여하튼 분할로 지급하지만 시제품 나오기 전에는 전부 지불되어야 합니다) 넣고 제품 개발 하는 겁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하더라도 이 제품의 매출은 최소 4년 후부터 나오는 거죠. 제품에는 원가라는 것이 있고 반도체 기준 매출 이익률은 일반적으로 50% under(반도체가 매출총이익이 높습니다 ㅎㅎ) 즉 1,000억을 넣었다고 하면 2,000억의 매출을 해야 개발비가 회수되는 거죠. 실 금액을 제외하고는 저와 같은 구조가 반도체 비즈니스의 핵심입니다. 사이즈가 작은 쪽은 같은 구조에 금액 차이만 존재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반도체... 어쩌고 쪽은 대부분 대규모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자금을 투입하고 자금 회수 전까지 버틸 수 있는 금액이 있는 회사여야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많이 팔고 싸게 팔고 이런 간단한 전략으로는 반도체 비즈니스 자체가 어렵습니다.
적고 보니 아시분 들께 소위 태클을 당할 수 있는 많은 부분이 보입니다. 하지만 골자는 틀리지 않을 겁니다. ㅎㅎ 좀 많이 길어지는 듯한데 전 짧게 쓰는 것에 재능이 없어서 요새 트렌드에는 맞지 않는 올드 제네레이션을 인증하네요. 마지막으로 중소기업에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위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대기업이라면 제가 설명한 부분들을 여러 명이 할 수 있을 겁니다. 중기는 그렇지 못하죠.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제품도, 협력사 제품도, 경쟁사 제품도 잘 알아야 부족한 브랜드 파워를 극복하고 제품을 판매할 수 있거든요. 시장에 대한 금전회수(?)의 이해는 나름대로 경력이 쌓이면 고려해야 할 부분이긴 합니다. 하지만 제품과 관련된 부분은 일선에 선 순간부터 판매하는 사람 자신의 경쟁력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래서 이직의 기회가 누구보다 많다는 거죠. 우리 협력사로도, 경쟁사로도 시장에서 능력만 검증되면 어디로든 갈 수 있게 되거든요. 오퍼가 물밀 듯이 쏟아집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ㅎㅎ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열심히 한 시간은 다 저의 자산이 됩니다. 그 자산은 시장에서의 나의 가치로 증명이 됩니다. 증명과 가치가 다 몸값 아니겠습니까... ㅎㅎ 한 곳에 몸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내가 점프를 하겠다고 맘먹었을 때 나의 가치는 투자한 시간에 비례한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