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하지 않을까?
오늘 스레드에 올라온 몇몇 글을 보다 보니 문득 든 생각입니다. 어떤 대기업이 위기인데 그 사유 중에 하나가 임원들의 수명이 상대적으로 길다가 거론되었네요. 다른 대기업들과 비교해 봐도 같은 직군에서 3번 임원들이 교체될 동안 한 번도 교체가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덧붙어 있고요. 물론 임원의 긴 수명이 기업의 위기에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쉽게 볼 수는 없지만 왜인지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저도 작은 기업이지만 임원이긴 합니다. 대기업과 비교할 수 없으나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어 이렇게 몇 자 적어보는데요... 상급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조직의 대표가 되는 겁니다. 작은 팀이든 팀이 모인 그룹이든(팀-그룹은 기업별로 그룹 위에 팀이 있기도 하고 팀 위에 그룹이 있기도 하고... 정해진 것은 없는 듯하네요) 몇 명이든 수십 명이든 어떤 조직의 대표가 되죠. 회사는 이 조직들이 모여서 만들어졌습니다. Silo 이론이라고 회사 내 이런 조직들이 소통하지 않고 공장의 굴뚝처럼 별개로 존재한다면 시너지가 나오지 않는 것을 떠나 효율이 바닥으로 치닫는다... 종국에는 쪼개지거나 망하거나에 이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요... 그래서 순환보직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전 순환 보직에 대해서는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ㅎㅎ 언제 기회가 되면 짧게나마 몇 자 적고 싶네요.
여하튼 사일로든 혹은 이 기둥들이 아주아주 미세하게 형식적으로 "연결"만 되어있든 핵심은 조직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레이(Grey) 영역이 있기 때문이죠. 새로운 기회가 생겼는데 기존 조직으로는 100% 커버가 되지 않고 이걸 누가 해야 할지 애매한 부분을 그레이 영역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요새 난리가 난 로봇이야기를 해보죠. 로봇을 만들려고 회사 내부를 돌아보니 모터와 같은 제어 쪽을 만드는 부서가 있고 주변 상황을 인식하는 데 사용하는 센서 부서가 있는 겁니다. 이제 대표이사가 로봇 만듭시다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주 안 좋은 쪽으로만 적어볼게요. 우선 누구 하나 손을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굴 지명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로봇 사업부"는 없었기 때문에 밖에서 데려오거나 내부에서 선출을 합니다. 이 부서의 인원들은 모터나 센서 부서의 사람들을 차출하거나 아니면 신규로 뽑아야죠. 기존 조직 내에는 이 신규 로봇 사업부를 도와줄 몇 명을 별도의 팀으로 만들거나 혹은 사이드 잡 정도로 업무를 분장합니다. (안 좋은 쪽으로만 본다고 했죠?) 기존 조직에서의 차출은 신임 로봇 담당임원이 못합니다. 모터와 센서 부서의 임원이 선발해서 보내게 되는데 이때 에이스를 보낼 리 만무합니다. 설사 로봇 사업부의 신규 임원이 특정 인원 누구를 찍어서 보내달라고 해도 "걔가 없으면 현 비즈니스가 안됩니다"와 같은 멘트를 하면서 결국 에이스가 아닌 사람을 보냅니다. (신규 임원에 대한 견제가 있을 수도 있죠) 좋은 인력이 배치가 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기존 사업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위에 언급한 대로 원 사업부 내에 사이드 잡으로 일을 할당받은 인원들은 정말 열심히 도와줄까요? 장담하는데 100에 90은 엑스트라 잡이라고 생각하면서 대강대강 처리합니다.
신규 사업부가 만들어진 후 진행 여부를 체크하는 회의가 당연히 열립니다. 로봇 담당 임원의 입장에선 처음 몇 개월은 머 시행착오가 있겠지라고 하면서 어떻게든 끌고 가려고 합니다. 오자마자 문제입니다!! 이러면 잘릴 수도 있고 능력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거든요. 그러다가 어떤 타이밍이 되면 이게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시간은 시간대로 보내고 결국은 그의 입장에선 누굴 탓하고.. 머 그러는 겁니다. 회사 입장에선 저 임원을 탓하기 전에 아까운 시간을 어쩌면 비즈니스의 골든 타임을 잡아먹은 게 됩니다. 게다가 임원들은 다 압니다. 아니 누구라도 알 거예요.. 저렇게 완전히 망가지기 훠얼씬 전부터 신규 비즈니스가 망조로 흘러간다는 것을....
임원들은 연봉이 높습니다. 어떤 회사의 임원은 2-3년의 계약 기간 동안 크게 실수하지 않으면 건물이나 집 한 채(요새는 안 되겠네요...)를 살 수 있는 돈을 법니다. 물론 대기업....ㅎㅎ 그래서 계약 연장이 정말 중요해요. 어설프게 책잡히면 계약 연장이 안되고 직장을 잃는 것도 서럽지만 건물 한 채가 날라가는거든요. 그래서 더 안 좋은 인간류들은 실적을 일단 속입니다. 간단히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미래가치를 폄하해서 일단 개발 계획을 줄이는 것을 들 수 있겠네요. 줄인 만큼 이익률은 올라가니까요. 이 미래가치 폄하 어쩌고가 맞는지는 한참 뒤에야 결판이 납니다. 하지만 그 임원은 연장을 했을 것이고 순환보직이라는 명목하에 다른 보직으로 이동해서 책임에서 벗어납니다. ㅋㅋㅋ 나쁜 넘들... (심지어 이익률을 높여놔서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의 보너스까지 지급받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헌데 저런 상황이 비일비재합니다. 실제로는 임원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임원을 목표로 하면서 먼저 나서서 실적을 만들고 위 사람들의 눈에 띄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임원이 되면 다른 임원들이 이야기를 해주죠. 소위 나대지 말라고... 산 증인들과 이야기들이 넘쳐나는데 나대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러면 의욕은 내팽개치고 새로운 나로 거듭난다는 핑계하에 고생한 나님 어쩌고를 변명이라고 해대면서 암 것도 하지 않게 됩니다. ㅋㅋ 그게 임원의 모습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냥 다시 원오브뎀이 되는 거죠. 목표는 이뤘으니까 된 건가?
또 말이 길어지네요. 여하튼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임원의 수명이 길다는 경직되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임원의 수명이 짧다고 조직의 경직이 풀리지는 않는다고 이렇게 길게 이야기한 거죠. 새로운 임원들 들어와도 조직 문화가 아니 임원이라는 사람들이 만든 문화가 여전히 경직되어 있어서 다 비슷비슷하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
누가 하지 않을까? 보스가 내 일이라고 던져주면 하지모... 까지는 솔직히 전 괜찮다고 봐요. 조직의 장으로서 나의 조직이냐 회사냐를 고민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헌데 나의 조직을 위해 회사의 미래 가치를 망가뜨린다... 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임원이나 조직장쯤 되면 그 정도는 최소한 회사의 방향성이라도 맞춰서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