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

막장..?

by 뽀야아빠

이 바닥(?)에서 일하다 보면 현타가 오는 일이 태반입니다. 저희 회사는 자동차 시장에 카메라용 반도체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반도체는 지금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도 반도체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판매하는 방법론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허나 자동차 시장에 대한 경험은 없었지요. 다른 꼭지들에서도 몇 번 이야기했었지만 어처구니없는 경험이 참 많았습니다.


에세이라고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봤는데 제가 경험한 이야기 중에 황당(?) 계열들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황당이라고 적지만 이 시장, 이 바닥에선 어쩌면 당연한 불편함이었을 수도 있었겠네요. 아마도 2013년이었던 듯합니다. 저희가 이 비즈니스를 시작한 건 2011년도 후반이니까 대략 만 1년이 조금 넘은 시점이었는데 자동차 시장의 유명한 1차 벤더에서 미팅을 요청했습니다. 콘퍼런스 콜 등이 지금처럼 범용으로 사용되진 않던 시절이었고 국내에선 여전히 심리적 저항선이 존재했었죠. 미팅은 F2F(Face to Face)가 당연했고 선호했지만.. 독일이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도 아니라서 어색하지만 천금같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컨콜로 첫 미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품 소개하고 우리가 아는 것들 설명하고 해서 딱 1시간 내에 미팅이 끝났죠. 준비한 것에 비하면 짧았지만 그분들은 1시간을 칼 같이 지키더라고요. 잘 못알아듣는 것들도 있었지만 들은 머 나름 만족하는 듯 했습니다. 원래 말은 준비해서 잘 하면 되지만 알아 듣는 것이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회사 소개는 우리 쪽이 70~80% 이야기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잘 알아듣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요. 여하튼 잘 들었고 검토한 후에 연락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저희는 대리점에게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체크하라고 요청해 두는 수 밖에는 없으니 그리 했고요.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자동차 시장은 정해진(?) 순서와 시간이 어느 정도는 있기 때문에 즉각적 피드백이다! 라고 하는 것이 몇 달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예전과 달라졌지만 그래도 즉각이 그 즉각은 아닐꺼예요. 헌데 1달도 지나지 않아서 업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심지어 F2F 미팅 요청이었습니다.


니들 무슨무슨 주에 방문할 수 있어?


아... 지금도 그 떨림이란.. 맘 같아선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중소기업에서 그 업체 하나만 미팅 가겠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하다면 안될 것도 없겠습니다만 이 업체 하나를 가는 사유, 기대 효과 머 이런 거를 상세하게 적어서 기나긴 설득의 과정이 필요할 수 있으니 가급적이면 일정 내에 많은 업체들을 겸사겸사 가는 안으로 만드는 것이 여러모로 효율적입니다. 이래저래 대리점 분들과 조율해서 업체 미팅을 만들어 냈고 그 업체 포함하여 전체 일정은 2주 정도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다른 업체들은 그냥 의지치 정도를 보여주자!!의 느낌이라(자동차에선 이 의지치가 소규모, 신규 기업에게는 정말 정말 중요합니다) 어차피 그 업체 위주로 자료들을 준비했습니다. 독일 혹은 독일에서 프랑스 등을 다녀오면 일정과 숙소, 이동 거리 등에 대한 계획이 쉽지 않으니 현지 대리점과 상세한(꼭 상세해야 합니다. 어설프게 저쪽이 준비해주겠지라고 했다가 그정도는 그쪽에서 할 줄 알았죠 등의 이야기가 터지면 복잡해져요) 일정을 조율하고 준비했습니다. 혹시 언어상에 문제가 생길까 봐 출발 일주일 전부터 하루 종일 영어로 뉴스 듣고 팝송 듣고 자막 없이 영화 보고 했었네요. 머 제 영어 실력이 그다지이라서 그 정도는 투자해야 맘이라도 편안했거든요.


제 기억에는 아마도 10월 경이었던 듯합니다. 제 페북에 그날을 캡처해두기는 했는데 십 년도 넘어서 찾기가 어려워서 포기했습니다. 여하튼 업체의 위치가 비행기 타고 바로 갈 수 있는 곳도 아니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인지 뮌헨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질 않습니다만 저 두 도시 중 하나고 도착한 도시의 시내에서 2시간 정도는 차로 또 이동을 해야 갈 수 있는 도시였던 듯 합니다. 차로 이동이 많았던 기억이 남아 있거든요.


그날은 비도 조금씩 내리는 아침이었습니다. 쫄랑쫄랑 대리점 분들을 특정 장소에서 만나서 차로 이동을 시작했죠. 거대 기업이기도 하고 처음부터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절대 늦지말자라는 명목하에 다소 일찍 도착해서 적당한 시간이 될 때까지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큰 기업들은 출입 시에 프로세스가 좀 있어서 심할 때는 30분 이상이 걸리기도 하거든요. 대략 약속 시간 40분 정도 남겨두고 들어가자라고 합의를 했는데 갑자기 대리점분에게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먼가 표정이 좋지가 않더니... 전화를 해서 독어로 계속 이야기를 하더군요.


흠... 머야?


업체가 오늘 오지 말라고 했어...


머? 먼 소리야? 나 한국에서 왔잖아..


자기가 감기가 걸려서 연차라고.. 미안하다고...


엥?....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담주 같은 시간에 다시 오래.


비행기만 12시간이 넘고 차 타고 온 시간만 계산해도 15시간이 넘는데... 이 미팅을 이렇게 처리한다고?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대리점 분이 어떻게 하지? 차주에 오라고 하는데 온다고 해야겠지?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다행히(?) 2주 출장이라서 알았다고 하라고 했습니다.


아쉬움과 분노를 삭혀 두고 다른 업체와의 미팅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차주"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캔슬하면 나 안 해 와 같은 개그나 치면서 불안하지만 나름 허세 섞인 쾌활을 보여주며 다시 그 업체 앞에 도착했습니다.마찬가지로 일찍 도착했죠. 하필 그 날도 비가 오더라고요. 이번에는 전화가 왔습니다. 대리점분한테... 그 업체의 담당자가 정말 죄송하다며 아기가 아파서 집에 가야 한다고 하는 겁니다.


아씨..... 진짜 쌍욕이....


그때만 해도 뽜이팅이 있던 시절이라 이건 너무 한 거 아니냐, 우리 하지 맙시다, 관심이 없는 거예요라고 대리점분에게 이야기했지요...


그대로 전해?


아씨...


흠.... 솔직히 과장 나부랭이가 씨게 갈 수가 없었어요. 다시 화를 누르고 사정은 이해하겠다... 하지만 우리도 한국에서 12시간을 날아서 여기까지 2번이나 왔으니 컨콜이라도 1시간 이상을 보장해달라, 돌아가서 보고는 해야 하니 금주 중에 해달라 라고 대리점 분에게 말씀을 요청 했죠.


여기까지와서 컨콜이라니. 가뜩이나 컨콜을 싫어하고 잘 하지도 못하는데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알아들을 자신은 없었지만 머라도 해야 했으니 그거라도 요청한거죠. 그걸 오케이는 하더라고요. 하지만 돌아가는 날... 아침에 하는 것으로 해서 보고서는 영락없이 비행기에서 써야 했고 이런 사정이 있다는 것을 회사 임원들이 알면 좋을 것이 없다라고 생각해서 그분에게 하나만 답변 해달라고 했습니다. 왜 우리를 불렀고 무엇이 필요했냐... 메일로 답을 받아두고 그걸 바탕으로 1차보고서를 써냈습니다. 상세한 부분은 돌아가서 다시 보고서를 보완하겠다라고 회사에는 이야기해두었구요.


컨콜은 다행히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였고 그걸 계기로 해서 그들의 미안함까지 합쳐서 푸쉬한 덕택에(푸쉬가 아니라 팔럽이었겠지만)개발까지는 들어갈 수 있었어요. 시간이 흘러 그분이 그 회사의 연구소장이 되고 그 회사가 다른 회사로 M&A 되기 전까지 나름 이 사건을 술자리에서 이야기하는 사이까지 되기는 했었습니다. 상 미안해하시면서 술을 사주시기는 했다는 아니고 조금 심했지만 원래 이 바닥이 이렇다라고 이런 거 잘 견뎌야해라고 농반진반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정말 빙구같은 사건들이 많았는데 다 그러려느니 하는 성격이 되어 버렸습니다. ㅎㅎ


에휴... 그래도 그때는 정말 짜증이... 이런 갑질 안당할려고 해외 영업을 지원해서 일을 시작했는데 세상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갑질이 넘쳐납니다. 제가 그리 많은 업체와 일해보고 별의별 나라들을 다 가보고 했는데 특별히 어디가 심하다는 없었어요. 그냥 내가 을이면 그건 계속 을입니다.. ㅎㅎ


글을 적다보니 당시 그분들(?) 지금은 잘 사나 모르겠네요. 링크드인이나 한 번 뒤져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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