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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호와 상징 Jun 29. 2024

잠 못드는 밤에...

 언젠가 누군가와 잠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전 불면증이에요."

 "몇시에 자서 몇시에 주무시는데요?"

 "새벽 5시에 자서 오후 12시에 일어나요."

 "..."

 상대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했다.

 "잘 잔거 아니에요?"

 "네?"

 그제서야 나는 불면증이 아예 잠을 못 자는 사람을 칭한다는걸 알게됐다. 늦게 자는게 아니라.


 나는 늦게 자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은 일찍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미 늦게 자는게 습관이 되어버려서 밤만 되면 정신이 말똥해져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패턴을 바꾸려 부단히 노력해봤고 이틀 밤을 새운적도 있었지만 실패했다.


 어떻게든 일찍 잠에 들기위해 하루종일 강도높은 운동을 하기도 하고, 잠에 좋다는 멜라토닌 생성을 위해 땡뼡에 광합성이 될만큼 노출되기도. 저녁 8시부터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멀리 해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실패했다. 오히려 잠을 자려고 노력하는 행위자체가 날 더 괴롭게 만든다는걸 알게 된 후부터는 지금처럼 일기를 쓰거나 해야할 일을 하게됐다.


 처음 잠이 안올 땐 유튜브를 봤었다. 실화탐사대, 궁금한이야기Y 같은 사건사고를 전달하는 방송이나 또는 유머나 게임 방송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도 몇년 보다보니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방송이 재미가 없어진게 아니라 같은 것이 반복되다 보니 내 도파민이 질려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 다음엔 게임을 했다. 재미있는 게임을 발견하면 몇날 몇일을 그것만 붙잡고 폐인이 되기도 할 정도였지만... 그것도 얼마 못가 유튜브와 똑같은 수순으로 질려버렸다.


 마땅히 할게 없어지다보니... 잠 잘자는법을 치면 단골 레퍼토리처럼 나오는 명상을 해보기 시작했다. 거의 전세계에 현존하는 명상 어플과 유튜브는 다 들어봤지만 어이없게도 내 마음에 쏙 드는 목소리를 찾지 못했다. 절대음감도 아니면서(엄밀히 그것과는 상관없지만) 쓸데없이 까다로운 주제에 나의 잠을 책임져줄 나레이터를 결국 찾지 못했고...(사실 명상의 목적은 잠이 아니지만) 마지막 종착지로 설기문 선생님의 전생 체험 유튜브를 듣다가 꿈에서 조선시대 노비로 일하는 꿈을 꾸고나선 그것도 그만두었다.


 그래서 나는 잠을 자기 위해 시간을 떼우거나 노력하는 행위를 모두 그만두었다. 그래서 할게 없어졌고 그나마 글을 쓰는게 덜 심심해서 지금처럼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당장 내일 아침에 일정이 있어서 밤을 새면 안되지만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해 당장 걱정하느니 잠이 올때까지 다른걸 하는게 훨씬 마음은 편하다. 물론 내일의 나는 고생을 좀 할 것이다.


 이런걸 관록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잠과 더불어서 인생의 모든 것들도 억지로 통제하지 않게됐다. 문득 인생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나 될까 어쩌면 통제할 수 있는게 많다고 생각하는것 자체가 큰 착각이 아닐까... 


 잠도... 떠나간 남자친구의 마음도... 내 감정도... 무엇하나 내뜻대로 되는것이 없는데 노력하는게 즐겁다면 상관없지만 그게 아니라 희망고문을 하며 고통받고 있는 중이라면 통제할 수 없다는걸 인정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게 더 마음은 편한 것 같다는 생각. 그런다고 달아난 잠이... 돌아오진 않겠지만 다...


 쓰다보니 조릴ㄴ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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