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도 콘『숲은 생각한다』, 산지브 산얄『인도양에서 본 세계사』
6월이 끝날 무렵부터 오늘까지 한 달간 4권의 책을 읽었다. 주로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읽었고, 한 주에 한 권을 읽기도 하고 어떨 때는 2권을 동시에 병행하며 읽기도 했다. 한 권은 가볍지 않은 학문을 다루기도 했다. 이 책으로 심지어 오프라인 독서 모임도 다녀왔다.
오늘 내 상태로 봐서는 근래 이 정도로 집중해서 무언가 할 의지가 있었나 싶은데, 근래 다사다난 했던 내 개인사에서 도피성으로 무언가에 집중하려 했을지도.
그래도 좋은 책을 많이 읽었고, 이중에서 인상 깊었던 에두아르도 콘『숲은 생각한다』, 산지브 산얄『인도양에서 본 세계사』. 이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읽은 책 목록
에두아르도 콘『숲은 생각한다』
산지브 산얄『인도양에서 본 세계사』
김재은『한 달쯤, 라다크』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오래된 미래』
홀로 하는 독서 이상의 무언가를 찾다가 우연히 모임 앱에서 위 책을 소재로 한 독서모임이 있어 선택했다. 가벼운 마음에 선택한 모임이었지만 매우 난이도가 높은 탈인류학적인 서적이었고, 이 모임에 참석한 인원들도 그 깊이에 꽤 심취한 사람들이었다. 나 포함 4명의 사람들이 남산 근처 어느 넓은 카페에서 3시간 반동안 쉬지않고 책의 1장부터 6장까지 돌파해냈다.
모임과 뒤풀이까지 끝내고 다음날이 되어 식탁 앞에 앉았을 때에야, 내가 무얼 하다온거지 싶을 정도로 머엉한 기분이었다.
책은 심오하다. 아마존으로 떠난 인류학자가 아마존의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바라보며, 현대 문명이 정의한 기존의 '인류학'을 뒤튼다. 그리고 탈인류학으로 인류학을 재정의한다.
이렇게 뭔가 있어보이게 짧게 적었지만 지금도 이 책에 대해 설명하라면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독서 모임 준비를 위해 메모한 것들로 내 감상을 대체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내가 제대로 맥락을 이해한 것인지는 지금 봐도 확신이 없다.
3장, 혼맹 (soul blindness).
page 208 사람들은 때로 동물이 지닌 자기성의 일부를 획득하고자 동물을 고기가 아닌 자기로서 소비하기도 한다. 남자들은 푸마가 되기 위해 재규어의 담즙을 마시며, 그들의 사냥개들에게는 아구티의 흉골과 그 외 혼이 함유된 신체 부위를 먹인다.
메모. 혼맹이란, 바라보는 대상에 대해 표면적인 상태에만 시야가 머무르는 사고 방식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됨. 저자는 혼맹 상태를 벗어나는 방법으로 관계성을 설명함. 왜냐하면 자연 속 원리와 같은 죽임을 행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관계를 통해서 그 존재들이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page 208 이렇듯 재규어는 자신의 예전 먹잇감의 먹잇감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본질적으로 ‘나’는 ‘그것’ -아이차 혹은 먹잇감-과 가지는 관계에 의해서만 ‘나’다. 이 관계가 바뀔 때, 즉 육지거북이가 푸마가 될 때, 재규어는 더 이상 포식자가 아니다. 재규어가 항상 재규어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거북이가 진짜 재규어가 된다. 누가 어떤 부류의 존재가 되는가는 그것이 다른 부류의 존재들을 어떻게 보며 또 다른 존재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산물이다.
이빨은 포식자라는 위상을 나타내는 핵심적인 표지이다. 일라리오는 아빌라 사람들이 몇 년 전에 간신히 죽였던 거대한 재규어에 관해 말해주었다. 그 재규어의 송곳니는 작은 바나나 정도의 크기였고, 일라리오에 따르면, 마을 여자들이 그 이빨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까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메모. 내가 아닌 무언가의 존재로 특성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그의 죽음이 필요한 것일까. 혼맹이라는 건 그런 사고의 일종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그걸 극복하는 방법으로 ‘관계’를 강조한다. 서로 얽히고 부딪히고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에서, 그 존재의 진짜 의미가 드러난다.
숲의 생명체들도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어떤 신호를 주고받고, 해석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들이라 생각된다.
내가 선택한 공통 질문
- 혼맹을 벗어나기 위한 저자의 관점을 이해했다면, 여러분은 나와 우리 주변의 생사를 저자 관점으로 온전하게 받아들일 자신이 있나요?
올해까지 읽은 가장 인상적인 책이다.
저자, 산지브 산얄은 옥스포드 출신의 금융경제학자다. 동시에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현대 도시계획을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다. 저자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부터 현대 시간으로 오기까지 인도양의 흐름에서 어떤 관계들이 발생하는지를 설명한다.
이 책을『숲은 생각한다』와 같이 읽었는데, '존재함이란 관계성에서 나온다'란 일부 겹치는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역사의 흐름을 현대 문명의 주류로만 배우고 알아왔다면, 저자는 그 이면에 집중한다. 인류 초기의 문명과 종교가 아프리카에서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도와 남아시아, 그리고 일부 중국까지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 과정이라거나, 부를 추구하는 열망이 인도양에서 어떻게 오고가는지, 그리고 현대에 존재하는 여러 도시, 기업, 대학이 어떻게 인도양을 통해서 현대에 다다랐는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좋았던 부분은 아래 메모처럼 저자는 설명에 그치지 않는다. 역사에 남은 어떤 사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어떤 의도를 담아 기록되었을지, 혹은 왜곡이 있지 않았을지까지 알아보고 그 맥락을 설명한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은 인물들, 그런 이들이 겪은 시대적 사건과 의도치 않은 전개들. 역사이면서 동시에 우연의 연속성을 추구하는 장편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이 책은 술술 읽느라 메모한게 딱히 없다. 그래서 한번 더 읽어 볼지도.
고대 페니키아인은 희망봉을 돌아 아프리카 대륙을 순환 일주한 셈이다. 당시는 바스쿠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항해하기 2000년 전이었다! 그러나 헤로도토스는 세부 사항의 소소한 모순 때문에 이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고 단정했다. 페니키아인이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을 지날 때 태양이 배의 오른쪽(그러니까 북쪽)에 있었다고 했는데, 이는 헤로도토스가 보기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남회귀선 이남에서는 태양이 북쪽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헤로도토스의 판단과 반대로 페니키아인의 말이 진실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