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결정하고 있다는 감각

드라마 플루리부스로 본 ‘결정의 부재’

by 지지

의사결정의 핵심

기획자로 일하며 나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우리가 해야 할 일 그리고 방향 따위(동시에 하지 않을 일들도)'를 결정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정보를 모으고, 이해관계자와 상황 맥락을 파악하고, 최종적으로 내가 기한 내에 어떤 선택을 하겠다는 의사결정을 한다.


판단이 어려운 순간들이 종종있다. 정보를 모아야 하는 과정도 있고, 이해관계자를 인터뷰하다보면 다시 상황을 돌아봐야하는 순간도 있다. 일 자체가 많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결정을 해야한다.


중요한건 의사결정자가 결정을 할 때, 여러 요인들을 고려하였고 최종적으로 자신의 의사로 결정한다는 감각이다. 현업에서 일의 중요성을 떠나서 이 감각이 무뎌지면 대체로 원동력을 상실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변화하는 판단의 주체

최근 몇년 사이에 AI는 자동화나 분업 업무의 수준을 넘어섰고, 명령어를 작성하는 이의 판단과 창작의 영역까지 빠르게 들어와있다. 고부부가치 산업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여기에는 기술이 사람보다 더 빠르고, 더 일관되고, 더 효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믿음이 깔려 있다고 생각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판단하던 영역은 구조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전 세계의 자본과 에너지는 더 효율적이고 더 생산적인 AI 모델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다. 나는 자본의 흐름이 기술의 발달에 집중되는 현상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과연 변화 속에서 '우리가 결정하고자 하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을것인가'이다.


좀 더 상상력을 키워 이 주제를 생각해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작년 말, 애플티비에서 공개된 플루리부스(Pluribus)에서 주인공 캐롤은 자신 이외에 변해버린 사람들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를 화이트보드에 적어 나간다. 하나 하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장을 적는 캐롤은 무척 진지하지만, 제 3자인 시청자 입장에서는 실소가 나오는 에피소드다.


“환심 사려고 안달남.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임. 편애 안 함. 병신도 똑같이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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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그리 복잡한 존재가 아니다. 다만, 드라마속 캐롤처럼 우리가 효율성이란 그들의 목적성(기준)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그들은 설명할 수 없는 괴상한 존재가 된다. 이 드라마가 앞으로 어떤 주제를 다루고자 하는지 단정할 수 없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의지와 자율성이 빠진 판단이 누적될 때 세계가 얼마나 낯설어질 수 있는지를 엿보게 된다.



팬데믹의 교훈

효율성은 강력하다. 하지만 효율성이란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불안정하다. 우리는 효율성이 얼마나 취약한 기준인지 이미 한 차례 경험한 바 있다. 2019년의 팬데믹이다. 세계의 자본이 집약 생산과 단일종 공급이라는 ‘가장 효율적인 구조’ 위에 놓여 있었고, 팬데믹이 오자 그 구조는 순식간에 멈춰 섰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을 이룬 우리가 위기속에서 가장 먼저 찾은 대안은 각자가 마스크를 구입하고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을 알려주는 일 정도였다.


의사결정에는 언제나 여러 맥락이 함께 작동한다. 속도와 비용, 확률뿐 아니라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와 실패 이후를 회복할 수 있는 여지까지 포함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판단을 내리는 이의 책임 바탕으로 한 의지가 존재한다. 그 모든 맥락을 지운 채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선택할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결정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미 정해진 결과를 받아들이는 쪽을 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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