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선생님께서 내주시던 일기 쓰기 숙제가 나는 참 좋았다.
나는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아이였기에.
숙제 검사를 하든 하지 않든 나는 내가 보낸 그 하루의 시간을 글로 남기는 걸 좋아했다. 밤에 잠들기 전에 일기장을 펴놓고 뭘적을까? 고민하는 것이 참 좋았다.
내가 정하고 내가 쓰면 되는 일기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중의 하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선지 나의 일기장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가끔은 사십여 년 전의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싶어 옛날 일기장을 뒤져보기도 하는데 역시 읽을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 글을 쓰던 때는 겨우 10살이었지만 마치 다 큰 어른인 척 써놓은 일기장은 내 얼굴을 간지럽히기에 차고도 넘친다.
나는 커서도 가끔 일기를 쓰곤 했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좀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길을 잃은 듯 사방이 두려울 때에도 글로 써보면 좀 담담해지고 무서움이 줄어드는 거 같았다.
인생이 만만하지 않았던 젊은 시절에 낙서하듯 써놓은 글들을 볼 때마다 그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어가던 성장과정이 일기로 남아있는 건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숨겨진 보물을 가진 것 같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 일기장을 통해 내 삶을 바라봤던 어린 나를 보노라면 정말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한마디 해주고 싶을 지경이다.
우리는 누구나 사람의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가 어느 짧은 순간이 아님을 안다.
그건 기나긴 인생을 한 발 한 발 걸어오면서 모든 경험이 내 몸과 마음에 켜켜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록 오늘 내가 쓰는 이 글이 내 인생의 길을 말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내가 걸어가는 길을 글로 남김으로 먼 훗날의 나는 다시 낯간지러운 타임머신을 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나는 내 머릿속의 아이를 꺼내고 싶어 한다.
여전히 성숙하지 못하고 철없던 10대의 나를
여전히 이기적이고 나밖에 못 보던 20대의 나를 꺼내서 좀 더 자유롭게 세상밖으로 내보내고 싶다.
어쩌면 그 열망이 내가 오늘도 그 길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