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대 앞에서 민망함은 나의 몫
예전에 만나던 남자친구가 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검사와 기자, 공무원 셋이 술을 마시면 누가 술값을 낼 것 같아?”
기자인 나는 잠시 생각하다 “음… 기자?”라고 답했다. 나는 누구에게 신제 지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편이라 밥값이나 술값을 곧잘 내는 편이다. 하지만 그는 틀린 답이라는 듯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셋 다 안 내! 그들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나처럼 사업하는 사람이 전화로 불려 나와서 계산하지!”
나는 멋쩍게 웃으며 “하하. 그렇구나”라고 말했지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아예 없는 일도 아닌 것 같아 뭐라 반박도 못했다.
물론 모든 검사와 기자, 공무원이 술값이나 밥값을 안 내고 물주 같은 사람을 불러내진 않을 것이다. 다만 기자 직업을 가진 나로서는 술값 에피소드가 어느 정도 인정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내가 검사나 공무원은 아니니 논외로 치고, 기자들이 업무상 기업의 관계자를 만나면 계산을 잘 하지 않는다. 기업의 홍보 담당자나 임원은 대부분 법인카드를 가지고 있고, 그들이 법인카드로 결제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보통 법인카드를 가지고 있는 비즈니스맨들이 계산하는 경우가 많긴 하다). 제품 홍보나 기업의 평판 관리가 필요한 기업과 그 키를 쥐고 있는 미디어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다.
문제는 업무상 만남이 아닌 데도 상대가 계산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위와 같이 소위 말해 ‘갑질’을 하는 경우다. 부끄럽게도 옛날부터 기자 갑질은 종종 도마 위에 올랐는데, 2016년부터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인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접대문화도 많이 변해 이제는 갑질하는 기자들이 별로 없다. 그러나 어딜 가나 예외의 사람은 있는 법. 기자의 지위와 명예가 높았던 1990~2000년대, 심지어는 1980년대 정서에 아직 머물러 있는 기자들이 있고, 이런 경우 보통 기자 우월의식이 있다. 그들은 “기자가 돈을 왜 내!”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거나 어디 가서든 ‘기자는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상대가 갖고 있는 생각이 나와 다르고, 심지어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어찌할 도리나 방법은 없다. 이미 오래 굳어진 생각과 습성이라면 더 그렇다. 여기에 상대가 회사 상사라면 속으로는 ‘그건 아닌 것 같다’ 부정하고 욕을 할지 언정 겉으로는 입을 꾹 다물게 된다.
몇 년 전 ‘꼰대 상사’ 국장과 업무상 골프장 관련 협회 사람을 만날 때 일이다. 어느 날 국장은 국내 골프장 현황이 궁금한지 나에게 골프장 관련 협회 회장과의 점심 미팅을 주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밥은 ‘우리가 산다’고 전하라는 말과 함께. 국장은 법인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회장은 지방에 있어 협회 사무실에 상근하는 부회장을 대신 만나는 것으로 약속을 잡았다. 부회장은 나도 만나 뵌 적 없는 분으로 모 골프장 대표로부터 소개받아 연결된 것이었다. 그리고 약속을 잡을 때 국장의 전언, ‘밥은 우리가 살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약속 장소는 잠실의 한 일식집이었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별도의 다다미 룸이었다. 나와 국장이 룸으로 들어서자 먼저 도착해 앉아 있던 부회장이 어정쩡하게 일어나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음식을 시켜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밥은 우리가 사기로 했으니 나는 적극적으로 메뉴판을 펼쳐 부회장께 먼저 내밀며 “어떤 걸 드시겠어요?”라고 물었다. 런치 코스는 총 3개였는데, 나는 은근히 속으로 부회장이 가장 저렴하고 양이 부담스럽지 않은 38,000원짜리 정식을 고르기를 바랬다. 나의 바램대로 그는 38,000원 짜리 정식을 골랐고, 첫 번째로 나온 매생이 전복죽을 먹으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1시간 조금 넘게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에 또 뵙자’는 뻔한 마무리 인사를 나누고 일어나야 할 때였다. 보통 계산을 하기로 한 사람은 빠르게 일어나 계산대 앞으로 앞장서 걷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와 부회장이 일어났음에도, 국장은 테이블에서 마땅히 챙길 물건도 없었는데 주춤대며 아주 느리게 일어났다. 그리고 나와 부회장이 다다미 룸을 나와 신발을 신고 앞에 서 있는데, 뒤늦게 나온 국장은 신발 역시 아주 느리게 신기 시작했다.
5초… 10초… 나는 점점 ‘대략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아… 어째야 하는 거지? 분명 우리가 계산하기로 했는데…’
그리고 애가 타서 국장을 향해 속으로 따지듯 말하고 있었다.
‘국장님… 끈도 없는 구두인데… 신발 신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리시나요?....;;’
당황스럽고 민망한 순간은 왜 그렇게 시간이 더 느리게 흘러가는지…
그 짧은 순간이 슬로모션까지 걸린 듯 더욱 느리게 흘러갔다.
급기야 난감함이 민망함과 부끄러움으로 바뀌어 가고 ‘나라도 계산을 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들 즈음 부회장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계산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부회장이 계산을 하고 있을 때 국장이 비로소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마치 병에 걸려 못 걷던 사람이 교주의 손길로 기적처럼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는 사이비 종교의 이야기처럼… 나는 국장의 뒤를 속절없이 따라 갔고, 어색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를 황급히 건네고 서둘러 헤어졌다.
그 날 이후 우리는 다시 만난 적 없다. 나는 부회장께 연락 한 번 못 했고, 어디에서도 우연히 마주친 적 없다. 다행이다 싶다.
그 날 국장이 왜 계산을 안 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기자인 내가 왜 계산을 해!’라는 마인드였던 건지, 부회장과의 미팅에서 별다른 소득이 없어 계산하는 게 아까웠던 건지… 이유가 어찌됐든 확실한 건 국장이 나에게 ‘우리가 산다’라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산다던 사람이 눈에 보이게 발을 빼는 건 예의가 아닐 뿐더러 상대에게 불쾌감까지 줄 수 있다.
직업적인 성향을 떠나 계산대를 유독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치페이가 익숙한 MZ세대는 스스럼없이 N분의 1을 얘기하지만, 더치페이를 한편으로 ‘정 없다’고 생각하는 나이 든 사람끼리 만나면 누군가 한 명이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꼭 계산을 자주 하는 사람이 있고, 열 번에 한 번도 안 하는 사람도 있다. 친한 사이라면 보통은 경제사정이 나은 사람이 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계속 한 사람이 계산을 하다 보면 친했던 사이에도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너는 왜 한 번도 안 사냐?”라고 대놓고 얘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냥 조용히 멀어질 뿐…
아직 친하지 않은 사람들끼리 만났을 때는 계산을 앞두고 눈치게임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럴 때 어색한 분위기와 민망함이 싫어서 카드를 먼저 꺼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계산하는 걸 당연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심지어 그 베풂을 고마워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그 관계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일찌감치 손절각이다.
밥값이든 술값이든 ‘내가 산다’는 건 마음의 표현이다. 비즈니스 관계라면 ‘잘 부탁한다’는 암묵적인 메시지이고, 친분 관계라면 ‘우리 앞으로도 잘 지내자’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면 응답의 메시지를 보낼 줄 아는 사람만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건 당연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