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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태형 Jun 18. 2017

음식물 찌꺼기를 줄이는 방법은,맛있게 만드는 것이다.

우사단의 레스토랑 [ㅅㅅ 음식 작업소]에 가다

인터뷰를 2시에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레스토랑은 끼니를 해결하는 곳이니까, 점심시간이 지나 인터뷰를 하면 조금 여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은 시원하게 빗나갔다. 테이블은 가득 차 있었고,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할 때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ㅅㅅ의 평일 늦은 점심시간>

인적이 드문 동네. 평일 늦은 낮인데도 불구하고 손님들은 가게를 찾아왔고, 가게 주인과 친숙하게 이야기하는 손님의 얼굴을 보았다.

믿음일까? 묘한 기분이 매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ㅅㅅ 깻잎을 고명으로 얹은 볶음밥>

주인은 이야기 대신 음식을 권했다. 무슨 음식이냐는 물음에 고급 레스토랑에서 들을 법 한 브리핑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볶음밥인데, 중식으로 볶아서 한식 스타일을 곁들인 볶음밥입니다. 가능한 기름기 적게 조리하여 느끼하지 않게 만들었고, 또 깻잎을 고명으로 올려서 느끼함을 한번 더 잡았습니다. 샐러드처럼 같이 섞어서 드시면 됩니다."

글쟁이의 곤조다. 형용사를 쓰면 진정성이 떨어진다 생각하는 터, 이 음식은 분명 맛있었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지금 느낌이 동네 식당이 아니다. 정체가 뭔가"
<ㅅㅅ 주인장>

ㅅㅅ : 이름은 김원기. 서른셋, 요리사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요리를 했었고, 현재 ㅅㅅ음식 작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자신의 식당에 대해서 이야기해 달라"

ㅅㅅ : 처음에 이 공간은 나의 음식 작업소였다. 나만의 음식 공방을 사람들에게도 살짝 오픈한다는 컨셉으로 시작했다.

메뉴가 있긴 한데, 사실 기본 메뉴는 거의 나가지 않는다. 우리 가게는 "커스텀"이라는 특이한 메뉴가 있다.

세상에 참 맛있는 음식이 많지 않나. 이 가게에서 이 음식도 먹고 싶고, 저 가게에서 저 음식도 먹고 싶어 한다.

우리 가게에서는 미리 예약만 하면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드린다. 합리적인 가격에

우사 : 퀄리티 대비 가격이 참 저렴하다. 남는 게 있나.

ㅅㅅ : 대관이 많다. 밤새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 드시면서 와인을 드신다. 매출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 집 장사 잘된다.


우사 : 손님이 많은 것 같은데 왜 테이블이 세 개 밖에 없나

ㅅㅅ : 원래는 하나였다. 처음엔 새로운 업장이 어색했는데, 하다 보니 점점 익숙해지고 실력도 더 늘더라. 실력이 늘지 않았으면 아직도 테이블은 하나였을 것이다.

나에게 한 번에 몇 손님을 받는 것. 회전율보다 중요한 것이 이 장소에서 손님이 '완벽한 만족'을 느끼고 가는 것이었다.

자연스레 입소문이 나더라. 우리 가게에 만족한 손님이 친구를 데리고 오고, 그 친구가 친구를 또 데리고 오면서 감사하게도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성공까지는.. 아닌 것 같고.


우사 : 잠은 자나?

ㅅㅅ : 못 잘 때가 더 많다.



"어떻게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나"

ㅅㅅ : 평범한 인문계 학생이었다. 게임 좋아하고, 공부 싫어하고.

진로를 선택해야 할 때가 되어서 많은 다른 친구들을 보게 되었다.

내가 이 친구들 발판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내가 쟤네 때문에 사는 건 아닌데." 차별점을 둬야겠다 생각했다. 공부는 아니다.

생각했다. 고등학교 땐 괜히 공부한답시고 친구들끼리 모여있고 그러지 않나. 공부도 안 하면서. 돌아가면서 라면을 끓였는데 내가 끓인 라면이 제일 맛있더라. 7개를 끓여도, 8개를 끓여도 친구들의 평은 "간이 정확하다"였다. 그때 알았다. 난 음식에 소질이 있구나. 그렇게 요리를 시작했다.

처음엔 막연한 판타지로 시작했다. 양식 이런 거 하면 멋있어 보이지 않나. 그땐 셰프라는 개념도 없었고 호텔 주방장이면 다 되는 줄 알았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 말고 해야 할 공부가 정말 많더라.

시작은 했는데 되돌아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했다.



"하얏트를 그만두고 창업을?"
<ㅅㅅ의 디저트>

ㅅㅅ : 하얏트에 입사할 당시 어떻게 보면 상황에 자신을 맞췄다. 뒤도 안 돌아보고 앞만 보고 달렸다. 어찌 보면 달리는 게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요리사는 유동성이 참 많은 직업인데, 하얏트는 요리사에게 안정된 복지를 제공하는 국내 최고의 회사가 틀림없다. 많은 사람이 그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참 오랫동안 노력을 한다. 나 또한 그랬다.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는 정직원이 되기 위해서 또 노력을 했다. 이렇게 버티고, 참고, 버티고, 또 참다 보면 언젠가 내로라하는 호텔의 총주방장이 되어 있을 것 같았다.

<ㅅㅅ의 브런치 메뉴>

막내로 10년을 있었다. 그리고 철저하게 깨달았다. 난 한국사회의 특 1급 호텔이 정해 놓은 시스템에서 총주방장이 될 수 없다.

주방은 참 합리적인 공간이다. 몸을 부딪히고 일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요리는 해야 하고 주문은 밀려있다. 질서 정연하게 합리적으로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바로 난리가 나는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에서 고급스러운 음식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렇다 보니 한국사회 요리사들은 합리적인 공간에 불합리부터 가르친다. 위계질서. 나이. 소위 말하는 짬. 선배로서의 권위.

이러한 것 들만 들으며 10년이 지났다. 노력 말고도 정말 많은 것이 필요하더라. 내 미래는 어느 정도의 직급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돈을 잘 버는 직업도 아니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방향성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뒀다.

나와서 다른 회사에 갈 수도 있었다. 요리를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규정 해 놓은 흐름대로 가면 여느 호텔의 계장급은 갈 수 있을 것 같더라.

그런데 그렇게 가서도 또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잘 하는 것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강제 진급시켰다. 막내에서, 대표로.



"ㅅㅅ? 진짜 이게 이름인가?"

우사 : 잘 하는가?

ㅅㅅ : 뭘 말인가?

우사 : ...


ㅅㅅ : 중의적인 의미를 줬다. 섹스도 그렇고, 식사도 그렇고. 다 만족을 위한 키워드 아닌가.

오픈할 때 너무 힘들었다. 서너 달 동안 하루에 두 시간도 못 잤기 때문에 정신이 없어 가게 이름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냥 스트레스받지 않기로 했다. 아무거나 가져다 짓자 생각했는데, 이 이름이 되었다.

사실 별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떻게 장사를 하고 고객을 어떻게 응대하는가의 문제이지 이름은 의미부여 하기 나름이라 생각한다.

<ㅅㅅ의 주인장이 초콜렛으로 데코레이션을 하고 있다>

대신 음식만큼은 진짜다. 테이블 하나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을 끝까지 만족시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만족이 되지 않았으면 내 음식을 친구에게, 지인에게 소개했을까?

누군가는 이런 말도 해줬다. "ㅅㅅ의 모든 것은 픽션인데, 음식만큼은 진짜다"



"자신의 요리에 대해서 말해달라"
<ㅅㅅ의 주인장이 야채를 볶고 있다>

ㅅㅅ : 같은 간이라도 짜게 먹는 사람에게는 싱겁고, 싱겁게 먹는 사람에게는 짜다.

그래서 요리는 먹는 사람의 입맛에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커스텀 메뉴를 개발한 것도 그 이유이다.


많은 유명한 요리사들이 "이건 이렇게 했으니까 맛있다."라고 말씀하신다. 난 반문을 하고 싶은 게, 그럼 엄마 음식은 맛이 없는 음식인가.

어머니가 계란 하나만 해서 간단하게 밥만 비벼주셔도 참 맛있지 않은가.

계란을 뭐 어떻게 퍼펙트하게 크리스피 하게 익히고 그런 거 안 해도 충분히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어머니의 음식은.

<ㅅㅅ의 퍼펙트한 계란후라이>

다들 음식을 먹고 산다. 기술이 발전하고 인간의 삶이 굉장히 많이 나아졌기 때문에 음식의 맛은 인생의 추가적인 사치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한다.

자기가 자기 사치를 부리는 건데. 거기에 자만심, 자부심, 배운 대로, 이렇게 하면 더 맛있다, 왜 그걸 네가 맞추지 못하냐는 둥 오만을 떠는 순간.

음식의 맛은 떨어진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이 있는 것이고, 그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이 있는 것이다.

<ㅅㅅ의 파스타>

한 번은 회사의 레시피 그대로 다른 곳에서 요리를 내놓은 적이 있다. 맛이 없다고 하더라.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얏트에서는 손님들이 맛있다고 한다.

좋은 곳. 비싼 음식. 이 압도되는 분위기에 "이 음식은 원래 맛이 이럴 거야"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입맛을 음식에 맞추더라.

회사에 가린다는 뜻이다. 조리사가 잘 하나, 못하나,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자신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는데 회사 이름 걸고 장사를 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는 것이다.

<ㅅㅅ의 피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실력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왔다.

내 가게가 생기니 요리사들의 기본적인 매너리즘 같은 것. 다 무시하고 오로지 '만족'만을 위한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되더라.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실력이 느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좋다.


우리 가게 음식의 모토는 음식물 찌꺼기가 남지 않는 가게.

맛있어서 음식을 남기지 않는 가게다.



"난 사실 오늘 폐업한다고 듣고 왔다"


ㅅㅅ : 폐업하는 것 맞다.

우사 : 장사가 잘되는데 왜 폐업을 하나

ㅅㅅ : 반대다. 잘돼서 떠난다.

우사 : 어디로 가나

ㅅㅅ : 명동성당 1층

<ㅅㅅ는 명동성당 1층으로 자리를 옮긴다>

신권이지 않나. 인맥으로 되는 곳도 아니다. 2년 전에 자리를 보고 군침만 흘리다 왔는데, 이제 나에게도 기회가 오나보다. 조금 무섭다.

처음엔 거절당했었는데, 신부님이 가게 블로그를 꾸준히 보셨나 보다. 성장하는 모습, 성실하고 꾸준한 모습을 보고 허락 해 주신 것 같다.

분명 지금과는 다를 거다. 성당이고, 신도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유동인구도 훨씬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미리 컨셉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ㅅ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였는데, 이번에 부르셨을 때 사이즈나 자재, 인테리어 이야기를 하며 이해를 하는 스스로를 보고 신기했다.

<ㅅㅅ의 파스타>

우사 : 이름은 그대로 들어가나?

ㅅㅅ : 못 들어갈 줄 알았다.

우사 : 세상에..


ㅅㅅ : 자리가 구석에 있다. 그래서 '올드 스톤 테이블 구석'이라고 이름을 지으려 했는데, 'ㅅㅅ'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다.라고 말씀하셔서.

그 날부터 열심히 아멘스타그램을 올리고 있다.



"잘돼서 떠나는 우사단은 어떤 곳인가"
<ㅅㅅ의 창으로 본 풍경. 하얏트 호텔만 가려져 있다>

ㅅㅅ : 처음엔 '우사단'이라고 하여 소가 사고 친 곳인 줄 알았다. 아, 내가 소띠니까. 가서 사고 좀 치고 와야겠다 하고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었더라.

회사 7년 다니면서 이 곳이 이런 곳인 줄 몰랐다. 이슬람 사원이 있는 줄도 몰랐다. 지대가 높아서 뷰 하나는 끝내주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자리가 좋은 게, 전 회사가 가려서 안 보이는 게 좋다.

우사단은 사람 사는 동네다. 진정으로 차별이 없는 곳이다. 성별, 종교, 인종 등등.. 한국에서 이만큼 정체성이 다양한 동네가 있나.

그래서 나에게 우사단은 '리퍼블릭 오브 우사단'. 독립국가이다.



매거진을 발행하는 지금. 우사단에 ㅅㅅ은 없다.

명동에 가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걱정되지 않는다. 그가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 음식에 대한 진정성은 별 다른 코멘트를 무색하게 한다.

인터뷰 내내 요리왕 비룡을 보는 느낌이었다. 자꾸 "미미"라고 외쳐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인터뷰였다.


명동성당 1층 'ㅅㅅ음식 작업소'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kyman8014/



현재 월간우사는 우사단의 상인들과 방문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페이스북 그룹을 운영 중입니다.

우사단길에 매력을 느끼시나요? 그럼 우리 조금 더 친해져 봐요 ^^

우사단길 페이스북 그룸 ->  https://www.facebook.com/groups/268405976960603/


글 - 오세민, 이다솜, 윤태영, 전우진

사진 - 유태형, ㅅㅅ음식 작업소




미처 다 담지 못한 ㅅㅅ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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