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역설
[해외 인턴쉽 프로그램]
대학교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마지막 학년을 시작하기 전 겨울 방학. 나는 학교서 주관했던 해외 인턴쉽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고, 엉망이었던 면접에 통과해 처음으로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홀로 먼 타국으로 향하는 길은 두려움과 설렘의 중간쯤에 있었다. 마냥 기뻐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긴장만 하면서 버리기엔 내 청춘과 기회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로 쭉 가서 성공할 생각이 있는건 아니었지만 최소한 인생에 몇가지 도움이 되는 교훈 정도는 얻고 가자는 생각으로 나는 길고 긴 여정에 나섰다.
하늘도 그런 나의 감정에 감응했는지 처음과 끝이 함께 감도는 느낌의 붉은 색감을 띄며 서서히 잠들어 갔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나는 목적지인 팔렘방에 도착할 것이다. 그곳 신학교의 총장님을 만나고 교수님들과 선교사님들과 함께 지내며 현장 신학 대학교의 모습을 직접 경험하게 배우게 될 터였다.
구름이 가까웠다. 태어나서 처음 하늘을 마주보며 날았다. 창가의 자리를 고집해서 앉은 것은 이렇게 하늘을 보기 위해서였다. 날개쪽의 자리를 택한 것도 이 풍경을 태어나서 한번 쯤은 꼭 보고 싶었다. 평생을 전라남도 촌구석에서 살았던 촌놈 청년의 꿈이었다.
[기대와는 달랐던 현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기대와는 달랐던 법이다. 나는 해외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고, 특히 인텁쉽을 통해 느꼈던 것은 이번에 내가 도전했던 이 분야와는 특히 맞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나는 나약했고, 우울증은 내가 통제를 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 나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돌아가야했고, 주변에 많은 걱정과 폐를 끼쳤다. 이때의 나는 그랬다. 누구의 기대도 감당할 수 없는 그런 약하고 부족한 상태였다. 인간관계에 점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주변의 소중한 이들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제나 인턴쉽 때 머나먼 타국에서 현실에 도전하던 한 선배 선교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소명은 오늘을 살아야해요. 어제도 내일도 아니라, 우리가 허락받은 시간은 오직 오늘 뿐입니다."
그날을 살기에 최선을 다했다. 내 생각과 다른 오늘이 찾아와도 나는 그날을 견디고 다시 살아냈다. 그러면서 하루를 보내고 또 보냈다. 내일을 차마 기대할 수 없었다. 내일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어제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흘러갔다. 그러나 오늘은 나에게 주어진 은혜의 선물이었다. 나는 그것을 최선을 다해 헛되지 않게 해야할 것이었다.
[밤을 기다리며]
저무는 해를 보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저물어 가겠지 생각했다. 나의 젊음도 꿈과 야망도 그렇게 사그러지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끝장나도 내일의 해는 다시 떠오를 터였다. 그러면 나는 석양을 삼키고 내일을 준비하는 별과 달이 되고 싶었다. 밤하늘을 비추는 별들을 기다렸다. 저 하늘은 밤을 기다리며 찍은 사진이다.
잠잠히, 내게도 올 밤을 기다렸다. 내게도 찾아올 흑암의 시기들이 있겠지.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담대히 견뎌나가야한다. 나는 그대가 그 시간들은 결딜 수 있도록 그대의 발 아래를 비추는 별빛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가장 어두울 때, 사람의 소망이 다 꺼져갈 때, 그때가 진정 나의 모든 것을 불태워 일해야할 때가 아니었을까.
[두번째 하늘길]
돌아오면서 찍은 하늘은 맑았다. 온통 구름이 깔려있었다. 세상에 주눅이 들어서 온통 울적함 뿐이었던 나에게 마치 세상이 위로를 하는 듯 했다. 그리고 마치 내게 이렇게 보였다. 참 웅장하고도 아름답고 압도될 듯한 광대함이 보였다. 마치 그 만드신 이의 영광을 찬미하는듯 모든 것이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또 한가지 생각을 했다.
"세상 별거 아니다."
하늘 길에 올라 내가 했던 생각이다. 하늘에 올라 내가 보게된 세상이다. 현실에 압도 되지 말고 현실을 살아야한다. 오늘은 이렇게 넓은 세상과 우주의 움직임 속에 있다. 나도 그중에 하나다. 그러면 나는 한없이 작아보이지만, 그 속에서 나는 다시 한없이 큰 존재가 된다. 소명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면 두려워 말고 담대히 나아가야한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겠지. 그때는 내 모든 것을 내 던져 나의 할 일을 이루고 싶었다.
세상 참 아름답다. 이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 공감을 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 있는 이들이 세상을 만끽할 수 있도록 위로하고 돕는것이 나의 꿈이고 나의 일이다. 그런 글을 쓰고 싶고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죽기까지 말이다. 그러면 별무리 마저 저문 하늘에 다시 여명이 차오르듯 다음 세대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나의 때보다 더욱 찬란하고 아름다운 광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