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이야기
기도교의 초기 교회의 유명한 리더십 사도 바울은 죽기 전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선한 싸움을 마치고 나의 달려갈 길을 다 가도록 나는 내 믿음을 지켰노라.”
오늘날까지 그의 길이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가 초심을 지켰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신념을 지켰다.
초심은 죽는다.
비록 초심은 죽을지언정 그 속에 담겨있던 신념은 결코 죽임 당하지 않는다. 상황이 역변하면 초심은 언제나 잃을 수 있다. 초심을 버려야지 살아남을 수 있는 날도 온다. 신념이라도 다를 게 없다. 우린 언제나 타협하며 변하며 적응하며 살지 않았는가?
하지만 변하는 순간 사람들은 초심에는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배신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신념을 지키기 위해 잠시 고개를 숙일 수 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길지 않다.’ 이런 말이 있다. 돌아갈 수 있다. 처음의 마음을 지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필요한 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다. ‘내 마음을 붙잡고 갈 수 있는 힘’이게 진정 우리가 찾아야 하는 과제이며, 신념이 아닐까 싶다.
글자 몇 줄은 바뀔 수 있다. 슬로건이랍시고 거창하게 적어둔 책상 위 메모자는 색이 바래고 닳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정신의 골자는 바뀌지 않는다. 그러지 않으면 다시 돌아올 수 있고, 잠시 넘어졌더라도 다시 일어나 가던 길을 마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넘어짐 속에 포기한다. 다시 돌아가 다른 길로 가보려고 한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어쨌건 당신의 발걸음이 닿는 곳이 당신의 길이 될 테니까.
자아란 게 그런 게 아닐까? 살아남으며 변한다. 살아간다는 건 변함 속에 있다는 증거다. 수천수백 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던 강과 산도 변하는데 사람의 마음과 인생이라고 다를까?
하지만 그 속에서도 붙잡고 가는 얼이 있다. 그 진정 광야 같은 내면의 목소리가 바로 신념이다.
역경이 있다. 그리고 역경 앞에 초심은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사인 나는 사람들에게 초심을 지키라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다만 소망을 품으라고 말한다. 초심은 결연한 첫걸음을 떼기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마음에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념이 필요하다. 초심은 죽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신념은 살아가는 것이다.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내게 그것은 여유를 부리는 일이었다. 먼 길을 가기 위해선 초심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내게 초심을 갖게 하며 가꿔져 온 정금 같은 마음이 있다. 그 넋을 지키는 게 결국 완주를 위한 결심이 아닐까 싶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에 급급하여 마음을 쓰는 일은 스스로 병드는 일과 다를 게 없다.
우린 오늘을 살아야 한다. 오늘과 다가올 미래는 도무지 변하고 변해서 나도 그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한다. 그걸 거스르는 순간 딜레마에 빠진다. 초심은 지켜야 하나 지키지 못한 초심을 다시 세우는 일을 반복한다. 하지만 초심을 세우는 힘을 나는 신념이라 부르겠다. 결국 죽지 않는 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초심은 변하나 신념은 살아남으려 한다. 난 그대가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