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맑스 : 『독일 이데올로기』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독일 관념론 조류의 끝자락에는 관념론을 반대하며 헤겔을 뒤집어 엎은 두 명의 유물론자가 존재합니다. 한 명은 어떻게 하면 장미를 더 아름답게 볼 수 있을까 고민했던 감성적 유물론자인 포이어바흐,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실천적 유물론자인 칼 맑스가 있죠. 맑스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에게서 각각 '변증법'과 '유적존재'의 테제들을 가져와요.
변증적 구조는 맑스의 서술에서 전체적으로 묻어나는데, 특히나 그의 사회철학에 있어 그는 당대 체제를 자본주의라고 정립하고 그 안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점들과 부정태들을 탐독하며 끊임없이 이에 대항하는 운동을 공산주의라고 부르죠. 이는 후기에 접어들어 목적론적 테제로 바뀌며 자본주의 이후에 도래할 미래 사회를 공산주의라고 지칭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변증적으로 맑스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요소를 자본주의 그 밖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그 내부에서 찾았다는 거에요.
포이어바흐에게서 가져온 유적 존재란 '인간이 목적과 의식, 그리고 의지를 가지고 생산활동을 하는 존재라는 것'을 함의합니다. 즉 이는 '우리 인간 모두의 함축적 능력'을 뜻해요. 각각의 선배 철학자들에게서 자신의 철학관에 필요한 핵심 테제들을 가져온 맑스는 이제 자신만의 유물론적 철학을 개관해갑니다. 그의 유물론적 철학관을 바라보기 위해 초기 저작인『독일 이데올로기』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를 들여다보고자 해요.
1. 이제까지의 모든 유물론(포이어바흐의 것을 포함하여)의 주된 결함은 대상, 현실, 감성이 단지 객체 또는 직관의 형식하에서만 파악되고, 감성적인 인간의 활동, 즉 실천으로서는 파악되지 못했으며, 주체적으로 파악되지 못한 점이다. 따라서 활동적인 측면은 유물론과 대립되는 관념론-이것은 물론 현실적인, 감성적인 활동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에 의해 추상적으로 전개되었다. 포이어바흐는 사유 객체로부터 현실적으로 구별되는 감성적 객체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인간 활동 자체를 대상적 활동으로 파악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오직 이론적인 태도만을 참된 인간적 태도로 보고, 반면에 실천은 단지 저 불결한 유대적 현상 형태 속에서만 파악하고 고정시켰다. 따라서 그는 '혁명적인', '실천적이고 비판적인' 활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제1테제에서는 포이어바흐의 감성적 유물론에서 '실천' '활동'이 결여되어있음을 지목합니다. 맑스는 그 이전의 세이, 리카도, 스미스로 대표되는 국민경제학자들의 논의의 지평에 서서 '노동가치설'을 이어받아요. '혁명적'이고 '실천적이고 비판적인' 활동은 "자연과 인간의 합목적적 소재교환"인 노동을 뜻합니다. 맑스에게 있어 노동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이고 필연적인 행위들이 아닌 공부, 작곡, 뜨개질, 육아, 집안일, 낚시 등 인간의 모든 전반적인 행위를 포함합니다.
"포이어바흐는 사유 객체로부터 현실적으로 구별되는 감성적 객체를 원했다." "그는 인간 활동 자체를 대상적 활동으로 파악하지 못했다."라는 점에서 맑스의 실천적 유물론의 지향점이 가장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맑스에게 존재는 언제나 대상적이어야 합니다. 예컨대, 자연과 인간의 합목적적 소재교환인 노동을 통해 우리 인간은 저 자연에 자신의 외화태Entfremdung로 현전해야해요. 그렇지 않은 것은 인간존재로 치부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연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합니다. 그리하여 뭔가 상품이든 생상물이든을 만들어내죠. 그러면 자연에 인간의 형태가 깃들어 있게 돼요. 이렇게 인간은 우리의 존재를 증명해보입니다. 이 '노동' 컨셉의 지평에서 맑스는 자연을 '비유기적 인간', 그리고 인간을 '유기적 자연'이라고 불러요. 여기서도 변증적 요소가 섞여 보여지는 부분입니다. 즉, 인간사의 총체는 자연사와 동일하다는거에요.(인간의 발전사는 자연의 발전사와 동일하다.) 그의 이러한 유물론은 두번째 테제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납니다.
2. 인간의 사유가 대상적 진리를 포착할 수 있는지 여부의 문제는 결코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인 문제이다. 인간은 실천을 통해 진리, 즉 그의 사유의 현실성과 위력 및 현세성을 증명해야만 한다. 사유가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에 대한 논쟁은-이 사유가 실천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다면- 순전히 공리공론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제1테제를 더욱 간략히 정리한 것과 비슷합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자연과 끊임없는 소재교환을 한다는 거에요. 하지만 "포이어바흐는 추상적인 사유에 만족하지 않고 감성적 직관에 호소"하며 "감성을 실천적인 것으로, 인간의 감성적 활동으로는 파악하지 못"했다는 거에요.(제5테제) 우리 존재는 항상 외부적 요소에 시달리는gelitten 존재에요. 그렇기에 실천(노동)을 간과한 채 유물론을 논할 수 없다는거에요.
맑스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를 통해서 계속하여 실천의 문제를 강조해요. 그리고 제11번 테제로 그 유명한 경구를 적어놓죠.
11.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시키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헤겔과 포이어바흐를 거치며 정립한 그의 실천적 유물론의 귀결점이자 그의 철학관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입니다. 맑스는 자신의 유물론과 이전 유물론을 극명하게 분계하며 자신의 것을 '새로운 유물론'이라 칭해요. 그리고 이 새로운 유물론이 지향하는 것은 '인간적 사회 또는 연합적 인류(어소시에이션)'라는 공산주의의 맹아를 심어놓죠.
그레타 툰베리를 필두로 한 전세계적인 기후위기대응운동 이후로 생태문제가 화두로 떠오르며 맑스의 생태주의가 맑시즘에서 굉장히 유행했어요. 그 근저에는 '인간과 자연의 유기체론'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에 대한 맑스의 컨셉이 자리하고 있죠. 인간은 언제나 대상적으로 존재하고, 외부 요인에 의해 시달리며, 끊임없이 자연과의 합목적적 소재교환을 해야 하는 존재이기에 자연이라는 실체를 무시할 수 없다는 거에요.
맑스는 서양철학사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최초로 가장 강력하게 실천praxis을 강조한 철학자입니다. 유물론은 언제나 관념론에 밀려, 실천은 언제나 이론에 밀려 그 외곽을 돌며 전전하던 개념들이었는데 맑스는 이 두 가지를 한번에 부숴버렸고, 실제로 이후 『공산당 선언』 『자본』과 같은 노동자와 공산주의 운동가들을 위한 실천적 지침서를 써내려가며 스스로도 실천에 가담하기도 하며 노동자들과 긴밀한 연을 쥐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의 실천적 유물론이 후대에 사람들로 하여금 맑스를 '혁명가'의 반열에 오르게 했을 만큼 세계를 변혁하고자 했던 그의 이론이 성공했고, 또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척도로 작용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