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수

by GivemeL

2008년.


강의실 문을 닫는 건 항상 세혁이었다.


학생들은 세혁이 마지막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가방을 챙겨 복도로 쏟아져 나갔다. 남은 건 바둑판 열두 개와 흩어진 바둑돌들뿐이었다. 세혁은 교탁 앞에 서서 텅 빈 강의실을 잠깐 바라봤다. 오늘 수업은 특히 힘들었다.


앞줄 학생 둘은 처음부터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세혁이 활로를 설명할 때도, 포석의 원리를 말할 때도 그들에게 바둑판은 그저 무늬 있는 나무판일 뿐이었다. 세혁은 설명을 멈추고 잠시 서 있다가 분필을 들어 칠판에 썼다.


'메커니컬 터크'


학생들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18세기 유럽 얘기예요. 터키 복장을 한 목각 인형이 체스를 뒀어요. 나폴레옹도 그 인형과 대국을 벌였죠. 그는 이기려고 반칙까지 썼지만 결국 졌어요. 인형은 틀린 수를 제자리에 갖다 놓고, 무심하게 그를 이겨버렸죠."


세혁은 바둑판 위에 돌 하나를 놓았다.


"나중에 밝혀졌어요. 나무 상자 안에 왜소증을 가진 체스 고수가 숨어 있었다는 게. 거울과 기계 장치로 인형의 팔을 조종하고 있었던 거예요. 사람들이 열광한 건 체스 실력이 아니라 기계가 인간의 사고를 흉내 낸다는 환상 그 자체였죠. 바둑이나 체스의 태생도 비슷해요. 인간이 얼마나 깊이 생각할 수 있는지, 그 욕망의 끝을 보고 싶어 만든 게임이니까. 메커니컬 터크도 결국 같은 욕망에서 나온 겁니다."


앞줄 학생이 물었다. "그럼 인공지능도요?"


세혁은 바둑돌을 손에 쥐고 잠시 멈췄다.


"글쎄요. 아마도."



By Joseph Racknitz - Humboldt University Library,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



세혁은 남아서 돌을 담았다. 흑 하나, 백 하나. 손끝에 익숙한 감촉이었다. 너무 익숙해서 아무 감각도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바람이 불었다. 폴더폰을 꺼내 메일함을 열었다. 미주리과학기술대학교였다.


'We regret to inform you.'


걸음을 멈췄다. 다시 읽었다.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람이 불었고,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렸다. 세혁은 폴더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캠퍼스를 가로질러, 벤치에 앉아 웃고 있는 학생들 옆을 지나쳐, 걸었다.


집에 돌아왔다. 책상 서랍을 열자 이번 학기 강의 계획서가 보였다. A대학, B대학. 두 곳이 전부였다.


그 옆에 추천서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수연이 직접 써준 미주리과학기술대학교 연구원 추천서였다. 수연은 양아버지의 딸이었다. 프로기사였던 양아버지는 고아원 건너편에 살던 세혁에게 바둑을 가르쳤고, 세혁이 입단을 포기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추천서 마지막 줄에 수연의 손글씨가 있었다.


'인간의 직관만은 흉내 낼 수 없다.'


세혁은 그 줄을 읽다가 멈췄다.

글씨가 예뻤다.




다음 날, 한국인공지능연구원 카페테리아의 유리 천장 아래에서 수연을 만났다. 그녀는 노트북 화면 가득 영어 논문을 띄워둔 채 앉아 있었다.


"오빠, 이번엔 되어야 해."


인사도 없이 본론이었다. 세혁은 그게 오히려 편했다.


"면접 취소된 거 알고 내가 교수님한테 직접 메일 보냈어. 내 지도교수님이셨잖아. 미국으로 오면 직접 만나보시겠대."


수연은 화면을 돌려 교수 프로필과 인터뷰 영상을 보여줬다.


"닥터 마르쿠스는 이론보다 태도를 봐. 바둑에 대한 생각, 그걸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해. AI가 바둑을 이기는 날은 반드시 올 거야. 마르쿠스는 그 과정에서 인간의 직관을 연구하고 싶은 거고."


세혁은 테이블 위의 커피잔을 손으로 감쌌다. 차가웠다. 수연이 미리 시켜놓은 것이었다. 얼마나 기다렸는지는 묻지 않았다. 세혁은 커피잔에서 손을 뗐다.


"오빠."


수연이 노트북을 닫았다. 카페테리아 소음이 갑자기 크게 들렸다.


"이번 기회 놓치면 다음은 없을 수도 있어."


'다음이 있기는 한가.'


세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