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주의는 뇌가 사용하는 일종의 회피 전략이다. 뇌는 허무함이라는 감정을 통해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도전이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허무하다는 개념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내고 인식할 때만 경험할 수 있는 개념이다. 옛날부터 알게 모르게 허무함과 비슷한 느낌을 받거나 유사한 개념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개념화되지 않은, 언어가 없는 감정이나 느낌들은 우리 뇌가 사용하기 쉬운 도구가 아니다. 아마도 언어적인 개념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우리 뇌가 사용할 수 있는 도구 리스트에 허무주의는 올라가 있지 않았을 것이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허무함, 허무주의라는 언어적인 개념이 생겼고, 누구나 쉽게 이 개념을 학습하고 허무함이라는 감정적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결과적으로 볼 때 현대 사회에서 아주 인기 있는 개념이 되었다. 철학이나 사상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공'사상에 대한 오해가 허무주의를 퍼트리는데 한몫하는 것 같다. (불교에서 비어있다고 하는 것은 허무하고 공허하다는 것이 아니다. 비어있다는 것은 허무함이나 공허함도 없는 것을 의미한다. 허무함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공 사상도 사회적으로 다르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허무함이 공 사상과 붙으면서 불교는 염세적인 느낌이 나는 종교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허무감
모든 감정에는 목적이 있다. 그리고 감정은 '조건'과, '느낌', 그리고 '행동'의 세트이다. 뇌는 우리가 처한 상황, '조건'에 따라서 목표를 갖는다. 그리고 '행동'을 통해서 그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행동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가 '감정'이다. 이 과정은 보통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빠르게 일어나서 나도 모르게 갑자기 감정을 경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의식적으로 이 과정에 끼어들 수 있다.)
다른 감정들처럼 허무감에도 목적이 있다. 허무주의나 공허감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보통은 자신을 멈춰 세우기 위한 감정이다.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허무주의는 뇌가 사용하는 정말 똑똑한 전략이다. 나를 멈춰 세우는 다른 전략들은 미세하게라도 '내가 나를 속이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준다. 나를 완전히 속일 만큼 세련되지 못한 거다. 그런데 이 허무주의는 그런 느낌이 없다. 세상이 본질적으로 의미 없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내 선택이 당연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이 하루 종일 허무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허무감을 느끼는 순간은 주로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과제가 나에게 벅찬 경우다. 허무주의는 그 과제가 지닌 가치를 깍아내린다. '그건 의미 없어', '해봤자 무엇이 바뀔까', '세상은 원래 의미가 없는 거야' 등의 생각으로 해쳐나가야 하는 고통은 더 고통스럽게, 추구해야 하는 보상은 보잘것없으로 만든다. 그러면 더 이상 그 과제를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런데 정말로 인생의 가치들은 의미가 없을까? 이건 한번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허무주의를 통해서 피하려고 하는 가치나 목표는 무엇일까? 그 목표를 달성하거나 그 가치를 얻으면 정말로 나한테 좋은 점이 하나도 없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만약 큰 노력과 희생 없이 그러한 가치들을 얻어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에 겪을 고통과 인생의 문제들을 손가락 튕기듯 쉽게 없애버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다면 정말로 신나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감정들에 대해서 별로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아직 그럴만한 감정들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경험이 없다는 것이 아직 경험하지 못한 가치들을 깎아내릴만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지금 직면하고 해쳐나가야 하는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그럴 수도 있다. 각각이 처한 상황은 다르겠지만 노력, 희생, 두려움, 무지, 불확실성 앞에서 우리 뇌는 방어적이 되고 그 두려움을 피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게 된다. 그래서 허무주의는 회피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아주 좋은 도구인 동시에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힘들다는 신호이기도 하다.(이런 목적으로 허무주의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은 우울증, 무기력증 등과 연관이 있게 마련이다. 허무주의는 우리 뇌가 방어적이고 수동적으로 결핍에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가지 더하면, '왜 세상과 인생은 허무한가'에 대한 질문과 탐구는 본질을 흐린다. 이것도 뇌가 잘 사용하는 패턴들 중 하나이다. 뇌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부담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답이 없거나, 풀 수 없는 문제를 방패로 삼아서 계속 그 문제에 집착하기도 한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 뇌는 허무주의를 사용한 후, 허무주의 그 자체에 집착한다. '인생은 왜 허무한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결국 합리화를 통해서 허무주의라는 방패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점점 나 자신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끝으로
허무함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허무하고 부질없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허무하고 부질없게 보는 우리의 관점이 세상을 그렇게 만든다. 행복한 사람은 '왜 인생이 허무할까?'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함께 즐거워 지기 위해서 무엇을 할까?' 이런 종류의 질문을 던진다. 사랑, 신뢰, 즐거움, 감사, 공여 등의 긍정적인 가치에 집중한다.
부정 편향된 우리의 뇌는 우리를 멈추게 할 수 있는 도구들을 귀신같이 찾아서 사용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허무주의나 부정적인 사고에 빠지기 쉽다. 만약 지금 허무주의에 빠져있다면, 그 허무주의가 깍아내리고 있는 가치는 무엇인지, 우리 뇌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런 두려움이 없다면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