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토)~3(월) 비행, 돈므앙, 좀비치, 숙소, 수영, 밥
8월 말에 퇴직을 앞두고 아이들과 만 1주일간 코타키나발루에 다녀왔다. 간략하게라도 여행기를 쓰려고 했지만,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며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이런 일들이 있다. 1999년 1년간 캄보디아에 있었을 때, 돌아오는 길에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육로 여행을 했었다. 여행기를 쓰려고 했지만 입국 후 새로운 삶에 쫓기다 기회를 놓쳐 버렸다. 결국 동남아시아 여행기는 쓰지 못했고, 백수십 장의 사진과 사진에 남겨놓은 간단한 메모밖에 남지 않았다. 조금 다른 경우지만, 2016년 9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캐나다에 있을 때, 몇 번의 여행 기회가 있었다. 디즈니월드를 포함한 미국 동부 여행 2주,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데쓰밸리, 세계 3대 협곡 미국 서부 여행 2주, 그리고 록키 여행 1주. 그런데 어떤 여행도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2014년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세월호 사건 이후,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내용을 SNS에 공유하는 일에 일종의 죄의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2017년 5월 록키에서부터 사진을 조금씩 올리기 시작했고, 평생의 기회일지 모를 2017년 여름 40일간의 유럽 여행부터는 간략한 여행기와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기록을 남겨 놓지 않으면, 값진 여행의 기억도 그저 아련하고 어렴풋한 꿈처럼 느낌만 남는 듯하다. 정작 여행기는 자잘한 신변잡기와 의미 없는 TMI인 경우가 많음에도, 굳이 기록을 남기면 같은 경험이라도 더 풍성하게 오래 유지되는 것 같다.
이런 이유로, 이번 2025년 11월, 만 28일간의 파타야 한 달 살기를 굳이 애써 남겨보려 한다.
이번 여행에 동반자 35년 지기인 친구 이용관과 역시 거의 25년간 알아왔던 유명 작가이자 목회자 박총이다. 약 8년 전 제주로 귀향하여 살고 있는 용관에게 가장 한가한 달이 언제인지 물었더니, 11월이라고 했다. 더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어서 20여 년 전 벌레들의 책모임에서 몇 번 봤을 뿐, 거의 SNS상으로만 연락하던 한 살 동생 박총은, 글을 쓰며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는데, 해외에서도 디지털 노매드의 삶이 가능하다 했다. 그렇게 중년의 세 남자가 의기투합했다
숙박비와 외식비가 비싸지 않은 동남아시아 국가 중 수영장과 운동 시설과, 산책할 수 있는 곳을 고민했다. 태국 후아힌과 파타야 중, 심심하고 한적한 제주의 한 마을에 살고 있고 용관의 의견에 따라, 둘 중 그나마 좀 번화한 파타야를 선택했다. 아고다를 통해 27박 28일간의 3인 숙소(SEVEN SEAS RESORT)를 114만 원에 예약했다. 트립닷컴을 통해 왕복 비행기 표도 약 25만에 구했다. 말레이시아 저가 항공사인 에어아시아 비행기였는데, 기내 수화물이 7kg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모든 짐을 기내 수화물로 커버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했다. 나름의 여행 경험이 여행 짐을 줄이는데 많이 도움이 되었다. 우쿨렐레와 탁구채, 필터 샤워기 헤드, 상비약, 책도 챙겼다
11월 1일 토요일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아내가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 주었다. 이런, 텀블러를 미쳐 못 챙겼다. M버스를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공항철도로 인천공항까지 갔다.
9시 반쯤 공항에서 만났다. 밥을 주지 않는 저가항공사이기 때문에, 점심으로 샌드위치 세 개를 준비했다. 원래는 점심시간에 맞춰 비행기에서 막으려 했는데, 배가 고파서 출발 전에 다 먹어버렸다. 별도로 준비한 에너지바까지 다 먹어버렸다. 총이는 이걸로도 배가 안 차서, 별도로 기내식을 시켜 먹었다고 한다. 에어아시아는 좌석을 강제로 할당한다. 좌석을 선택하려면, 상당한 금액을 추가해야 한다. 저번 코타키나발루 갈 때에도 굉장히 나쁜 좌석이었는데, 이번에도 자리가 많이 남는데도 중간에 낀 자리를 배정했다. 한국시간 11시 20분에 출발해서, 2시간 당겨진 태국시간 15시 30분, 6시간 10분간의 지루한 비행이 끝났다. 그 사이 비행기에서 겹겹이 껴입은 얇은 옷을 하나하나 벗었다.
챗지피티에 물어서 수수료가 가장 싼 ATM기를 찾아갔는데, 역시 또 뻥이었다. 1만 바트 현금을 찾는데 250 바트나 수수료를 냈다. 다들 배가 고파, 공항 4층에 있는 푸드코트를 찾아 태국식 볶음밥을 먹었다 공항이니 제법 비쌌지만 먹을만했다. 공항에 있는 통신사 TRUE 대리점에서는,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한 '특별히 비싼 요금제 유심'을 팔고 있었다 모든 대리점 및 편의점에서 담합을 해서, 저렴한 현지인들의 요금제는 쓸 수 없었다. 다행히 프리티 텔레콤 이벤트를 통해 태국에서 며칠간 쓸 수 있는 2G짜리 유심칩을 가져와서 왔기 때문에 그걸 당분간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저번 말레이시아에서처럼 유심칩이 인식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도 인식되지 않았다. 빨리 그랩을 예약해서 타고 가야 하는데, 앞 선 문제가 풀리지 않으니 답답해서 짜증이 났다. 한참을 씨름하다가 포기하고 결국 공항 와이파이로 그랩을 불러서 출발했다. 여러 번 예약이 취소되고야 SUV차량을 가진 성품이 좋은 기사를 만날 수 있었다. 파타야의 북쪽인 촌부리에 살고 있다는 그는, 손님을 싣고 돈 므앙 공항에 왔다가 빈 차로 돌아가야 했는데, 마침 피티야로 가는 우리를 태워서 운이 좋다고 했다 우리로 치면, 천안 택시가 김포공항까지 손님을 태우고 갔다가 운 좋게 김포공항에서 천안 가는 손님을 태운 격이었다 게다가, 원래 11월은 건기가 시작되는데, 이상하게 비가 오는 손님 없는 날이어서 더 행운 같다고 했다.
키를 받고 들어간 숙소에서는 고약한 탄 냄새가 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짐작대로 마리화나 냄새가 방에 배어 있는 것이었다. 싱크대 배수구에서는 물이 새고 전체적인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기본적인 안내가 전혀 되지 않았고, 휴지와 비누도 준비되지 않았다. 샤워부스에는 문이 없어서 샤워를 하면 물이 다 튀어 욕실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총이가 많이 분노했다. 싼 숙소를 마련한 바람에 이런 것 같아서, 내가 좀 미안해졌다. 배가 고파서 일단 숙소 앞 세븐일레븐에서 도시락을 사서 먹었다. 세븐일레븐 도시락 가격이 굉장히 저렴했고 먹을만했다. 용관과 함께 배수구 샌 곳을 막고 세제 흐른 것을 닦으며 정리했다. 대충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11월 2일 일요일
2시간의 시차 때문에 눈이 빨리 떠진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총이와 달리, 용관과 나는 일찍 일어나 해변을 향했다. 차도의 진행 방향이 반대이고 인도가 잘 확보되지 않아 걷기가 좀 위험하다. 그나마 일요일이어서 차량이 많지 않아 다행이었다. 좀티엔 비치에 갔더니 해변가에 작은 노점들이 해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바닷물은 우리나라 서해안처럼 흐릿한 물빛이다. 굉장히 얇고 길게 지어진 해안가 호텔이나 콘도가 독특한 풍광을 보여준다. 해변에 가까운 숙소에서는 1층 로비나 카페에 서양인 은퇴자들이 앉아 한적하게 길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파타야에는 러시아인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구글에 한 중국 식료품점 평점에도, "왜 러시아어가 쓰여 있지 않냐"는 컴플레인이 있을 정도였다. 우리가 있는 숙소에도 백인들은 대부분 러시아인이고, 각종 안내문도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로 표기되어 있다.
돌아와서, 아침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총이가 검색한 숙소 바로 앞 로컬 식당에 갔더니, 열지 않았다. 다른 식당을 찾아가는 길에, 덥기도 해서 외국인 한 명이 앉아 있는 식당을 발견하고 그냥 여기서 먹자고 들어갔다. 주인이 거의 영어를 하지 못한다. 메뉴판에 있는 사진과 영문을 보고, 오징어와 새우가 들어간 해산물을 달라 했더니 오징어와 새우가 없단다. 그래서 돼지고기가 들어간 오믈렛을 시켰는데, 내가 상상하던 오믈렛은 아니었다. 관광지이지만 그래도 현지 식당을 찾아 들어가면 평범한, 태국 식사가 60에서 80밧 정도 되는 것 같다. 요즘 환율로 2,500원에서 3,500원 정도.
돌아와서는 세 명이 간략히 예배를 드렸다. 교회력에 따라 성경 읽기를 하고 느낀 점과 기도제목을 나눴다.
난, "서로 생활방식과 여행방식이 다른 만큼 불편한 점이 있음 솔직히 꺼내놓고 나누면 좋겠다. 이번 여행이 어떤 은퇴 후 삶의 실험인데, 사건 사고 없는 4주간이 되기를."
용관은, "가족 외의 사람들과 오는 첫 번째 여행인데, 사실 새로운 경험을 겪는 것을 흥미로워한다. 남자들 셋이서 즐겁게 잘 누리다 가면 좋겠고, 가족을 위한 삶과 나를 위한 삶의 조화를 모색할 수 있기를."
총은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총이는 현지인과 대화하기를 즐기고, 물어보는데 거침이 없다. 총이 덕분에, 그렇게 점심 저녁 식당 후보를 만났다. 점심은 두 가지 반찬을 선택해서 먹는 60밧짜리 현지 식당이었다. 주인아저씨가 서비스로 소고기 뭇국 같은 국도 주시고, 채소도 샐러드로 선택하게 해 주셨다. 작은 수통처럼 생긴 플라스틱 통에 설탕이 들어간 커피를 내려 팔았는데 20밧이었다. 나는 매울 거라고 했던 돼지고기 볶음을 먹었는데, 생강과 고추가 많고 엄청 매워서 다 먹지 못했다. 태국 남부 지방인 팟타이 지방 전통 요리라는 설명 같았다.
숙소 호스트가 있다고 했던 탁구장을 찾아보았지만 탁구장은 없었다. 기껏 탁구채를 챙겨 왔는데 허탈했다. 오후에는 리조트 내에 거대한 실외 수영장에서 본격적으로 용관과 총에게 야매 수영 강습을 시작했다. 금세 피로해지고 낮잠을 자야 하는 나와 달리 둘 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은 것 같다.
저녁으로는 이제 개업한 지 일주일 남짓된 인도태국 음식점에서 짜이와 함께 커리와 난을 먹었다. 서빙을 하는 분들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고, 젊은 인도 주인아주머니가 영어를 잘하셨다. 숙소 근처에 있는 세븐일레븐에서 맥주 등을 사, 숙소에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마셨다.
11월 3일 월요일
오늘은 오전과 저녁으로 3시간씩 총이가 온라인 글쓰기 강좌를 하는 날이다. 아침에 검색을 하다가 빅씨 마트 규모의 마크로(MAKRO) 마켓이 걸어서 40분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원래 아침 식사를 잘하지 않는 총은 강의를 준비하고 용관과 나는 마크로로 찾아갔다. 일부러 큰길을 피해서 걸었는데, 의외로 조용하고 포장이 잘 된 태국 풍경이 펼쳐졌다. 마크로는 코스트코를 연상시킬 만큼 큰 매장이었는데, 현지 상인들이 도매로 식료품을 사가는 것을 제법 보았다.
계란, 토마토, 오이, 사과, 샐러드용 잎채소, 제일 저렴한 견과류인 땅콩, 버터, 사리면, 레드 와인 식초, 수건, 두루마리휴지, 왕망고, 바나나, 두리안 한 토막과 닭봉구이, 아침용 초밥 2팩을 샀다.
김치, 올리브유, 발사믹 식초, 샤워봉과 커튼, 망고스틴, 드립백커피, 슬리퍼 등은 사지 못했다. 아침 시간이 훌쩍 지나 마트 앞에서 초밥을 나눠먹고, 연어초밥 5개 한 팩을 총을 위해 남겼다.
계산대에 섰는데, 마크로에서는 카드 결제가 되지 않고 알리페이나 현금만 된다고 해서 당황했다. 어쩔 수 없이 ATM기에서 또 250 바트 수수료를 물고 1만 바트를 인출했다. 쇼핑은 거의 3천 바트가 살짝 넘었다.
76밧에 그랩을 잡았는데, 처음부터 젊은 기사의 태도가 매우 불손했다. 온라인 결제가 문제가 있어서 현금으로 결제했는데, 500밧을 거슬러 줄 돈이 없다며 400밧만 돌려주고 24밧은 꿀꺽했다.
점심으로 사 온 치킨과 두리안, 덜 숙성된 망고 하나를 먹고 리조트 내 수영장에서 2차 야매 수영 강습을 실시했다. 전문적인 강사의 수영 솜씨에 용관과 총이 살짝 놀란 눈치다. 물론, 강사의 뇌피셜이다. 우리 숙소는 샤워 커튼이 없어 물이 다 튀어서, 피트니스 센터에 딸린 샤워실에서 샤워를 했다.
잠깐 쉰 후에 저녁으로는 한국에서 싸 온 비빔장과 마크로에서 산 사리면 두 개로 비빔면을 해 먹었다. 오이와 토마토 사과를 채 썰어 넣고, 계란 프라이를 얹어 풍성하게 먹었다. 사 온 땅콩은 생땅콩이어서 프라이팬에 볶아야 했다.
총이 저녁강의를 하는 동안, 용관과 나는 빨래방으로 빨래를 가지고 나왔고, 세탁기에 50밧, 건조기 50밧(총 4,400원)을 사용했다. 와이파이가 너무 자주 끊기는 리조트 프런트에서 의자에 앉아, 이번 여행기 첫날 이야기를 음성 인식 기능으로 작성했다.
올해 봄에 구입한 삼성 s24 핸드폰은, 홍콩에서 판매된 것을 해외 직구했다. 10,20만 원 정도 싸서 구매했지만, 결정적으로 e 심 기능을 지원하지 않고 듀얼 유심을 지원하는데 이 듀얼 유심이 홍콩 외 지역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돈 조금 아끼려다가, 벌써 두 번째 해외여행에서 유심칩을 사용할 수 없어서 후회가 막심하다.
숙소 근처 세븐일레븐을 자주 이용하게 되는데, 메가커피 사이즈 정도의 35밧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 30밧짜리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세탁세제를 주문했다. 재밌는 게, 이 세븐일레븐에서는 200밧마다 1비트에 해당하는 쿠폰을 준다. 또 내가 도장 쿠폰은 못 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