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소시민. ‘시민’과는 다른 단어, 다른 느낌. 소위 '86세대'의 끝자락인 내게 ‘소시민’은 다소 경멸적인 단어였다.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가 개인주의에 물들기 전, ‘청년학도’라면 민족과 역사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거창하게 고민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 또한 그저 자기와 가족만을 위해 사는 ‘평범한 소시민’은 되지 않기를 소망했다.
틀림없이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으나 말년에 변질되어 갔던 성경 속의 많은 인물들을 볼 때, 젊었을 때는 민주주의와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자신을 불살랐으나, 지금은 변절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이들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했다.
온유하고 겸손하게 늙어갈 수 있으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하고 투명하게 살 수 있었으면, 듣는 자가 되었으면, 끝까지 한결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했다. 내 인생의 비전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잔의 온전한 포도주처럼 하나님과 사람들을 위해 드려 지고 비워지는 것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저 아랫배가 나온 중년의 아저씨, 소시민으로 살고 있다. 마흔을 넘어, 이젠 쉰을 훌쩍 넘긴 주제에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에 공감하며, 문득 ‘내가 지금 뭐 하나’ 한탄하며. 이제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어졌다고 느끼면서, 왠지 모를 조급함과 답답함을 느낀다.
우연히 2013년 여름, 교회 수련회에서 작은 프로그램을 맡았다. 지구와 환경을 위해서 내가 실천하고 있는 일들을 정리해 보고 사람들과 나누는 일이었다. 물론 “사소한 일에 목숨 건다”는 나에 대한 평가대로 자잘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나름 실천하고 있는 일들이 많았다. 또 얼마 전에는 월드 비전에서 재미있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후원해 온 이야기, 감동의 이야기, 아름다운 이야기를 댓글로 쓰면 한 TV 프로그램 방청권을 준다기에 몇 가지 생각나는 일들을 정리해서 올렸다. 어라? 그러고 보니, 나름 착하게 살아온 것 같았다. 이렇게 소시민으로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엮어 내면 얼추 책 한 권이 나올 것도 같았다.
어쩌면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나의 삶이 의미를 잃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의미를 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처럼, 평범하게 보이는 일상, 작은 생각과 행동, 나눔에 큰 의미를 못 찾는 소시민들이, 이 책을 통해서 나 같은 이들이 또 있구나, 서로 격려하며 힘을 얻고, 작지만 의미 있는 일들에 힘을 싣는다면 좋지 않을까. 무엇보다 나의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 아빠를 본받겠다 생각하던지, 혹은 시덥지 않다고 느껴 반면교사로 삼게 된다 해도 이 또한 나쁘지 않을 터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쯤인가, 몇 가지 글을 모아서, 출판사 편집자인 후배에게 책으로 낼 수 있는지 물었다. "오빠 글은 약간 계륵 같아. 이미 시중에는 이런 책들이 많아. 자기 돈을 들여서 출간을 하면 모르겠지만, 출판사에서 인세를 줘가며 책을 내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아." 정확한 평가라고 생각한다. 아쉬움에 아래한글로 편집해서 출력 후 스테이플러로 찍고 청테이프로 감아서 한 권짜리 책으로 만들었다. 이 글은 2014년 내 책의 재출간 개념이다.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책의 재출간이라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인간이 부활하겠다는 셈이 아닌가. 우습기는 하지만, 요즘에 맞춰 수정하고 가능하다면 몇 가지 글을 더 추가해 보려 한다.
원래 작성했던 서문 마지막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고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을 인용한다. “나는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또 지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반드시 이기는 길도 있고, 또한 지는 길도 있다.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에 투표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또 집회에 나가고 하면 힘이 커진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하다 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2009.6.25 김대중, 6·15 9돌 준비위원 오찬모임 중)
어둡고 답답한 시절이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이 있다. 강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자라는 얘기도 있다. 이상과 꿈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면서도 현실에 발 딛고 오늘을 견디며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 작은 행동을 더하여 나갈 때라고 생각한다. 나는 비록 일개 ‘소시민’ 일뿐이지만, 나와 내 이익만 아는 소시민이 아닌, 시민으로서 작은 행동을 더해가는 소시민으로 살아가자. 나 스스로에게, 내 아이들에게 다짐하는 말이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보이는 내 글의 특징이 있다. 의미의 과잉,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태도, 곧 '꼰대 마인드'다. 그냥 담백하거나 덤덤하지 않고, 뭔가 비장하거나 의미를 부여하고 가르치려 한다. 아마, 평생을 착한 범생으로 꽁생원으로 살아온 탓일지 모르겠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나라도 가르치려는 글은 읽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고쳐보겠지만, 혹시라도 그런 '꼰대'스런 내용이 보인다면, 미리 사과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