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ving Tree Aug 24. 2016

치료관계를 이어준 그림..

disconnection and reconnection

Connection
"나는 배구부 주장이고, 치어리더로 활동하고 있어. 학교 성적은 매우 좋은 편이고.. 글세.. 그다지 감상적이지도 않고.. 그냥.. 항상 잘 지내."
사실이었다. 이 소녀가 어디를 봐서 오랜 기간 할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왔고, 그로 인해 정신적 피해를 겪고 있는 아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생각했다. Trauma를 겪고도 유난히 잘 지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강하다, 건강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3년을 꼬박 그런 아이들과 지내온 나로서는 너무 잘 견디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 더 마음이 아파오는 걸 느낄 수 있다. 소녀의 대응전략은 강한 부정이었으리라...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 자체를 부정함은 물론 학교 공부와 클럽 활동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도망가고 있는 것이다.
 
무서운 기억으로부터 죽도록 달아나기 위해 당장 앞에 보이는 길을 미친 듯이 달려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무서운 기억은 소녀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전속력으로 질주하면 할수록 기억은 소녀의 목덜미를 금방이라도 움켜쥘 기세로 따라온다. 소녀는 잘 지내고 있는 듯 보였고 상담치료가 자신에게 시간낭비일 뿐임을 또박또박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치료를 더 권한다고 나아질 것이 없음을.. 때로는 상처를 직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치료가 독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적은 여기서 일어났다. 소녀가 나의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치료실 구석구석 붙어있는 나의 낙서들과 그림들을 둘러보더니 패인팅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어두운 터널 끝에 작은 불빛이 탁! 켜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치료사의 가면을 벗어젖히고 비장의 각오로 앞치마를 둘렀다. 연필 깎는 법, 얼굴 프로포션과 원근법까지.. 중학교 때부터 받아온 철저하게 획일화된 주입식 미술 교육은 나를 멋진 미술 선생으로 변신시키기엔 훌륭했다. 우리는 매주 연필과 붓 사이를 오가며 그림을 그려댔고 나에게 배운 모든 테크닉의 결정체를 소녀의 초상화로 뽐내보기로 했다. 소녀는 워낙에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터라 내가 가르쳐주는 테크닉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드렸다. 어떻게 보면 그림을 배우는 그 열심 또한 소녀에게는 무서운 기억으로부터 달아나는 과정 중 하나였을지도...
 
자신의 초상화.. 큰 눈과 굳게 다문 입술에 투박하게 덧바른 페인트들.. 그리고 소녀가 말했다. "내 생각에.. 나... 할아버지에 대해 말할 준비가 된 것 같아."라고... 나는 놀라지 않았지만 또 놀랐다. 나는 소녀와 단지 그림을 배우는 것에만 집중하며 보냈던 수많은 시간들 속에 단 한 번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회사는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네가 하는 일이 치료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하고...
소녀와 조금씩 조금씩 달리는 속도를 줄이며 돌아서서 따라오는 기억을 맞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억을 맞서기 전 많은 준비가 필요했는데 그 과정을 놀랍게도 침착하게 잘 밟아가는 소녀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그 아이를 필요 이상으로 아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녀의 할아버지가 다른 나라로 도망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해야만 하는 법적인 의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클라이언트의 안전 때문에 내려져야 하는 조치가 클라이언트와 나와의 치료 관계를 왜곡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나의 신고가 필요한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뼈저리게 느껴왔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이번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소녀가 조금씩 기억을 마주할 용기를 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나의 신고를 통해 소녀가 영영 숨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현실로 다가왔다.

Disconnection

그는 나에게는 동정조차 아까운 생각 초자 역겨운 성 범죄자일 뿐이지만 소녀에겐 하나뿐인 할아버지이고 소녀의 엄마의 하나뿐인 아버지다. 소녀가 어렸을 때부터 당해온 그 무서운 일들이 여태껏 꽁꽁 숨겨두고 있다가 해질 때로 해진 마음의 구멍을 통해 새어 나온 사건은 소녀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신고하는 일은 무서운 기억을 더 무섭게 할 뿐... 소녀에게는 이 사회의 정의 실현 따위보다 침묵으로 가족의 눈에 보이는 평화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는 소녀가 다시 부정이란 대응전략을 쓰게 될까 두려웠다.
 
"더 이상 치료를 받고 싶지 않아!"
라고 소녀가 말했다고 소녀의 어머니가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그 이후로 반년이 넘게 나는 소녀를 보지 못했다. 모두에게 너무나 잘 지내 보이는 듯했고.. 그래서 속으로 더 외로웠을 그 아이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마음이 아팠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런저런 모양으로 치료 관계가 끊어질 때.. 그것 또한 치료의 과정 중 일부분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에 나는 그 아이를 너무 좋아했다. 그때 내가 철저하게 치료사의 가면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소녀가 나의 조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가끔씩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아마.. 성공적으로 치료를 마치는 것보다 나에겐 그냥.. 그 아이에게 더 이상 선생님도, 친구도 치료사도 되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아팠다. 이런 생각을 내 슈퍼바이저가 들으면 프로페셔널 하지 못한 나를 못마땅해할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Reconnection

소녀가 전화를 했다. 정확히 반년 하고 2-3주가 더 지난 어느 날이었다. 나를 보러 오겠다고 했고 오겠다는 시간에 정확하게 맞춰 왔으며 그 반년의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양의 그림을 그렸고 어느 날 우연히 갤러리 큐레이터의 눈에 띄어 그룹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수많은 소식들을 숨도 쉬지 않고 뱉어내는 소녀를 앞에 두고 내가 말했다.
 
"가끔 네 생각을 했고 궁금했단다."
그리고 소녀가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것 밖에 없었어... "
그리고 나는 소녀의 마음이 느껴졌다.
소녀는 다시 나를 찾아온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치료 과정을 다 끝내고 싶다고.... 이미 너무 많이 건강해져 있는 이 아이에게  앞으로 필요한 치료과정은 그리 길지 않은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동안 그린 소녀의 그림들을 보며...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치료를 마치고 헤어 질시 간이 오면 아마 무지 밝고 기쁘게 소녀를 보낼 수 있겠지.
어제 이 멋진 아이가 나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내 그림 하나 팔렸어! 나 더 유명해지기 전에 싸인 하나 해줄까?"
'잊지 마라... 내가 니 그림 선생이다!' 속으로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술치료에서 음악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